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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

푸른 눈의 현각 스님이 영화 <매트릭스>를 볼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그 영화를 무려 7번이나 보았다고 하는데, <매트릭스> 못지않게 영감을 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아바타>다.
<아바타>는 지구가 아닌 머나먼 별 ‘판도라’의 얘기다. 판도라는 나비족들이 식물과 동물과 교감하면서 자연과 하나로 살아가는 별이다. 무공해의 아름다운 판도라엔 ‘바이러스’나 다름없는 별종이 도착했다. 지구의 에너지가 고갈되자 나비족들이 사는 땅 아래에 잠자고 있는 ‘언놉타늄’이라는 대체에너지를 노리고 이곳에 온 지구인들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온 판도라의 나무는 백층 건물보다 높고, 동물들도 크고 활기차다. 거기서 살아가는 나비족들도 키가 기린처럼 늘씬하고 날렵하고 빠르다. 물론 언어도 지구인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판도라에 진출한 지구전사부대가 나비족들과 소통하기 위해 생각해낸 게 아바타다. 나비족처럼 생긴 모형을 만들어, 거기에 인간 의식을 집어넣어 그들과 소통하려는 것이다. 그 인물로 뽑힌 게 주인공인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샘 워딩튼)다. 하반신 마비자인 제이크 설리가 캡슐 속에 들어가면 그의 의식은 ‘그의 아바타’로 옮겨진다. 이를테면 의식은 제이크 설리이고, 몸뚱이는 나비족 청년인 아바타다. 달릴래야 달릴 수 없고, 뛸래야 뛸 수 없는 하반신 마비자 제이크 설리는 자기 마음대로 달리고 뛸 수 있는 몸뚱이를 갖게 되자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뻐 날뛴다. 판도라의 ‘지구인주둔 기지’에선 제이크에게 나비족에 침투해 들어갈 것을 명한다. 제이크는 정글에서 자신을 구해준 나비족 처녀 ’네이티리’(조 샐다나)를 만난다. 네이티리를 따라 나비부족마을까지 따라가고, 결국 네이티리에게 나비부족언어와 나비부족의 삶을 배우게 된다. 네이티리를 따라 언어 뿐 아니라 동식물과 교감하는 ‘침묵의 언어’까지 익히는 제이크는 익룡처럼 커다란 새인 이크란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나비족 전사가 된다. 그런 과정에서 제이크는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지구주둔기지에선 자신들이 그 마을 땅바닥을 파헤칠 수 있도록 하루빨리 나비족들을 이주시킬 것을 제이크에게 명령한다. 지구인전사들은 그새를 못참고 거대한 불도저(통상 불도저보다 100배정도 크게 보이는)를 앞세워 정글을 헤치면서 침공해 들어오며 거대한 전쟁이 시작한다.

<아바타>를 보는 내내 내 마음을 차지한 것은 이 영화와 너무도 유사한 한 실제 상황이었다.
아마존의 우와 족에 대한 얘기였다. 우와 족은 안데스 산맥 깊은 곳 코바리아 강 근처 숲에서 뭇 생명들과 함께 살아왔다. ‘우와’라는 말은 ‘생각하다’, 또는 ‘명상하다’는 뜻이다. 그들은 침묵의 고요를 유지하는 명상과 노래와 인디언 의식을 통해 고유한 영성을 유지해왔다. 우와족은 1년에 한 번씩 몇 달을 전 부족이 함께 굶는 단식을 한다.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그들이 수확한 식량만으로 전 부족이 1년 동안 살아가기 위해 여름 한철 단식을 하며 명상을 한다는 것이다.

그처럼 자연의 벗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땅을 미국의 다국적 석유회사 옥시덴탈 페트롤륨이 콜롬비아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석유개발에 나섰다. 우와족들이 사는 곳의 땅 속에 매장된 석유를 개발하기 위해 우와족을 쫓아낼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 개발이 이뤄지면 그들의 땅이 송두리째 파헤쳐지고, 우와족의 삶의 터전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자본과 권력과 폭력 앞에 무력할 수 없는 우와족들은 마침내 남다른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만약 ‘인류의 어머니인 대지를 파헤칠 경우 우와족 5천명 전원이 절벽에 떨어져 자살을 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 우와족을 살리기 위해 제2의 존덴버중위나 제이크와 같은 환경운동가들이 나서서 다국적기업의 석유개발은 일시적으로 중단됐지만, 다시 다국적기업은 콜롬비아 내의 하수인들을 시켜 간접적인 개발에 나서고 있다.
영화 <아바타>가 보여준 것은 첨단기법의 영상과 전쟁만이 아니다. 무지의 깊은 늪에 빠져 자신의 피를 오염시키고 자신의 살을 썩게 해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무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래서 <아바타>는 현대판 <장자>다.

아바타(Avatar)란 산스크리트어로 ‘깨달아 뜻대로 사는 ’자’를 말한다. 필자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란 책에서 소개한 해리팔머의 의식개발프로그램의 이름이기도 한 ‘아바타’는 폭력심과 파괴심과 정복욕과 같은 무지한 감정의 노예가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나 천연(天然)의 본성을 구현하는 대승 보살의 삶을 말한다.
의식을 아바타로 옮기기 위해 캡슐 속에서 누에꼬치처럼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제이크는 하반신 마비자인 자신인가, 거침없이 정글을 달리는 나비족 청년 아바타가 자신인가, 과연 어느 쪽이 진짜 자신인가하고 묻는다.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다가 잠에서 깬 장자가 나비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가 하고 묻는 것과 같다.

어느 쪽이 과연 본래 인간인가. 우리는 과연 천하를 내 품으로 안은 장자의 ‘대붕’이였을까.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메추라기였을까. <아바타>는 편가르기와 적은 이익을 탐하면서 얻는 이기적 욕망이 가져다주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붕의 큰 기쁨을 엿보게 한다. 제이크는 익룡 이크란 중에서도 왕초여서 누구도 타기를 두려워하는 그레이트 리오놉테릭스를 탄다. 사욕과 사적인 감정을 버린 인간의 능력은 끝이 없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 다른 갈매기들이 도토리 키재기 경쟁에 열을 올리는 사이 한계를 딛고 광속으로 비상하며 대자유를 만끽하는 것과 같다. 높이 나는 새는 멀리 보지만, 멍청한 짐승은 제 꼬리를 물기 위해 온종일 뱅글뱅글 돌다 지쳐 쓰러진다.

<아바타>가 암시하는 것은 장자의 대붕만이 아니다. 영화 <아바타>에선 기암괴석이 있는 산이 그냥 허공에 떠있다. 무엇엔가 의지해서만 지탱하는 중력의 법칙을 거스른다.
운문선사에게 한 제자가 “부처가 어디에서 생겨났느냐”고 묻자 “동쪽 산이 물위로 간다”고 답했다. 산이 어떻게 물위로 흘러가며 강이 어떻게 산위로 흐를 수 있겠는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무(無)와 공(空)의 경지에 가 닿아 비가 구름이 되고, 강이 되고, 강이 땅이 되고 땅이 산이 되고, 결국은 이것이 곧 그것이며, 네가 곧 나인 이치에 도달하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다.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런데도 내 주머니에 지구를 몽땅 짊어지고, 저 숱한 별들까지 주워 담으려 한다. 아 무겁다.
하여 빈 몸으로 대붕 위에 올라타 아바타처럼 한번 날아볼까.


 


<발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무(無)와 공(空)의 경지에 가 닿아 비가 구름이 되고, 강이 되고, 강이 땅이 되고 땅이 산이 되고, 결국은 이것이 곧 그것이며, 네가 곧 나인 이치에 도달하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다.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런데도 내 주머니에 지구를 몽땅 짊어지고, 저 숱한 별들까지 주워 담으려 한다. 아 무겁다.
하여 빈 몸으로 대붕 위에 올라타 아바타처럼 한번 날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