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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중의 특종

경인년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새해 들어 남북관계가 심상치 않다. 뭔가 터질 듯 한 분위기다. 지난해 10월부터 남북 고위 인사가 접촉을 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지난해 10월 20일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을 베이징에서 극비리에 만났다. 당시 이 의원은 만난 적이 없다고 일축했으나 내막은 그렇지 않았다.
남북 고위 접촉은 계속됐다. 이번에는 베이징이 아니라 싱가포르다. 북측 대화 파트너는 역시 김양건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남측 파트너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이상득 의원을 비롯해 김덕룡 민화협 상임의장과 원세훈 국정원장 등 9명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모두 부인하고 있다. 다만 남북 고위인사 접촉기간 싱가포르에 체류한 것이 확인된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가장 유력하게 꼽히고 있다.
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고 말과 행동도 가볍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 접촉에 노동부 장관이 왜 나섰겠느냐고 반문하지만 과거의 예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박지원 문화부 장관이 정상회담 대북 밀사역할을 한 점을 고려하면 노동부 장관이라고 해서 대북 접촉에 나서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확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정상회담 추진은 밀사(密使) 전담
그동안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을 보면 밀사의 고유영역이다. 철저하게 비공개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언론접촉과 노출을 극도로 피한다. 그래서 전혀 의외(意外)의 인사가 밀사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대통령의 최측근 심복(心腹)이다. 그럴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거론된 인사 이외에 또 다른 인물이 대북 고위접촉에 나선 진짜 주인공이 숨어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처럼 대북 접촉 인사가 장막(帳幕)에 가려 있는 것은 사안의 특수성(特殊性) 때문이다. 접촉인사는 물론이고 장소와 시점 등 모든 사안이 극비(極秘)에 붙여진다. 추진과정이 공개적으로 진행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또 구체적인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공개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담일정 등 구체적인 사항이 합의가 되고 결정되면 가급적 빨리 알려야 할 필요가 있지만 추진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비공개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정상회담 가능성 특종 기사의 파급력
남북관계 기사 가운데 가장 파장(波長)이 넓고 깊은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정상회담 기사다.  분단국가에서 남북 정상회담 관련 기사 보다 강도 높은 기사가 무엇이 있을까. 추진 과정부터 실제 회담내용에 이르기까지 사안의 성격상 무조건 1면 톱(TOP) 기사감이다.
필자는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잊지 못할 기록을 가지고 있다. 자랑 같지만 취재현장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기자생활하면서 특종 1, 2건 쓰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자기가 쓴 기사가 신문과 방송 할 것 없이 모두 톱기사로 받았다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행운이자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기사 송고 이후 대통령이 귀국 기자회견에서 직접 기사 내용을 확인해 주었다. 특종기(特種記)를 남기는 것도 또 하나의 역사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어 당시 기억을 옮겨보면 대략 이렇다.

남북한은 1991년 9월 19일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가입일 당시 북한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현 직책 외교부 제1부상)을 인터뷰한 것이다. 기사 제목은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김일성, 정상회담 희망’ 등이다.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잇따라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기 때문에 요즘은 강도가 덜하지만 그 당시로는 획기적인 제목이었다. 분단 이후 첫 유엔가입에다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담은 내용이기 때문에 파급력 또한 간단치 않았다. 혼자 단독 인터뷰는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 기자들과 합류해 얻은 기사다. 강석주 부상은 지금도 그 직책을 계속 맡고 있으니 남한 외교가와 비교하면 사뭇 다른데, 외교가 일생의 업(業)이라고 볼 수 있다. 강석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측근 인물로 대외관계를 총괄한다. 김계관 외무상이 있지만 얼굴 마담에 불과하고, 외무성의 실권은 강석주에게 있다. 북한에는 이처럼 명목상 직책과 실권 직책이 따로 있는 것이 더러 있다.


뉴욕 파견근무의 아름다운 추억
필자는 89년 방송국 1기생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91년 보도국 1기를 대상으로 실시된 미국 뉴욕 파견 근무를 했다. 3번째 파견근무였는데 91년 7월부터 9월까지 뉴욕에 머물렀다. 정확하게 말하면 6월 하순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국빈방문(State Visit) 2진 동행취재부터 시작했다. 그 때의 대통령 순방취재 경험은 그 이후 여러 가지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 해 10월 중순쯤 귀국했으니 약 4개월가량 미국 생활을 했다.
당시 필자는 미국이 초행길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했는데,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 차이나타운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대통령의 첫 기착 숙소인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 호텔에 임시로 마련된 기자실에서 홀로 새우잠을 외롭게 청한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노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캐나다를 들러 귀국했다. 필자는 뉴욕에 계속 남아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간 언론매체인 KBC(Korea Broadcasting Coporation)에서 파견근무했다. 상근 인력와 시설규모은 적어도, 라디오와 TV을 비롯해 한국일보 한국판과 미주(美洲) 현지판, 그리고 영자신문 등 5개 매체를 운영하는 종합미디어그룹이었다. 파견 근무인 만큼 서울 기사송고도 하고 현지 방송도 겸하는 1인 다역(一人 多役)을 수행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맨하탄에 소재한 유엔 본부 공보실(Liason center)에 가서 취재도 하고 인터뷰도 했다.


강석주 부상의 특종 기사…남북 정상회담 가능성
그리고 그 해 9월 남북 유엔 동시가입이 확정되고 관련 취재에 들어갔다. 유엔 본부는 물론이고 암스테르담 애버뉴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도 가보고, 유엔본부에서 간혹 2명 내지 3명씩 동행하는 북한 대사관 직원들에게 말을 걸어 보기도 했다. 그 때마다 대부분 묵묵부답이거나 ‘일 없읍네다’라며 새침데기처럼 사라졌다.
정작 유엔 가입일 외교부 기자실이 유엔 본부 건너편 프라자호텔에 마련됐다. 입사동기인 이형규가 외교부 출입기자로서 유엔가입 의미와 스케치를 담당하고, 필자는 대통령 연설 내용 리포트를 맡았다. 연설이 끝나고 유엔본부 2층 인도네시아 라운지를 거쳐 기자실로 이동하는데 일본 기자단과 함께 강석주가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당시 국회 출입을 하다 뉴욕으로 갔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경제신문의 스끼오끼 다카부미 서울지국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카부미씨는 눈으로 말했다. 강 부상과 인터뷰가 있으니 잠자코 합류하라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눈짓이다. 가끔은 말 보다 눈을 통한 의사전달이 더 확실하고 분명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일본 기자단을 따라오던 동아일보 모 선배는 정작 벽 커튼 뒤에 숨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필자는 당당하게 기자단에 합류해서 강석주의 경해에 접하면서 발언내용을 취재할 수 있었다. 서둘러 대통령 연설과 강석주의 기자회견 내용을 리포트하는데 기자실이 발칵 뒤집혔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당시 대변인이었는데, 필자에게 와서 기자단 브리핑을 부탁했다. 기자생활 3년차 그것도 신생 방송국 초년병이라 정말이지 정신이 없었고 어떻게 기사 풀(pool)을 했는지 지금도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나 기사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신문과 방송이 톱기사로 받고 대통령까지 확인을 할 정도였다. 당초 유엔 가입일 전국 각 신문과 방송은 대통령의 유엔 가입연설 기사가 톱으로 예정돼 있었는데 필자의 기사로 교체됐다. 그 때의 과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흔히들 운칠기삼(運七 技三)이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도 가슴 벅찬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발문>
새해 들어 남북관계가 심상치 않다. 뭔가 터질 듯한 분위기다. 지난해 10월부터 남북 고위 인사가 접촉을 하기 시작한 이후 남북 고위급의 접촉은 계속되고 있다. 접촉 장소도 베이징과 싱가포르 등 다양하다.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부인하고 있으나 내막은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을 보면 철저하게 비공개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언론접촉과 노출을 극도로 피한다. 그런 점에 비추어볼 때, 확증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