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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타는 재미
이재형
시인..수필가

내가 전철 타기를 고집하는 것은 전철을 이용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운행하면서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이점이 아닌가. 그런데 요즘은 그것 말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자리 양보를 실천하면서 느끼는 뿌듯한 즐거움이 그것이다.

내 나이 육십 대 중반을 넘겼으니 어쩌면 자리 양보가 자연스럽지 못한 행동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보기 좋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석이건 노약자 보호석이건 다행히 자릴 잡고 앉아 있을 때 내 앞으로 나이 지긋한 분이나 어린애를 동반한 사람이 접근하면 언제나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그런데 내 나이 때문이겠지만 양보를 받는 쪽에서 선뜻 받아들이기보다는 사양하기 일쑤다. 그렇지만 의례적인 사양에 당초의 생각을 바꿀 내가 아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든가 아니면 다음 역에서 내릴 거라고 말하며 거의 막무가내로 앉기를 권하면 대개는 마지못해 양보를 받아들인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출입구 옆 좌석에 앉아서 막 책을 펼쳐들려는데 차가 멈춰 서자 열린 문으로, 나하고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들어왔다. 나는 여느 때처럼 벌떡 일어나 그에게 자릴 양보했다. 엉겁결에 자리에 앉은 그는 양보한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중늙은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나더러 앉으라는 눈빛을 보냈다. 반쯤 일어나려는 그를 나는 주저앉히듯 제지하면서 곧 내린다고 미소를 보냈다. 그게 계기가 되어 몇 마디 대화가 이뤄졌는데 그가 한 말이 재미있었다.

“아니, 양보도 양보지만 어찌 그리도 민첩하게, 마치 용수철이 튀는 것 같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그야말로 미리 준비된 행동이 아니면 그렇게 빠를 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듣고 보니 내 마음을 정확히 꿰뚫은 관찰력이었다. 사실 난 요즘,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자리 양보하는 일을 지하철 타는 목적이라 해야 할 만큼 평소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어지는 그의 말,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생겼을 때 그걸 차지하기 위하여 총알 같이 달려가서 엉덩이부터 들이미는 한국 아줌마의 속도가 세계 육상의 꽃인 100미터 달리기 기록 보유자였던 칼 루이스보다 더 빠르다’는 웃지 못 할 농담이 있는데 오늘 나의 속도는 그걸 능가하겠다면서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작은 친절에 진심어린 고마움을 느끼고 그걸 상대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칭찬하는 태도, 그야말로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야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태도가 아닐까.

우리를 보는 주변 사람들까지 덩달아 기분 좋은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청소년은 양보가 싫어 자는 척 눈을 감거나 애써 외면하고, 노인은 그런 젊은이에게 훈계한답시고 심한 말을 하는 게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네 전철 풍속도인데 지금, 우리 두 사람이 연출하는 이 장면은 정반대가 아닌가 말이다. 분명히 앉아있는 편이 서있는 것에 비하여 몸이 편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경우에는 그 차이가 더욱 크다. 그렇지만 서서 느끼는 몸의 노고에 비하여 양보하고 느끼는 마음의 즐거움이 훨씬 더 값진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한 번 출타에 최소 두 번 양보하기’라는 목표를 지켜나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지난 가을이었다. 경기도 시흥에 갈 일이 있어서 노원역에서 4호선 전철을 탔다. 차가 서울 도심을 지날 무렵 마침 퇴근 시간이어서 계속해서 밀려드는 승객들로 차안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노원역은 시발역인 당고개역과 가까워서 나는 쉽게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차가 남태령을 지나 과천을 뒤로했을 때 어느 정도 승객이 줄었지만 여전히 서있는 사람이 더 많은 혼잡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는 시내에서 탄 것으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서있었다. 자세히 보니 젊은 나이인데도 어딘가 몸이 불편한 듯 손잡이에 매달리듯 서있는 모습이 몹시 힘겨워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에 비하여 한 세대 가까이 차이 날 것 같은 젊은이에게 양보했을 때 그가 선뜻 받아들일 리가 없을 터여서 뭔가 술수가 필요했다. 한참을 궁리한 끝에 내가 말을 걸었다.
“저, 나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일단 이렇게 운을 뗐다. 의아해하며 내려다보는 그녀에게 한 발짝 나간다. 노원에서 타서 너무 오래 앉아있었더니 엉덩이가 뻐근해서 그러니 아가씨가 교대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조금은 엉뚱한 제안을 한 것이다. 사실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앉아있어서 지루하기도 하고, 마침 내릴 역이 앞으로 여덟 정거장 남았으니 지금부터 좀 서있다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게는 내리기 전 몇 정거장만이라도 좌석에 앉으면 지금껏 힘겹게 버텨온 피로가 봄눈 녹듯 풀릴 것이었다. 그런데 눈치 빠른 그녀가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괜찮아요. 그냥 앉아 계셔요. 전 젊은데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니 내가 힘들어서 도와달라는데 괜찮다니요. 그러지 말고 내게 양보하세요.”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앉기를 권했다. 마지못한 듯 자리에 앉은 아가 씨는 정말 다리가 아팠던 듯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 때였다 주변에서 우리 두 사람의 대거리를 보고 있던 승객들 중 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약간은 쑥스러운 대도 기분은 최상이었다. 게다가 서너 정거장을 더 가서 그녀가 내리고 다시 자리를 돌려받았으니 남아도 아주 많이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시 공부, 수필 공부에 스피치 활동 등으로 거의 매일 서울 나들이를 두 번씩 하는 나는 결국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를 하는 장돌뱅이인 셈이다. 자리 양보 하면서 얻는 이문은 정신적인 만족감뿐만 아니라 다리 운동이라는 육체적 이익도 가미 된다. 전철에서 늘 서 있기 위해서는 다리가 튼튼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수락산이나 도봉산에 오르고 그 가운데를 흐르고 있는 중랑천 고수부지를 걷는 운동을 열심히 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