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종원 / 언론인
새해를 맞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난해에 못 이룬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새해에 거는 기대가 큰 것도 당연한 인간의 기대일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그게 달라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젊은 시절의 야망과 욕망에서 비롯하는 승진과 진급, 당선과 포상 등 큰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새해엔 지금보다는 형편이 나아지고 생활이 향상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하다못해 은퇴한 노인은 경제적 여유가 좋아지기를 바란다거나 건강이 좋아지거나 최소한 이대로 지속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이상할 것 없고, 지금까지 답답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자식들의 결혼이라든가 취직, 혹은 손자를 보는 일, 그리고 자식들이 올해에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리기를 기대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새해에 대한 기대가 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그 기대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복권을 사는 사람은 많지만 당첨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듯이 현실에서 자신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새해를 맞으면서 새로운 기대를 갖고 희망에 부푼다.
어찌 보면 새해를 맞아 그렇게 기대를 갖고 사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일지 모른다. 새해를 맞으면서 아무런 기대도 없이 아무런 향상의 희망도 없이 사는 것보다는 어떤 기대를 갖고 산다는 것이 적어도 건강한 삶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기대가 없다는 것은 바로 절망을 표현하는 것이며 생명 긍정의 조짐이 없는 암담함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새해 해맞이를 위해 동해안으로 몰려드는 이들을 보면 감동스럽기도 하다. 새해라고 해가 유난히 큰 것도 아니고 밝은 것도 아닌데 그래도 거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해의 소망을 비는 이들의 순수한 기원과 기대가 너무도 생명력이 넘쳐 보이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 떠오르는 해가 소원을 해결해줄 무한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것은 무의미한 기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의 차원에서 보고 정신의 차원에서 보면 그 해는 아주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 해는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과 소원을 실현해 주는 무한한 힘을 사람들로부터 부여받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열성적인 기대와 희망,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담고 있는 존재의 무게는 너무도 무겁다고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새해 해맞이를 하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밝은 얼굴은 그들의 밝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너무도 아름답다. 산사에서 부처님을 향해 마음을 다해 기도하며 소원성취를 비는 불자들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피력을 기대하는 것을 넘어 이미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순일하게 집중하여 정성을 들이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 기도라면 기도의 목적은 이미 성취되었다고 할 것이다. 혹 불자들의 기원과 기도가 허사가 되는 경우가 있어 실망하고 낙담하는 경우도 없지 않겠고, 그리하여 심하면 불보살님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부처님이 위신력도 효험도 없다고 돌아서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불보살이 모든 불자들의 소원을 모두 남김없이 들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업이 제가끔 다르고 그에 따라 과보 또한 제 가끔일 터인데 불보살이 사람들의 모든 소원을 다 수용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새해를 맞으며 불자들이 부처님 앞에서 선업 쌓기를 다짐하고 선과 (善果)얻기를 기원하는 것일 터이다. 새해를 맞이하면 지난해 이루지 못한 일과 실패한 일들은 모두 나의 부족과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일이기에 그 그릇됨에 대해 깊이 참회하고 새해에는 반드시 착한 마음을 일구어 착한 일을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하는 약속과 결의를 부처님 앞에서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부처님 앞에서 약속하고 결의해도 사람이 일 년을 통해 일관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일부는 지키지 못하고 일부는 소홀히 하게 되며 또 어떤 부분은 잘못 행하는 것이 사람이다.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살겠다고 하지만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6바라밀(六波羅蜜)을 행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8정도(八正道)를 가르침대로 온전히 행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아주 간단하게 탐?진?치(貪瞋癡)의 삼독(三毒)을 멀리하면 성불한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그 세 가지를 실천하기는 너무나도 어렵다. 설혹 마음을 수행하여 탐욕과 성냄을 멀리할 수 있다고 해도 어리석음을 멀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은 세상 물정에 밝고 지혜가 있어서 웬만한 사리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실제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은 때문이다.
그 점에서 불자들은 새해를 맞으며 깊은 반성과 참회와 성찰이 있어야할 것 같다. 부처님 앞에서 새해엔 착한 마음으로 착한 행을 하리라는 약속과 결의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6바라밀의 행과 8정도의 행을 다시 배우며 바로 행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을 멀리하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못난 생각, 짧은 생각, 무지한 생각, 편벽된 생각으로 어리석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큰 잘못을 이제는 확실히 떨쳐버려야겠다. 무지하여 정치적 선동선전에 이용되는 일도 이제는 그만두어야겠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특정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 사회분란을 야기하는 책동에 놀아나는 꼭두각시가 되는 일도 그만두어야겠다.
불자들은 지혜와 자비의 삶을 위해 정진하는 삶만을 추구해야 한다. 남을 욕하고 분란에 동조하며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의 행복을 좀먹는 일임을 알아야겠고, 그 점에서 특정 이익집단의 책동에 쉽게 넘어가지 말아야겠다. 부처님과 조사들은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면서 이 사바세계에서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주인공’의 삶을 강조했다. 새해에는 우리 불자들도 마구니들의 책동을 멀리하고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주인공’이 되기만을 추구하며 살아야겠다.       
<발문>
불자들은 지혜와 자비의 삶을 위해 정진하는 삶만을 추구해야 한다. 부처님과 조사들은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면서 이 사바세계에서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주인공’의 삶을 강조했다. 새해에는 우리 불자들도 마구니들의 책동을 멀리하고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주인공’이 되기만을 추구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