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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음을 베푸는 성자’ 관세음보살

현재호
연세대학교 의료공학 박사과정|여래사 거사림회 총무이사|blog.daum.net/hyun-jaeho


‘구고구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누군가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
누군가로 인하여 삶이 어려워진 분…
원망과 한탄이 가득한 분…
어려운 인간관계로 인하여 삶이 곤궁해진 분…
시끄러운 이웃 때문에 괴로운 분…
사람 때문에, 환경 때문에 짜증이 나는 분…
이러한 분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1. ‘두려움 없음을 베푸는 성자’ 
관세음보살이라는 명호 앞에 ‘구고구난’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이는 고통에서 구해주고, 환란에서 구해준다는 의미이지요. 그런 이유로 관세음보살을 또 다른 말로 지칭하기를 고통과 환란을 바라보는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그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주신다는 의미로, ‘두려움 없음을 베푸는 성자’라고 합니다. 이 말은 (베푼다고 하였으므로) 중생들의 어려움과 급한 환란 가운데에서 ‘두려움 없음’이라는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깊이 있게 설명 드릴 예정이며, 이것을 명확히 이해하시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사료 됩니다.


2.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게… 
여기서, ‘두려움 없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말이 조금은 애매 합니다. 그래서 다시금 곱씹어 잘 새겨야 합니다. 두려움 없음이란 ‘두려움을 없게 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새기면 중생들이 말하는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느끼지 않게 해준다는 의미이며, 다시 새기면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게 해주시고 환란을 환란으로 여기지 않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관세음보살은 고통이 없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고통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그 힘을 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관세음보살 명호를 외운다고 해서 괴로움이 없어지거나, 문제가 해결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이든 환란이든 그 상태는 그대로 있으되 그것을 고통과 환란으로 보지 않고 받아들이게 해준다는 것이며, 그것은 그 고통의 본질과 이유, 그 환란의 본질과 이유를 중생 스스로 알게 해 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깨달음의 길로 가는 것이지요. 왜냐 하면 고통이 없는 세상은 존재 하지 않으므로 주어진 고통을 바로 보는 눈을 갖게 함으로써 스스로 거듭나고 스스로 불성을 찾게 해주는 것이 ‘구고구난’인 것이지, 겪고 있는 고통을 없애 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관세음보살이든 지장보살이든 석가모니 부처님이든 비로자나 부처님이든 이 분들이 절에 가만히 앉아서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 줄 수 있는 능력도 없거니와, 그런 신神 적인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3. 원수를 사랑하라 
불교에서는 주어진 상황으로 인하여 힘들어 하는 중생들에게 그 상황을 제거하기 보다는 진리를 바탕으로 그 상황을 해석하고 분석하여 그 고통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세상을 관찰하여 자기 성찰을 하고 거듭나서 마음의 불성을 찾으라는 것이 기본적인 취지입니다. 성경에서도 베드로 전서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너에게 악행 한 자의 이름을 받들어 하나님께 찬양하라.”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는 원수 같은 사람을,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질 것 같은 그 원수의 이름을 받들어 하나님께 찬양하라니…. 그게 왠 말입니까? 우리 중생들은 (교회라면 목자들은…) 모두가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말했는지….


4. 32상으로 몸을 나투어… 
관세음보살 보문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보문품에서는 중생들에게 관세음보살을 ‘두려움 없음을 베푸는 성자’라고 표현하는 이유에 대하여 명확한 설명을 합니다. 그 이유인 즉, 32상 또는 그 이상으로 모양으로 몸을 나투어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였습니다. 32상으로 몸을 나투어 중생을 제도 하는 것이 바로 ‘두려움 없음을 베푸는 성자’인 이유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32상으로 몸을 나투어 제도하기 때문에 ‘두려움 없음’을 우리에게 선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32상으로 몸을 나투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32상이라는 것은 서른두 가지라는 의미보다는 다양한 모양으로 몸을 나투어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부처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부처의 몸으로 제도하시고…. 거사의 몸으로 제도 할 이에게는 거사의 몸으로 제도하시고…. 동남, 동녀의 모습으로 제도 할 이에게는 동남, 동녀의 모습으로 몸을 나투어 진리를 말해준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여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제도해준다고 해석합니다. 그 근기에 맞추어 이해 할 수 있도록 제도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이론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왜냐 하면 불경 중에 어딜 보아도 32개의 근기에 맞추어 설명한 내용은 없거든요. 그러니까 잘못 해석한 것이지요.


5. 우리 마음속의 불성을 찾아… 
정확하게는 이런 의미입니다. 자! 여기서 설명을 위하여 한 가지 전제 조건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처는 모든 중생들이 불성을 찾기 바란다’는 것입니다. 불성을 찾게 해주는 것이 ‘제도’입니다. 맞죠?
예컨대, 어떤 남편이 부인을 지겹게도 괴롭혔다고 가정해보죠. 그 남편은 절에도 교회도 가지 않았고, 그 어떤 종교도 부인했으며, 오로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했다고 가정하죠. 자기 잘난 멋에 살아가는 그 남편이라는 사람… 이 남편을 제대로 정신 차리게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른 예로,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는 사실에 늘 우쭐했습니다. 본인은 나름 겸허한 척 했지만, 도움을 받은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늘 미안하면서도 그 우쭐하는 모습에 마음속으로 반감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도움을 받으면서도 미워했던 것이죠. 만일 도와주는 입장에서 베풀고도 베풀었다는 사실 조차 본인 스스로 잊을 정도로 무주상보시를 하였다면, 도움 받은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반감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주상보시(음덕)가 아닌 양덕(자기가 도왔다고 과시하거나 도왔다는 것을 잊지 않는 행위)의 형태로 도왔으므로 도움 받은 입장에서는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렇게까지 고맙거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도와주고도 미움을 받는 이 어리석은 사람을 정신 차리게 해 줄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위의 두 가지 예를 보시면…, 누군가 더한 사람(더 지독하거나, 더 나쁘거나) 만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벌 받는 일일수도 있고, 정신 차릴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맞죠?


6. 인욕忍辱바라밀 
여기서 잠시 육바라밀에서의 인욕을 거론하여야 하겠습니다. 인욕바라밀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은 모두 부처입니다. 따라서 앞에 있는 사람이 욕을 한다면, 그것도 부처의 말입니다. 부처의 말은 새겨들어야 합니다. 그 욕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야 할 수도 있고, 내가 왜 욕을 먹게 되었는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욕보이게 된(힘들어지게 된)것을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분석을 하여야 하고 수행의 문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육바라밀의 세 번째인 인욕바라밀입니다.


7. 지금의 고통은 불성을 찾게 해주는 고마운 인연 
보문품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거사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거사의 몸을 나투어 제도하신다.’
첫 번째 예에서 부인을 속 썩이는 남편이 누군가 더 지독한 사람을 만나서 마음고생을 시작했다고 가정하죠. 그렇다면 남편은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과정입니다. (물론 정신 차리기는커녕 새로 만난 지독한 사람하고 대판 싸울 수도 있겠지요) 이때 정신을 차리면 제도가 된 것이고, 싸움이나 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제도가 안 된 것이지요. 그러면 언젠가 더욱 더 지독한 사람을 만나겠지요.(정신 차릴 때 까지…)
두 번째 예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록 무주상보시는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분명히 남을 도와 준 그 사람은 (도움 받은 사람의 감정을 힘들게 하였으므로) 언젠가 누군가로 인하여 힘든 일을 겪을 수도 있겠지요. 그 힘든 일로 말미암아 자신의 그릇된 과오를 뉘우치고 깨달으면 제도 된 것입니다. 물론 깨닫거나 뉘우치지 못하고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을 대상으로 원수 삼을 수도 있겠지요. 이 경우는 당연히 제도가 되지 않은 것이며, 그렇다면 더욱 본인만 힘들어질 것입니다. 더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그 마음의 병이 실제 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다겁생의 두터운 업장을 녹일 기회가 왔는데 이를 외면하고 업을 더 쌓는 것이지요.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8. 세상의 모든 이가 부처요 관세음보살이다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보문품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관세음보살의 역할에 대하여 말입니다. 그리고 중생과 관세음보살의 관계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명확히 설명하십니다. 보문품에서 말하는 것을 정리하면 어떤 사람을 정신 차리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정신 못 차리면 누군가 다른 사람을 통하여 정신 차리게 된다는 암시를 줍니다. 이때 정신 차리게 하려고 나타난 어떤 사람…. 그 사람을 관세음보살이 거사의 몸으로 나투었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아니면 하늘에… 허공에… 부처가 있나요? 하나님이 있나요?  관세음보살이 있나요?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모두가 인간관계입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정신을 차릴 수도 있고, 문제를 만들 수도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본인마저 마음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마음의 꽃이 피고 그 순간 만발합니다. 이를 심화돈발心花頓發이라 하지요. (좋던 나쁘던)어떤 감정을 느끼자마자 감정이 극에 달하는 것입니다(만발). 


9. 인연법 
결과적으로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어떤 상황들. 특히,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갈등과 불화의 요소는 깨달음을 위한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도, 하나님도 똑같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나쁜 일이 생기면 그것을 분석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지난날의 과오가 무엇인지 캐고 또 캐서 찾으라고 합니다. 12인연법이라는 것이 있지요(12연기법은 일본식 표현임). 12인연법에서는 그 무엇이라도 원인이 제공되었기 때문에 일이 전개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내가 화를 입은 것은 언젠가 내가 그에게 화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이 대목에서 기분이 조금 상하실 수도 있으십니다. 본인은 잘못이 없는데…,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이런 일이 생긴 것인데…, 마치 내가 뭔가 잘못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주장하는 듯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기분이 별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눈을 감고 기나긴 세월을 차분히 되짚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명상을 하셔도 좋습니다. 아무에게도 말 못할 나만이 아는 이유가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콩이 싹을 틔운 까닭은 제가 콩을 심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