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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貴한 인연因緣을 소중所重하게

정우頂宇스님
본지 발행인
구룡사 회주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합니다. 예년에 비해 춥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특히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집안에서 들고 날 때나 절에 오실 때에도 매사에 조심 하셔서 넘어지는 낙상으로 가족들이 걱정하는 일은 없도록 하셨으면 합니다.
오늘처럼, 법문하는 날이면 소임자所任者에게 절 살림을 물어봅니다. 이렇게 크고 웅장한 법당法堂이 구청區廳이나 시청市廳에서 운영하고 있는 회관會館과 같은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97년도, IMF라는 어렵고 힘든 사회적 환경에서도 우리는 불사를 이루었습니다. 여래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동참해주신 불자佛子들은 다시 한 번 생각을 모아 주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요?
우리는 매일 법당에서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축원을 하고 있습니다.


『…화주化主 시주施主 도감都監 별좌別座…』


중요한 소임자의 소중함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절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우리 가족이 함께 다니는 본찰本刹의 화주가 되고, 시주가 되고, 도감이 되고, 별좌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저는 오늘, 여래사 초하루법회를 하기 위해서 어제 오후에 돌아왔습니다. 오늘 초하루 법회가 아니었으면 미국에서 더 머무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자님들과 함께 하고 있는 한, 선실禪室에 들어가지 않고 있으면, 언제나 법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부처님 전에 올려져있는 공양물을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의 소회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우리네 어린 시절은 가난했습니다. 그 어렵던 시절에 우리네 어머니들은 밥 지을 때가 되면, 식구들이 먹을 식량을 최소화하고 거기에서 또 한 스푼씩 떠서 작은 항아리에 담아 놓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것을 좀도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에는 무우도 썰어 넣고, 고구마와 감자도 넣고, 시래기도 곁들여서 밥을 지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아둔 곡식은 어려울 때 값지게 쓰여지는 일들을 보면서 성장했습니다.
우리도 여러 해 전부터 구룡사와 여래사 등, 포교당에서는 NGO 활동의 일환으로 저금통에 동전 모으기를 나눔의 불사로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 가난한 시절 우리네 어머니가 신주단지 모시던 것처럼, 우리불자들도 절에 있는 작은 저금통에 동전을 모아서 가져오시면, 그 보시금들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자비의 나눔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 동참하는 불자들은 몸에 배인 근검절약으로 검소하게 살면서 값지고 소중한 인연을 지을 수 있는 넉넉함이 우리 교단의 공동체共同體의 신행信行입니다.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항상 기도하는 불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도祈禱에는 지극한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도道를 구하고자 하면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라. 정성이 서로 감응하면 능히 도과道果를 얻는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라. 만일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구하면 반드시 그것을 얻는다.』


그렇습니다. 좋은 사람이 다가와 마음의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그 사람 마음이 닫혀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 선행先行되어야  합니다.
《열반경涅槃經》에서도 『굳게 잠겨 있는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의심疑心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집착執着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스스로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의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심의 허물은 상대방에게 있습니까, 내 자신에게 있겠습니까?
자신의 마음을 굳게 잠그는 큰 병이 바로 의심병인데, 이 의심병은 미움과 질투嫉妬, 시기심猜忌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더 나를 내려놓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사회적인 일상생활에서는 착한 마음을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니 부모의 태중을 통해 인간의 몸을 받아 이 세상에 왔어도, 우리가 인간의 몸으로만 항구불변恒久不變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각自覺해서 이런저런 의심을 떨치고 지혜롭게 통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길에서 어느 때는 알로써 왔고, 어느 때는 습한 기로도 왔고, 어느 때는 변화되어 세상에 왔습니다. 이렇게 몸을 받아 번뇌망상煩惱妄想에 익숙하도록 습관習慣이 길들여져 있습니다. 훈습熏習에 젖고 번뇌망상에 찌든 일상생활의 연속이 윤회輪廻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견물생심見物生心입니다. 우리의 이 몸은 업業과 번뇌로 인연因緣 지어져, 늙음이나 병듦이나 죽음에 이르러서는 더욱 감당하기 힘든 번뇌에 시달리는 삶이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저는 살아오는 동안 여러 차례 인생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생각해보면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오늘을 여한 없는 인생이 되도록 노력 한다면, 살아온 시간들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노환老患에 노탐老貪까지 오고 있습니다. 이 몸은 의지대로 안 됩니다. 젊은 시절을 돌이켜,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노병사老病死는 역순逆順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스스로 정화淨化 될 수 있는 공간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젊었을 때, 지혜롭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직장인을 위한 생존 경제학》에서,
“나이가 들수록 깨끗하게 잘 입고 다니고, 각종 모임이나 결혼식 또는 초상집에도 잘 찾아다니고, 마음의 문을 열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가급적 말은 삼가해야 한다. 또 노욕老慾을 부리지 말며, 웬만한 것은 포기하고, 기분 좋은 얼굴에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 하고, 돈 내는 것을 즐기고,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노망老妄이라는 말은 늙어서 “허망해졌다”는 말인데, 망자의 한문 받침 하나만 바꿔 잊을 망忘자를 쓰면 재미있는 말이 됩니다. 늙어지면 생각이 잊어진다는 뜻인데, 나이 들어가면서 생각을 잊는다는 것은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허망한 마음 때문에 부리는 욕심이 노욕老慾입니다. 나이 먹으면서 부리는 욕심慾心입니다. 젊어지려고 욕심 부리고, 건강해지려고 욕심 부리고, 더 가지려고 욕심 부리다가 그동안 주었던 것까지 후회하기 시작 합니다. 다 내려놓을 일입니다.
그동안 검소하게 살면서 한푼 두푼 모아놓은 재산, 친구와 이웃들 만나면 밥도 사 주고 자손들에게 용돈도 주어야 합니다. 내가 누구에게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도 누가 주면 기분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돈 내는 것을 즐기라고 했습니다. 차곡차곡 모아서 뭐할 겁니까? 나이가 들어가면, 인생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속에 갇히지 말고 인생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다른 사람의 허물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언젠가는 반드시 내게로 되돌아와 나를 손상시킬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소리를 듣거든 마치 나의 부모를 헐뜯는 것처럼 여겨라. 오늘 아침에는 비록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했지만, 내일은 반드시 나의 허물을 말할 줄 알아라. 그러나 무릇 있는 바의 상相이 다 허망한 것이니, 비방하고 칭찬함에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기뻐할 것인가?』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둘이 앉아서 남의 말을 하면서도 그 사람을 만나면, “어디서 들었는데, 누구누구는 이렇게 말을 하더라.” 합니다.
그 사람은 본인이 남의 말을 하였으면서도 자신이 흉을 보았는지, 상대방에게 들었는지 잊어버립니다. 그런 사람을 자아도취증自我陶醉症, 자아상실증自我喪失症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시대의 어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통찰력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선근과 지혜가 있으면 세상을 바로 볼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지혜 있는 이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속내를 드러낼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속내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물에 기름 같은 인생이 아니라, 물과 우유 같은 통通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지혜로움은 자기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으로 살면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문을 열면 우리 복력福力으로도 세상을 충분히 빛낼 수 있습니다.
지하차도나 터널을 지나가다 보면 낮에도 전기가 켜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터널 안은 어둡습니다. 그러나 밤에 지하차도나 터널은 전등이 한두 칸 씩 건너 등불이 꺼져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도 밤에 지하차도나 터널은 밝습니다. 그것은 전등을 중간 중간에 꺼두었어도 그 터널 안이 밝은 것은 밖이 더 어둡기 때문입니다.
임진년에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 다가오는 새해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선지식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