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섭/ 법보신문 기자
경인(庚寅)년 새 해가 밝았다.
언제나 그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소망, 그러니까 자신만의 원(願)을 한 가지씩 세운다. 거기에는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건강을 첫 번째로 꼽는 이도 있을 터이고, 집안의 중흥을 기원하는가 하면 사회의 안녕과 국가의 중흥을 바라는 이들도 있다. 더불어 금연, 금주, 다이어트 등의 다짐도 한 가지씩 덧붙이기 마련이다.
이렇게 한 가지 원을 세우고 나면 미리부터 1년 후 느끼게 될 성취감에 젖게 된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밀려 올라오는 뿌듯함에 스스로 감동하기도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모습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 소시민들이 그처럼 작은 일에 감동하며 살아가는 것조차 그리 쉽게 허락하지 않고 있다. 지난 한해 일어났던 많은 일을 제대로 갈무리 할 틈도 없이 어느덧 날이 가고 달이 지나 해가 바뀐 것처럼 말이다. 현실에 떠밀려 좀처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소시민들에게 있어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를 돌아볼 여유가 없음은 개인의 생활 방식 탓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사회적 현상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도 그랬다. 생존권을 지켜보려 시위에 나섰던 평범한 사람들이 경찰병력의 진압 과정에서 사망하는 일이 있었음에도 정부당국자 누구하나 사과하고 책임지는 이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대중들은 그들이 당한 일이 결코 남의 일만 같지 않아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나 역시 저렇게 사람대접 못 받고 이 나라에서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하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있다. 국회에서의 난투극이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선거에 참여해 기꺼이 한 표를 행사했음에도, 그 표를 받아 국회에 들어간 국회의원들이 몸싸움으로 문제해결에 나서는 모습에서 절망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어디 이뿐인가. 한반도 대운하 반대 여론에 밀린 정부가 눈가림용으로 내세운 4대강 사업은 또 어떤가. 국민 복지는 퇴행하고 있는데 국민합의도 거치지 않은 대규모 국책사업을 강행하는 모습에서 또한번 큰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결국 연말에 이르러선 전 정부에서 추진하던 세종시 문제가 전면수정 쪽으로 가닥 잡히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는 무력감까지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또 있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다. 노 전 대통령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그랬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그렇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는가. 그러더니 급기야 시민들의 광장이 공권력에 의해 폐쇄되는 일까지 생겨났다. 그래서였을까. 이 모든 일을 겪은 국민들은 ‘구복지루(口腹之累)’를 지난 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꼽았다. ‘일을 해도 배가 고프다’이다. 국가와 사회가 일을 해도 배고픈 세상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춥게 한 셈이다.
이 모든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는 특정한 누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것은 ‘소통(疏通)’의 문제로 귀결된다.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불통(不通)’이 결국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까지 멍들게 하고 있다.
그래서 새 해에는 ‘우리’나 ‘같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회자될 수 있기를 서원해 본다. 물론 여기에는 ‘소통’이 전제된다. 서로 갈라져 벽을 쌓고 반목하는데 몰두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옳다고 소리 높이지 않고,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내 주장을 뒤로 물리며 과제를 하나씩 풀어 가는 소통 말이다.
여기서 하나 다행스러운 점은 사회 화합의 바탕이 될 소통의 길이 우리 불교 집안에서부터 열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33대 총무원장 선거를 큰 잡음 없이 치러낸 조계종이 ‘소통 화합’과 ‘불교 중흥’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때문이다.
불교가 이 사회에 희망을 줄 기회이기도 하다. 때맞춰 이에 상응하는 조계종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조계종은 2008년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대운하 사업 반대 등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사회와 소통의 물꼬를 튼 이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현 총무원장 스님 역시 취임 후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해 조문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며 대중의 아픔에 한 발 다가섰다. 이어 교계 NGO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종단 차원에서 노동, 인권, 생명과 관련한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종책연구소를 설립해 사회문제에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록 아직까지 즉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가 공허한 울림에 그치지 않을 듯하다. 원효 스님의 삶에서 보듯 불교가 생활과 터전으로 들어가 중생들과 고락을 함께 하며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종단 또한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론, 조계종이 불교계 안팎의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승가교육을 비롯해 대사회 소통 창구 개설, 수행풍토를 일신할 승려노후복지 제도 마련, 불완전한 종헌종법의 정비 등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목이 스님들의 의식을 바꾸고, 중생들의 요구를 들어줄 능력을 향상시키는 승가교육이다. 그런데 지금 조계종이 때맞춰서 승가교육 개혁안을 밝히고 변화의 첫 걸음을 떼고 있다. 조계종 교육원이 마련한 승가교육 개편안은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 수준은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올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인재영입이다. 출가자를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우수한 인재의 출가를 유도하기 위해 적극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승가고시 시험방식도 객관식에서 논술과 면접으로 전환된다. 더불어 재교육도 강화했다. 매년 1회 이상 의무적으로 재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교육 내용도 생태사찰 만들기 등으로 외연을 넓힌다. 뿐만 아니다. 호스피스, 상담심리, 독서지도 등 전문과정을 외부기관에서 수강할 때도 재교육으로 인정할 방침이다. 전통을 지키면서 시대와 역사에 부응하는 내용으로 승가교육 발전 계획을 수립한다는 목표다.
소통이 필요한 시대에 꼭 맞는 교육개혁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교육개혁안을 도출한 과정도 여법하기 그지없다. 교육원은 이 교육개혁안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1개월 동안 전 직원이 밤낮으로 머리를 맞댔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제 속 이야기를 털어낸 후 거르고 걸러서 최종안을 만들어냈다. 누구 한 사람의 지시나 우격다짐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논의를 통해 합일점을 찾아냄으로써, 절 집의 참다운 대중공사 모습을 보였다. 이는 곧 소통의 참 모습이기도 하다. 때문에 다른 부분들 역시 같은 방법으로 대안을 선보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이러한 희망요소들이 하나 둘씩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그 결과는 곧 불교발전의 동력이 되고, 나아가 이 사회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에 대한 답을 주는 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발문>
새 해에는 ‘우리’나 ‘같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회자될 수 있기를 서원해 본다. 물론 여기에는 ‘소통’이 전제된다. 서로 갈라져 벽을 쌓고 반목하는데 몰두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옳다고 소리 높이지 않고,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내 주장을 뒤로 물리며 과제를 하나씩 풀어 가는 소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