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1.
금년부터는 현재 우리나라의 불교 철학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좀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독자들께서는 책 제목 정도는 알아두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필자의 독서 경험을 살려서 소개하려고 한다. 필자의 경험을 소개하는 것은 필자의 경험이 대단해서는 아니다. 필자 또한 옛 방식 대로 따라온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근대시기와, 또 그 이전 봉건시대의 독서 양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
필자가 불교경전을 배우게 첫 인연은 참으로 우연적이었는데, 그 첫 교재는 중국 온릉溫陵 땅에 있는 개원연사開元蓮寺에 주석했던 계환戒環 선사의 『수능엄경요해』였다. 송 휘종 연간(1119~1125)에 활동했던 계환 선사는 자신의 저술에 ‘료해了解’라는 이름 붙이기를 좋아했다.
다음은 『금강경간정기』를 읽었다. 반야부 경전을 저술한 목적이, 당시 사상계에 활약하던 ‘요소실재론자’들의 주장을 논파하여 근본불교의 ‘무상無常’과 ‘무아無我’ 정신 회복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실재하는 요소가 인간 의식의 내부에 있든 혹은 외부에 있든 일체가 논파의 대상이었다. 이 점에 주목한 당대唐代의 규봉 종밀은 세친 논사가 ‘27단의설段疑說’을 근간으로 주석한 『금강반야바라밀경론』에 입각하여 『금강경찬요』를 저술하고, 이 책에 다시 송대에 장수 자선이 주석을 보태서 『금강경간정기』를 만들어낸다.
이어서 『화엄경』을 읽기 위한 예비 단계로 두 종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규봉 종밀의 『원각경대소』이고 다른 하나는 『대승기신론필삭기』이다. 이 두 책을 읽으면서 대승의 철학적 논리와 수행 이론에 기초를 다졌다. 그런 다음에 『화엄경수소연의초』를 읽었다. 이 과정에서는 많은 참고 도서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는 봉선사의 월운 강백께서 정리해 놓으신 각종 <과도科圖>와 <사기私記>가 절대적이다.
3.
이상이 소위 교학(화엄종)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출가자들의 독서 과정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위에서 거론한 책들을 잘 섭렵해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학인學人’으로 일생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독서를 할 수 있는 힘이 붙는다. 한편, ‘수좌首座’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선종에서 읽어야 할 책이 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을 방패삼아 책을 읽지 못하면 선승으로서 자격을 갖출 수 없다.
참선 수행하는 선승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위 <사집四集>을 먼저 익혀야 한다. 규봉 종밀 선사가 쓴 『선원제전집도서』, 그리고 고려의 보조 선사가 편집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를 읽는다. 그리고 이어서 송나라 시대에 사대부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묶어둔 대혜 종고 선사의 『서장書狀』을 읽는다. 그리고 원나라 때에 활동했던 고봉 화상의 『선요禪要』를 읽는다. 이 책들에도 월운 스님께서 마련해놓으신 <사기私記>가 있으니 반드시 참고해서 읽어야 한다. 그런 다음, 시간을 내어서 『경덕전등록』과 『선문염송』을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이 두 책에도 월운 강백께서 정리한 <사기私記>가 있으니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 이런 책들에 등장하는 선사들의 수행과 그들의 삶의 태도를 익힌 다음에, 저마다 인연 있는 절에 살면서 참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승의 살림살이이다. 반면 학승들은 위에서 거론한 책에서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각종 강의와 집필을 하면서 ‘관행觀行’을 닦는다. ‘관행觀行’이란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지관止觀’ 수행으로 이름 붙이기도 한다.
4.
이번 호에서는 『서장』을 소개보기로 한다. 그 중에서도 선승들이 관계를 맺었던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무슨 내용으로 서신 왕래를 했는지를 소개하겠다. 이 편지에 등장하는 상대는 모두 ‘사대부’들이다. 그것도 고관대작들이다. 송대의 관직제도는 3성省, 6부部, 24사司인데, 대혜 선사와 편지를 왕래한 상대들은 중서성의 중서시랑과 문하시랑도 많았고, 6부의 부장인 상서와 시랑도 많다. 당송시대 ‘과거’의 등용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높다. 과거시험에 떨어져서 신세타령하는 한유의 시에도 잘 들어난다. 대부분의 유생들은 ‘점액어點額漁’ 신세가 되어 아가미와 비늘을 물가에 드러내 태양에 그슬리기 십상이다. 대혜 종고(大慧 宗. 1089~1161)가 바로 그들과 서신왕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절에 온 어린 조선의 사미들에게 읽히는 것이 바로 『서장書狀』이다. 아래에서는 『서장』의 본문을 읽어보기로 한다.
북종 휘종 시절 참지정사 벼슬을 한 탈공 거사 이한로李漢老 대감과 주고받은 편지가 몇 통 있다. 전후의 맥락을 보건대 이 참정參政은 대혜 선사의 가르침으로 ‘정견情見’이 ‘돈석頓釋’하는 체험을 한 것 같다. 그런 이 참정이 대혜 종고에게 다시 가르침을 청하니 편지로 이렇게 답한다.
(1) “천만기취千萬記取 전일지어前日之語어하소서 이칙돈오理則頓悟라 승오병소乘悟.銷이어니와 사칙점제事則漸除라 인차제진因次第盡이라하니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절불가망료切不可忘了하며 기여고인其餘古人의 종종차별언구種種差別言句도 개불가이위실皆不可以.實이나 연역불가이위허然亦不可以.虛니이다. 구구순숙久久純熟하면 자연묵묵계자본심의自然默默契自本心矣라 불필별구수승기특야不必別求殊勝奇特也로소이다.”
또 이렇게 당부한다.
(2) “공公이 기일소.一笑에 활개정안豁開正眼하야 소식돈망消息頓亡하니 득력부득력得力不得力은 여인음수如人.水에 냉난자지冷煖自知矣니이다. 연일용지간然日用之間에 당의황면로자소언當依黃面老子所言하야 고기정성.其正性하며 제기조인除其助因하며 위기현업違其現業이니 차내료사한此乃了事漢의 무방편중진방편無方便中.方便이며 무수증중진수증無修證中.修證이며 무취사중진취사야無取捨中.取捨也니이다.”
위에 (1)을 인용한 의도는, 대혜가 점수를 배제하지 않았다는 문헌적 증거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수행을 오래도록 해서 푹 익어야 한다. (2)를 인용한 이유는, 대혜는 어묵동정하는 일용처日用處에서 ‘도덕감정’에 주목하면서 즉 ‘사상연마事上硏磨’를 주문했다. 산 속에서 무슨 수련을 하는가? 벼슬살이하고 장사하면서 그러는 일상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닌가! ‘묵조처默照處’에 빠져서는 안 된다. 대혜의 『서장』을 읽으면서 느끼는 필자의 생각은 선을 하려면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권을 나누기 위한 소통이 아니라, 시대를 고민하고 인간을 고민하는 그런 소통 말이다.
5.
중국을 연구하는 소위 ‘중국학’을 하려는 연구자들은 이들을 ‘독서인’ 계층으로 분류하여, 이들의 확대와 확산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 ‘중국의 근대 주체 세력’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이런 연장선에 당시 종교계의 역할도 연구한다. 이 경우 주목을 받는 인물들이 특히 송대의 선사 집단이다. 당시의 선사들은 사대부와 밀접한 지식 관계 속에서 선불교를 확장시켜가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당시 그들 간에 오고 갔던 토론에는 시대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생과 삶의 주체로서의 ‘인人’이다. 요즘말로 하면 ‘사람(people)’이다. 현대 중국어로 하면 ‘런민(人民)’이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한 담론이 사대부 사이에, 또는 사대부와 선사들 사이에 오고갔다.
그들이 추구한 결과는 동일하다. ‘사람의 본성’에는 ‘도덕감정(moral sense)’이 선천적으로 있다는 것이다. ‘도덕감정’을 때로는 ‘자성自性’, ‘진여眞如’, ‘불심佛心’, ‘사덕四德’, ‘사단四端’, ‘본연지성本然之性’, ‘양지양능良知良能’ 등등 이름은 달리 붙이지만, 그것이 저마다 사람에 있으니, 그것에 입각한 도덕률(moral law)을 수립해서 일상을 그것에 맞게 살아가자는 것이다. 송대 이후에 펼쳐지는 이들의 이런 담론 전통을 중국에서는 ‘리쉐(理學)’라 명명하고, 대만과 유럽에서는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이라 명명하고, 조선에서는 ‘성리학性理學’이라 하는 등 명명법은 달라도 핵심은 같다.
사후의 해탈에는 관심이 없다. 길거리의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논했다. 도덕적 행위의 주체로의 ‘사람’에 주목했다. 중국을 대상화시켜 연구하는 세계의 지성들은 여기에 주목한다. 지역학의 일종으로 중국학을 하고, 그 중국학의 범위와 방법으로 선종을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