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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 열 두 꼭지(12) 이해(6/6) 보광명전에서 하신 ‘부처님처럼 되기[等佛]’ 관련 법문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2022년 정월이 되었다. 새해의 처음이라 한자로 바를 ‘정正’ 자를 써서 정월正月이라 한 것이다. 매사에 시작은 중요하다. 마음먹은 일이 끝까지 잘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사람들은 시작할 때에 서원을 담아 신중불공神衆佛供을 올린다.
“저 불제자 아무 아무개는 이렇게 노력하여, 이러 저러한 소원을 성취하고자 합니다. 여러 신중님들 살펴주소서”
이렇게 말이다.
중생들의 노력을 중시하고 창조신을 부정하는 불교인데, 왜 신중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소원을 빌까? 궁금할 법도 하다. 신중 신앙은 대승불교에만 있는 특징으로, 이렇게 된 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고대 인도인들은 많은 신들이 세상사에 관계한다고 믿었다. 창조신을 비롯하여 자연 현상에 내재하여 세상을 정합적으로 운영하는 수많은 신들을 상상해내었다. 이것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세상을 설명하는 고대 인도인들의 일종의 과학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생전의 불교 수행자들은 이런 발상을 비판 부정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입멸하시고 약 4백 여 년이 지나 출현한 대승불교 경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런 브라만교의 ‘신神’들도 불교를 돕는다는 발상이다. 뿐만 아니라 브라만교의 사상을 불교 교리 안으로 수용했다. 물론 불교적으로 개량해서 말이다.
대부분 대승 경전에는 부처님의 설법이 끝나면, ‘청법대중’이 부처님 말씀을 잘 받들어 실천하고 보호 유지할 것을 서원한다. 그렇게 서원하는 ‘대중’ 가운데는 고대 인도의 여러 신들이 등장한다. 그 신들이 서원하기를, 이 경전을 수지독송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명을 바쳐 그 사람들을 지켜주고, 또 그 사람과 그 가족들에게 복을 주겠다고 말이다. 여기서 대승경전을 읽는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신들의 약속은 조건적이다. 대승을 믿고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들을 지켜주겠다는 조건형식이다. 그 속에는 대승을 비방하면 벌을 주겠다는 발상도 포함되어 있다.


2.
󰡔화엄경󰡕에도 그런 대승불교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하늘 세계를 관장한다고 하는 신들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송하기도 하고, 불교 수호를 맹서하기도 한다. 또 󰡔화엄경󰡕에서는 여러 보살들이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가 설법을 하듯이, 신들의 입을 빌어 진리가 설해지기도 한다. 제1회의 보리도량 법회에서 총 6품을 설법하고, 이어서 제2회의 보광명전 법회에서 총 6품을 설하신다. 그리고는 장소를 수미산 꼭대기 위에 위치한 ‘도리천’으로 옮겨 제3회에서 또 총 6품을 설하신다. 그 다음에 ‘야마천’으로 법회 장소를 옮긴다. ‘야마천’의 첫 법문 제목에 ‘오를 승昇’ 자를 써서 「제19 승야마천궁품」이라 했다.
‘야마천’을 관장하는 천왕이 부처님을 영접한다. 크고 멋있는 <보련화장 사자좌>를 마련해드린다. 그리고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이 궁전에 오래 계시면서 이곳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해주실 것을 간곡하게 청한다. 그리고 야마천왕은 과거 지난 세상에 무수한 부처님을 모시고 수행했던 경험을 회상하여, 대표적으로 명칭名稱 여래, 보왕寶王 여래, 희목喜目 여래, 연등燃燈 여래, 요익饒益 여래, 선각善覺 여래, 승천勝天 여래, 무거無去 여래, 무승無勝 여래, 고행苦行 여래 때의 일을 게송으로 아뢴다.
지난 세월의 무수한 부처님을 모시고 신중님들은 무수한 수행을 했고, 그에 따르는 신통력도 있고, 또 불교를 널리 펴고 수호하는 일에 온 힘을 다했다. 이런 󰡔화엄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화엄 신앙’이 발생했으니, 이는 대승불교권 중에서 한국 지역에만 있는 독특한 신앙이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이 󰡔화엄경󰡕과 인연이 깊었다는 역사적 증거이다. 또 그런 증거가 되는 「화엄경약찬게」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게찬문偈讚文>의 일종이다.  
한국의 법당은 크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에는 부처님이나 보살님, <중단>에는 화엄신중님, <하단>에는 돌아가신 조상의 영가단. 이렇게 상∙중∙하 3단 중에서 상단과 중단에는 ‘불공’이라는 이름으로 의례를 행하고, 하단에는 ‘시식’이라는 이름으로 의례를 행한다. 순서적으로는 상단의 불보살님께 ‘공양’을 마치고, 중단의 신중단에 ‘불공’을 올린다. 마지막에는 ‘영가단’을 향해 󰡔법성게󰡕를 독송해 드린다.
신중단에 모셔진 신들은 화엄회상에 참여했던 신들이다. 그래서 ‘화엄신중’이라고도 한다. ‘성스러울 성聖’ 자를 붙여 ‘화엄성중’이라고도 한다. 탱화로 모신 신중님들이지만, 그 신중님들을 향해 󰡔화엄경󰡕의 ‘엑기스’에 해당하는 「화엄경약찬게」를 독송한다. 지금 불공을 올리는 이 자리가 바로 화엄회상이란 믿음으로 말이다. 󰡔화엄경󰡕의 본문에도 나오다시피, 이 경은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에 설해지고 있다.


3.
이상은 화엄신앙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월이기도 하고, 또 이 때 외우는 「화엄경약찬게」는 󰡔화엄경󰡕 독서의 갈래를 잡는 데에도 꼭 필요하기 때문에, 새해 벽두에 독자님들께 소개하는 것이다.
이번 1월호에서 다룰 ‘보광명전’의 설법에 한정해서 말씀드리기로 한다. ‘보광명전’에서는 모두 세 차례나 모여 󰡔화엄경󰡕이 설해졌다. 첫 번째 모임에서는 「여래명호품」을 비롯한 총 6품이 설해졌고, 두 번째 모임에서는 「십정품」을 포함하여 총 11품이 설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모임에서는 「이세간품」 한 품이 설해진다. 우리나라 사찰 이름이나 스님들 법명에 ‘보광普光’이라는 말이 많이 들어간 것도 그만큼 우리나라는 화엄과 인연이 깊다는 증거이다.
이 번 달에도 역시, 󰡔화엄경󰡕 전체의 구조를 상기해둘 필요가 있다. ‘신-해-행-증’으로 나누는 큰 문단 말씀은 반복해서 드렸으니 그 관련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이번 1월호에서 설명하려는 ‘보광명전’의 설법은 두 번째의 ‘이해[解]’에 해당한다. 그리고 다시 ‘이해[解]’는 크게 <㉮의지해야 할 과보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닦아야 하는 원인이 무엇이냐에 대한 답변>, <㉰성취하게 될 과보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변>, 이렇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다시, <㉯>는 모두 6단락으로 나누어지는데, 즉, ①믿음[信] 관련 이해, ②이론[解] 관련 이해, ③실천[行] 관련 이해, ④발원[願] 관련 이해, ⑤체험[證] 관련 이해, ⑥부처님처럼 되기[等佛] 관련 이해이다.
금년 정월 필자는 <⑥부처님처럼 되기[等佛] 관련 이해>를 강의하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화엄경약찬게」를 활용하여, “십정십통십인품, 아승지품여수량, 보살주처불부사”를 떠올려보자. 위에서 말한 <⑥>에 해당하는 품은 모두 6품으로, 「십정품」, 「십통품」, 「십인품」, 「아승지품」, 「여래수량품」, 「제보살주처품」이다. 물론 설법 장소는 ‘보광명전’이다. 이 6품 중에서 앞의 3품은 <‘부처님처럼 되기[等佛]’ 위해 닦아야 할 원인 되는 수행>에 대해 ‘곧장 답변하는’ 부분이고, 뒤의 3품은 <‘부처님처럼 되기[等佛]’ 위해 닦아야 할 원인되는 수행>이 얼마나 깊고도 넓은 지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러니 앞의 3품이 핵심이고, 뒤의 3품은 보충이다. 핵심 주제는 ‘부처님처럼 되기[等佛]’이다. 목표는 부처님처럼 되기 위해서 닦아야 할 수행이 무엇인지를 이론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4.
󰡔화엄경󰡕이 방대하다는 말씀은 누차 드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전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요령要領’이 필요하다. 두루마기를 개거나 걸어둘 때에 ‘옷깃’을 잡아야 추단하기 쉽다. ‘핵심 되는 옷깃’이라는 뜻인 ‘요령’이 필요하다. 그 요령의 하나가 ‘과목치기’이다. 나무 가지 치듯 그렇게 각 문단들의 과목을 나누고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십정품」과 「십통품」과 「십인품」을 묶어서, 이 3품에서 다루는 핵심 주제가 바로, <⑥부처님처럼 되기[等佛] 관련 수행 이론>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 3품에서는 ‘부처님처럼 되기[等佛]’와 관련한 이론들이 설해진다. 그 이론을 <선정>-<신통>-<지혜>의 측면에서 제공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선정禪定’ 수행을 닦으면 그 결과로 신통력과 지혜가 생기고, 그래야 ‘부처님처럼 된다[等佛]’는 발상이다. 핵심은 「제27 십정품」이다. 보안보살이 부처님께 선정 수행에 대해서 여쭌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보현보살에게 그 일을 위임하신다. 이렇게 위임을 받은 보현보살이 대표적인 선정 열 가지를 설한다.
「십정품十定品」에서의 ‘정定’을 필자는 위에서 ‘선정’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화엄경󰡕 본문에서는 ‘삼매三昧’라고 표기했는데 같은 뜻이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일종의 명상 훈련이다. 이런 명상 훈련을 잘 하면, 부처님처럼 된다는 이론 설명이 이곳 <⑥>에 해당하는 총 6품의 핵심이다. 󰡔화엄경󰡕 독자들께서는 이 점을 유념하여, 「제27 십정품」에서 ‘삼매’에 주목하면서 암기해 둘 것을 권장한다. 경을 볼 때에는 중요한 과목들은 외워두어야 한다. ‘구구단’을 외워두면 계산에 편리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기억에는 한계도 있고 또 정확성이 떨어질 염려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선시대 화엄의 대가 묵암 최눌(1717-1790) 강백께서는 <화엄품목華嚴品目>이라는 ‘첩자帖子’를 고안하셨다. 󰡔화엄경󰡕 읽는 이들은 이 첨자를 옆에 두고 활용하실 것도 권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