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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5세, 부모의 손길이 더 필요한 때

한 주 / 북에디터, 자유기고가


동일한 시스템에서 성장하더라도, 모든 성장은 약간씩 차이가 있다. 하물며 유년기에 있어 1개월의 차이는 어떠할까. 1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란 식물의 생장 과정에서 오뉴월 하루 볕 차이에 비유할 수 있듯, 내 유년의 경험이 그러했다.
고작 만 4세, 나보다 두어 살 많은 이웃집 아이를 따라 졸랑졸랑 학교에 입학하였으니 무엇을 알았겠는가? 돌아보니 나보다 2살이나 나이 많은 반 친구(?)들이 운동장을 뛰어 다녔고, 3살이나 많은 반 친구들은 아예 교실 안팎을 훨훨 날아다녔다. 교실 한 구석에 책상을 놓고 앉아 선생님이 가르치는 말은 제법 알아들었다지만, 담임선생님이 보기에 나의 연령이 ‘초등학교 학습’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는지, 당신 나름의 교육과정으로 특별 지도를 해주셨다.

때문에 같은 반 만 6~7세 동료들의 노트는 소근육 완숙한 손가락으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한글이었고, 만 4세 나의 노트는 선생님이 손수 그려주었던 동그라미와 네모, 타원과 소용돌이를 어설프게 따라 그린 노트였다. 그때 나는, 네모보다 ‘ㅁ’을, 동그라미 보다 ‘ㅇ’을, 소용돌이 보다 ‘ㅎ’과 ‘ㅊ’을 아주아주 그리고 싶었다.
학기가 어느 정도 지나가고 이제 칠판의 한글도 환하게 읽고 쓸 수 있었을 즈음에도 선생님은 항상 내 나이를 고려하여, 수업 중 교과서를 낭독시키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연령에 맞지 않은 교과과정으로 자칫 학습부진아가 될 수 있었던 나를, 선생님 나름의 교수법으로 ‘그 시간’을 부담이 아닌 즐거움으로 만들어 주셨던 것 같다.
무릇, 노는 것은 때가 있는 법이고, 성장도 때가 있는 법이다.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영아기, 2세, 3세, 4세, 그리고 5세와 6세는 각각의 독특한 성장과정이 존재한다. 이 성장과정은 아이에게 ‘숙제’와 ‘성적’과 같은 무거운 경쟁이 아니라 주변 성인들의 사랑과 도움 속에서 즐기고 느끼며 체험하는 ‘삶의 한 과정’이다.
아이가 태어나 만 2~4세에 이르면, 아이 나름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보기엔 어지러운 듯한 이 그림을 난화라고 부른다. 이때의 난화는 차츰 무질서한 난화, 조절하는 난화, 명명하는 난화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발전과정을 통해 한정된 개념을 발달시키는 전도식기를 지난다. 그때가 4~7세이다. 다시 표현되는 대상과의 관계를 발견하고 자신과 대상과의 관계를 공식화 하여 그것을 표현하며 중요할 부분을 과장하고 중요하지 않는 부분을 생략할 수 있는 나이가 7~9세이다.

즉, 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기고, 구르고, 걷고, 달리고, 마침내 대근육이 자리를 잡아 깨금발도 깔끔하게 할 수 있는 그 기나긴 과정이, 한 편으로 더디고 모자란다 할지라도, 매 순간순간이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또래와의 ‘별 것 아닌 것 같은 놀이’와 ‘주위의 사랑’을 통해 아이의 근육이 성장해 가고, 아이의 지적 능력이 성장해 간다. 더불어 아이의 사회적 능력이 성장해 가는 이 모든 과정들은 인생의 통과의례이자 준비 과정이다. 매순간 소중한 그 시간들을 단지 ‘저출산 위기 해소를 위한 경제적 셈법’으로 어찌 간단하게 재단할 수 있을까.

그런데 최근,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저출산 위기 해소 정책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1살 앞당겨 만 5세 조기취학'을 제안했다고 한다.
조기 취학? 게다가 취학연령을 앞당김으로써 예산이 절감되고, 이 예산은 0~4세 보육 및 유아교육에 추가로 투입할 수 있으며, 이는 곧 양육비 경감으로 이어지고 양육비 경감은 ‘저출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한 자녀 더 갖기 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 제안의 골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만 5세 조기 취학은 재정 확보와 교원 수급, 교육과정 개편, 학교시설 재배치, 법령 개정 등 만만찮은 작업들이 수반되어야 한다. 게다가 일시적으로 늘어난 입학정원은 그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 진학을 할 무렵 무려 2배나 높은 경쟁률이 예상된다.

만 5세! 아직은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유아이다. 구체적 사물의 지각 경험과 논리적 사고 능력, 시공간의 개념 및 인과 관계의 지각이 제법 아동기의 수준과 비슷하게 발달되었다 하더라도, 아직 유아에 해당된다. 비록 만 6~8세의 아동과 근접한 능력을 지녔더라도, 분명 유아기 교육과 초등학생 아동의 교육법은 다르다. 같은 초등학교이지만 저학년과 고학년의 교육방법이 다르고, 뛰어 놀며 배우는 교육이 다르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일정한 틀에 맞춰 배울 수 있는 교육이 다르다. 하물며 만 5세 취학의 초등학교 취학임에랴.
‘놀이’도 아이에겐 중요한 공부이다. 맘껏 뛰놀며 경험하는 그 모든 감각과 촉각들은 아이의 미래에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고, 우수한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제 나이, 제 또래가 겪는 생장과정과 경험을 순탄하고도 평이하게 겪는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는 일인가. 놀이를 하며 느끼고, 느끼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성장하는 그 모든 것….

이제 3월, 새 학기가 다가온다. 올해도 새로운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며, 갓 취학한 아동과 학부모들은 아이가 학교에 적응할 동안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이다. 갑자기 바뀌는 주변 환경, 갑자기 바뀌는 수업 내용, 갑자기 바뀌는 아이의 사회적 역할 등등.
때가 되어 받는 의례도 이러할진대, 아직 인연이 영글지 않은 만 5세 유아들을 ‘경제적 잣대’로 조기 입학 시킨다는 것은, 그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운 과제는 아닌지, 한 번 쯤 점검해 볼 일이다.



<발문>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고, 갓 취학한 아동과 학부모들은 아이가 학교에 적응할 동안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이다. 갑자기 바뀌는 주변 환경, 갑자기 바뀌는 수업 내용, 갑자기 바뀌는 아이의 사회적 역할 등등. 때가 되어 받는 의례도 이러할진대, 아직 인연이 영글지 않은 만 5세 유아들을 ‘경제적 잣대’로 조기 입학 시킨다는 것은, 그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운 과제는 아닌지, 한 번 쯤 점검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