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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강의를 시작하면서

『화엄경』 강의를 시작하면서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지난해는 <생활 속의 불교>라는 고정제목을 가지고 독자들과 만났다.
제목 그대로 생활 속에서 꼭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주제를 뽑아 소개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런데 금년에는 <꼭 읽어야 할 『화엄경』>이라는 고정제목을 가지고 여러분을 뵙고자 한다.
『화엄경』은 당나라 시절 80권으로 번역된 한문 경전이 있다. 여기에 청량 징관 국사께서 소疏를 붙이고, 이것에 다시 자세하게 초.를 붙인 방대한 책이다. 조선시대 중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화엄경』의 ‘경’, ‘소’, ‘초’ 세 종류의 책을 한 데 묶어 목판으로 인쇄해서 천자문千字文의 순서로 책을 묶었다. 첫째 책에 천天이라는 글자를 메겼고 마지막 책에 관官이라는 글자를 메겼으니 모두 78책이 된다. 승려 교육의 고급반 교재이다.
78책 중에서 앞의 8책(천天, 지地, 현玄, 황黃, 우宇, 주宙, 홍洪, 황荒)은 『화엄경수소연의초』의 서문에 해당하는 소위 『현담懸談』이다. 책의 서지적 형태가 본문 앞에 달아 붙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인데, 한편 그 내용이 매우 심오하여 『현담玄談』이라고도 부른다. 『현담』은 불교 교리를 종합한 책으로, 교과서적 성격도 있다. 필자는 이 『현담』 덕에 불교교리 전체는 물론 『화엄경』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월간 붓다>의 지면에, 불교를 전공하지 않는 일반 독서인들에게도 『현담』을 활용하여 『화엄경』의 세계에 쉽게 그리고 제대로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를 시작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필자 나름의 사연이 있다.


2.
2019년 봄에 파주 광탄면에 위치한 고령산 보광사의 ‘일요경전법회’ 강사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 절은 신라 때에 창건된 사찰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필자는 1979년 보광사를 간 적이 있는데, 가게 된 이유가 지금 생각해보아도 참으로 기가 막힌다. 보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 말사인데, 이 절에 웬 괴한이 들어 절을 접수하려 한다는 것이다. 당시 필자는 봉선사 월운 강백 회상에서 몇몇 스님들 틈에 끼어 당나라 규봉 종밀 스님의 『원각경대소』를 청강하고 있었다. 강사 스님을 비롯해서 배우는 학인 스님들이 그 절로 가서 경을 보았다. 괴한을 막는데 장엄이라도 해 달라는 그 절 주지 스님의 간청이 있었던 듯했다.
40년 만에 다시 보광사를 가니 만감이 교차했다.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가 빈 말이 아니었다. 본 절은 물론 사내 암자인 수구암도 달라졌고, 영묘암도 달라졌고, 도솔암은 형편없이 쇄락했다. 납골당만 반질반질 할 뿐, 모든 곳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솜씨’ 탓에 까칠했다. 당시 기억으로는 『안반수의경』 경판도 있었는데 행방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나무로 깍은 네 마리 사자가 떠받치는 어산상도 보이질 않는다. 대웅전의 주불主佛은 비로자나불로 기억되는 데, 석가모니불이라는 명패가 붙어있다.
주련은 네 짝 중, 가운데 두 짝 ‘의정장엄상호수依正莊嚴相好殊’와 ‘구경천중등보좌究竟天中登寶座’만 남아있다. 그나마 아래쪽은 세월의 풍상에 글씨도 안 보인다. 풍경은 다 떨어져 바람 길이 훤하니 제행무상 그 자체였다.
그나저나 재가불자들의 제자 훈련을 다지는 게 내 임무였다. 부처님께 올리는 불공의 내용과 운곡韻曲을 지도하면서, 겸하여 교리공부를 시켰다. 송주성을 비롯하여 거불성, 헌좌게성, 가영성, 탄백성, 예참 등을 우리말로 하게 했다. 교리공부를 위해 『원각경』을 독송하며 본문에 등장하는 불교 용어 및 각종 이론을 소개했다. 『원각경』은 12분의 보살이 등장하여 부처님께 질문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대승과 소승의 종합 교리서 성격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원각경』 강의도 금년 2월이면 끝난다.
뜻을 같이하는 재가 불자들도 잘 따라주었고, 무엇 보다 주지 스님께서 헌신적으로 도량을 정비하고 포교에 전념하시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수도를 놓고, 전기 설비를 증설 보수하고, 위패단을 여법하게 만들고, 각 전각에 주련을 달고, 산림을 정비하고, 계곡의 행락 행위를 금지시키고, 절 입구에 공원을 조성하더니, 어느덧 풍경을 달아매었다. 『예기』 「악기」에 나오는 “군자청경성(君子聽磬聲 군자가 경쇄 소리 들을 때)” 하는 자기 성찰이 마음에 울렸다. ‘부처님 강토’ 지키는 일에 필자도 한몫 보태리라. 없어진 주련의 두 짝도 새로 달렸고, 바람에 날리는 경쇄 소리는 정정하다.


3.
없어진 주련을 새로 새겨 다니 4구의 게송이 서로 잘 들어맞게 되었다. ‘일요경전법회’의 대중들도 잘 다져지고 또 도량도 일신되었으니, 『화엄경』 강의의 꿈을 실천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나라 전통사찰 모든 곳이 다 그렇듯이 보광사도 화엄과는 깊은 인연이 있다. 대웅전에 모셔진 ‘화엄신중탱화’가 그렇고, 아침종성을 비롯하여 각종 불교 의례의식이 그렇다.
승려교육의 최고 과정에 『화엄경수소연초』를 본다. 다시 정비된 보광사 대웅전의 주련은 말해 무엇하랴.


인원과만증여여 因圓果滿證如如
의정장엄상호수 依正莊嚴相好殊
구경천중등보좌 究竟天中登寶座
보리수하현금구 菩提樹下現金軀


원인 되는 수행과 결과로서의 깨침이 원만하셔, 진여를 체험하셨고
머무시는 세상도 지혜의 청정한 깨침도 멋지고, 상호도 빼어나시며
저 높이 색구경천 허공 속에서, 보배로운 자리에 앉으셨건만
마가다국 보리수 밑에서도, 황금빛 찬란한 몸을 보이시네.


이 게송은 점안식 때에 쓰는 염불의 하나인데, 조선 현종 1661년에 간행된 『오종범음집』의 <점안의문>에 실려 있다. 거기에는 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 3신불身佛 가영歌詠이 모두 소개되어 있다. 보광사 대웅전 주련은 ‘원만보신 노사나불’을 찬송하는 가영이다. 법당의 주련과 모셔진 부처님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보광사의 주불主佛은 보신 부처님 상이었음이 증거 된다. 물론 『화엄경』의 교학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이 주련의 뜻을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화엄경』은 모두들 어렵다고 한다.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첫째는 글의 분량이 방대하기 때문이다. 한문으로 번역된 것으로 60권짜리도 있고 80권짜리도 있다. 1968년 80권짜리 한문을 한글로 번역하여 <한글대장경>에 실은 봉선사 운허(1892-1980) 스님의 번역은 200자 원고지 약 8,828매에 달한다. 요즈음 보통의 책은 1쪽에 원고지 3.5매가 들어가니, 약 2,520쪽의 책이 된다.
둘째는 내용이 깊고 방대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기본적으로 역사상의 석가모니불 당시 제자들과 주고받았던 중요 내용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거기에다 그 부처님이 입멸하신 뒤 승단이 분열되면서 잘못 이해된 불교사상 고쳐 읽기가 보태졌다. 이런 이유 등으로 어렵게만 느껴졌다.


4.
그러면 이렇게 어려운 데도 왜 그토록 『화엄경』이 널리 퍼졌고, 경 중의 왕으로 받들어졌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화엄경』이야말로 부처의 가르침을 정확하고도 총체적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엄경』의 이름 앞에는 ‘일승원교一乘圓敎’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즉 ‘일승원교대방광불화엄경’이 그것이다.
‘일승’의 뜻은 『화엄경』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들을 사바세계에서 열반의 세계로 운송하는 ‘수레(乘)’이다. 그런데 불교 교단의 분열과정에서 이 ‘수레’의 종류를 나누는 분열된 이론들이 대두된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그런 분열을 종합하고 통일하여 하나 된 수레를 천명한다.
한편, ‘원교’는 ‘원만교의圓滿敎義’를 줄인 말이다. 『화엄경』 속에는 모든 ‘가르침(敎)’과 ‘의미(義)’가 완전하게 갖추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수식어를 붙인다. ‘원교’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또 한국불교의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위에서 말한 『현담』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금년에는 『현담』을 활용하여 보광사 ‘일요경전법회’도 다시 진행하고, 또 <월간 붓다>의 독자들에게도 『화엄경』의 이치를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