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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서의 예절

<지난 호에 이어서>
대웅전(大雄殿)은 절의 중심전각으로 가운데 모시는 본존불(本尊佛)에 따라 전각의 명칭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을 모시면 대웅전, 대웅보전, 비로자나불을 모시면 대적광전, 아미타불을 모시면 극락전 등입니다.
부처님은 큰 영웅(英雄)입니다. 어째서 큰 영웅이겠습니까? 그 이유를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전생에서 수천의 적과
단신으로 싸워 이기기보다
하나의 자기를 이기는 사람
그는 참으로 으뜸가는 영웅이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정면에 어간문이 있고, 좌우 양측에도 문들이 있으며, 좌우측면에 문이 하나씩 더 있는 것이 우리나라 대웅전의 일반적인 구조입니다.
신도들이 대웅전에 들어갈 때는 보통 어간문을 피하고 좌우측의 옆문을 이용합니다. 대웅전 왼쪽(부처님을 중심으로) 옆문으로 들어갈 때는 왼발을 먼저 들여놓고, 오른쪽 옆문으로 들어갈 때는 오른발을 먼저 들여 놓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을 가슴으로 안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법당에 들어갈 때 신발을 바깥쪽으로 향하기 위하여 뒤돌아 들어가거나 신발을 바깥쪽으로 돌려놓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문화가 아니라 일본문화입니다. 일본사람은 밖에서 집안으로 들어갈 때 섬돌 위에서 뒤돌아 마루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신발을 바깥쪽으로 향하여 놓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는 사랑채에 남자주인의 벗이 와서 여러 날을 가지 않고 밥만 축내는 귀찮은 객이 있으면, 객의 신발을 바깥쪽으로 향하여 놓으면 객은 “이 집을 떠나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알고 지체 없이 떠나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또 안채에 안주인의 귀찮은 손이 가지 않을 때도 신발을 돌려놓음으로써 그만 떠나라는 표현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또 산모가 아기를 낳기 위하여 산실에 들어갈 때도 신발을 돌려놓았는데, 그 의미는 아마 아기를 순산하고 밖으로 빨리 나오라는 의미가 담긴 듯합니다. 그리고 또 사람이 죽어 초상을 치를 때에도 저승사자의 밥을 지어 대문 밖에 짚을 깔고 그 위에 노잣돈과 짚신을  바깥쪽을 향하게 놓았습니다.
대웅전은 정면으로 불보살님을 모신 상단(上壇)이 위치하고 좌측으로는 신중(神衆)을 모신 중단(中壇), 우측으로는 영가를 모신 하단(下壇)이 있습니다.

법당에 들어서면 먼저 상단의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반배를 올립니다. 공양물을 올리거나 참배하기 위해 움직일 때는 합장한 자세로 조용히 걸어야 합니다.
부처님 전에 이르러 촛불을 켭니다. 촛불은 반야지광등(般若智光燈)을 의미합니다.
반야는 지혜(智慧)며, 지혜는 광명입니다. 번뇌는 무명이며, 무명은 어두움입니다. 어두움을 밝히는 데는 등불이 있어야 합니다. 중생도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와 덕을 갖춘 자성광명체(自性光明?)가 있습니다. 다만 본래의 구름에 가려 무명의 어두움 속에서 생사윤회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누구든지 참선, 염불, 주력 등의 수행으로 번뇌를 조복하여 자성(自性)을 깨달으면 생사윤회에서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자들은 촛불을 밝혀놓고 지극한 마음으로 이렇게 발원합니다.


일심정례 예경하옵고,
지극한 정성으로
반야지광등(般若智光燈)을 올립니다.
이 촛불은 무명의 밤을 밝혀주는
반야지광등이 되어 법계에 두루 비추고
모든 중생들이
각자 자성광명등(自性光明燈) 불을 밝혀
위없는 대도(大道)를 깨달아
생사윤회에서 해탈케 하소서!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시여,
이 공양을 받아 주소서.


이어서 향(香)을 올립니다. 부처님 전에 올리는 향은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입니다.
향을 올릴 때는 오른손으로 향의 중간을 잡고,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받쳐 잡고 촛불에 대서 불을 붙입니다. 향을 이마 높이로 올려 경건한 마음으로 예를 표한 뒤 향로 중앙에 반듯하게 꽂습니다. 중생은 내 것과 네 것이라는 집착에 의하여 번뇌를 일으켜 아상(我相)이라는 벽돌을 쌓아 스스로 좁은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갇혀 웅크린 채 떨고 있습니다.
오욕의 사슬에 걸려 소용돌이치는 분노와 질투의 악취는 오탁악세 중생의 마음에 가득합니다. 이런 오탁악세의 악취로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惠香)으로 중생의 마음을 정화하여 맑고 고요해져 대해탈을 성취케 하는 것이 해탈지견향입니다. 부처님 전에 향을 올려놓고 합장하여 발원합니다.


일심정례 예경하옵고
지극한 정성으로 해탈지견향을 올립니다.
계향, 정향, 혜향의 참다운 향기
법계에 두루 퍼져 이 향기를 맡은 중생들은
탐진치로 생긴 마음속 오욕의 악취가 소멸하여
모두 대해탈의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시여,
이 공양을 받아 주소서.


다음은 차를 올립니다.
부처님전에 올리는 차는 감로제호다(甘露醍?茶)입니다.
감로(甘露)는 천상(天上)의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영액(靈液)이라고 하며, 그 맛이 꿀같이 달다 하여 감로라 하며, 최대의 경지, 깨달음, 니르바나(열반)를 의미합니다.
제호(醍?)는 히말라야산에서만 나는 비니초라는 풀을 먹고 자란 양의 젖을 짜서 만든 발효식품으로써 맛이 최고이면서 만병을 치료하는 양약(良藥)이라고 하며, 불성(佛性) 혹은 니르바나(열반)를 의미합니다.
스님들은 매일 새벽마다 부처님 전에 차를 다려 올릴 수 없어서 청정수(淸淨水)를 올려놓고 이렇게 게송을 읊습니다.


아금청정수(我今淸淨水)
변위감로다(變爲甘露茶)
봉헌삼보전(奉獻三寶前)
원수애납수(願垂哀納受)
제가 올리는 청정수가
감로차로 변하여
삼보님전에 올리오니
어여삐 여기고 받아 주소서.


부처님 전에 차를 올려놓고 발원합니다.


일심정례 예경하옵고,
지극한 정성으로 감로제호다를 올립니다.
청정한 차를 공양하오니,
이 공덕 무량하여,
선정의 맑은 차에 지혜광명 드리우사
법계중생에게 베푸시어
마시는 자마다 선정을 얻어 성불하여지이다.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시여,
이 공양을 받아 주소서!


<다음 호에 계속>


 


<발문>
대웅전에 들어갈 때는 보통 어간문을 피하고 좌우측의 옆문을 이용합니다. 대웅전 왼쪽(부처님을 중심으로) 옆문으로 들어갈 때는 왼발을 먼저 들여놓고, 오른쪽 옆문으로 들어갈 때는 오른발을 먼저 들여 놓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을 가슴으로 안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