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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끄리뜨 원전으로 만나는 원형의 금강경

 


김명환
불광출판사 제작부장



『산스크리뜨 금강경 역해』
정가 28,000원
현진 역해
152*225mm|480쪽
불광출판사 펴냄


산스끄리뜨 원전으로 다시 읽는 『금강경』!
습관적인 이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만나다
붓다가 제자 수보리와의 문답을 통해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를 밝힌 경전 『금강경』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空 사상’의 기초가 되는 내용과 함께 보살행에 대해 서술한 대승불교 초기에 기록된 핵심 경전이자 철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는 경전이다. 수많은 경전 가운데에서도 주석서나 강설서가 가장 많은 경전이라는 것은 『금강경』이 얼마나 중요한 경전인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붓다의 가르침이 얼마나 심오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반증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접한 『금강경』은 최초 기록본인 산스끄리뜨본이 아니라 이를 한자로 옮긴 한역본 『금강경』이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었던 당시 함께 전해진 것이 한역 『금강경』이었던 데다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로서는 한역 『금강경』을 훨씬 쉽게 접할 수 있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산스끄리뜨로 기록된 필사본이 불과 120여 년 전인 1900년 즈음에서야 발견된 탓도 있다.
번역은 본래의 주제나 의미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지지만, 번역 과정을 거듭 거치면서 번역자의 생각이나 의도, 그리고 번역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담길 수밖에 없다. 『금강경』 역시 산스끄리뜨에서 한문으로 옮겨지면서 중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녹아들 수밖에 없었고, 이는 우리가 인도인이었던 부처님의 설법을 중국인의 시선에서 이해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 책은 산스끄리뜨 원전 『금강경』과 대표적인 한역 『금강경』인 구마라집 스님본과 현장 스님 번역본을 함께 수록하여 리얼리티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부처님 당시의 가르침은 살리는 동시에 한역본의 내용을 다시 한번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하였다. 특히 한역 『금강경』에 녹아 있는 중국적 사고는 걷어내고 당시 인도의 사상·문화적 배경에 대한 풍부한 해설을 덧붙였다. 이를 통해 『금강경』의 본래 모습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그 안에 담긴 ‘일체법무아’의 가르침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산스끄리뜨의 생생한 리얼리티와
핵심을 찌르는 한역본의 장점을 모두 살리다
‘번역’은 해당 언어를 아무리 능숙하게 구사한다 해도, 원전의 정확한 뜻을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우리말 ‘붉다’, ‘빨갛다’, ‘새빨갛다’ 등의 단어를 영어나 한자로 옮길 때는 ‘레드red’나 ‘적赤/홍紅’ 정도에 그칠 뿐, 그 미묘한 의미 차이를 살릴 수 없는 것과 같다.
한자로 옮겨진 『금강경』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한역본 『금강경』에 등장하는 한자 ‘상相’의 경우, 산스끄리뜨 원문에서는 ‘lakṣaṇa(인지되거나 감지된 결과물로서의 표시, 징후)’, ‘nimitta(세밀히 측정된 것, 정신적으로 섬세하게 가늠한 것)’, ‘saṁjñā(기억이나 경험 혹은 타인의 설명으로 보완함으로써 안다고 여기는 것)’의 세 단어로 나타난다. 하지만 언어의 특성 차이와 번역자의 판단에 따라 ‘상相’으로 옮기게 되었다. 의미상 큰 차이는 없으나, 이 때문에 헷갈리거나 오해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한편 제목에 내포된 의미도 미묘하게 다르다. 한역본의 정식 제목인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은 “금강석도 잘라버릴 수 있는 지혜로써 피안으로 건너감에 관한 경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산스끄리뜨 경전 이름은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ṁ”으로 “금강석도 잘라버릴 수 있는 지혜로써 건너가는 상태에 관한 경전”이라는 의미다. 한역본은 이미 ‘건너감’의 명사형 종결형이지만, 산스끄리뜨본은 ‘건너가는 상태’로 현재진행형으로 해석되면서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중심이 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지혜로써 건너가는 상태’라는 해석에는, 이 강력한 ‘지혜’ 또한 쓰고 버릴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즉 무상無相의 진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금강경』에 새로운 관점을 열어 주며, 『금강경』의 깊은 세계로 한층 더 다가서게 한다.


언어학과 인문학에 조예가 깊은 현진 스님의 역작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을 살피며 더 깊어지는 『금강경』
우리나라에 산스끄리뜨본 『금강경』이 처음 번역되어 소개된 것은 2001년 각묵 스님의 『금강경 역해』를 통해서였다. 그 이후로도 몇 권의 산스끄리뜨본 『금강경』의 번역 또는 해설본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으나, 산스끄리뜨 원전과 한역본 전체를 수록하여 번역하고 비교하여 세세하게 풀어놓은 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법이 복잡하여 배우기 어렵기로 유명한 산스끄리뜨와 한문 양쪽에 능통한 저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역자 현진 스님은 역경 불사에 매진하겠다는 서원으로, 중앙승가대학교 역경학과를 졸업하고, 인도 뿌나에서 8년간 산스끄리뜨와 빠알리어를 수학하였다. 불교 경전을 기록한 모든 언어에 능통한 스님은 귀국 후 부처님 가르침의 원음을 전달하고자 봉선사 범어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연구 모임과 강의를 개설하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산스끄리뜨와 빠알리어를 접할 수 있도록 학습용 교습서를 무료로 배포했다.
그런 스님에게 『금강경』은 특히 의미가 있는 경전이었다. 인도 유학 시절, 산스끄리뜨 원문 독해를 시도했으나 당시에는 함께 공부하고 읽을 사람이 없어 잠시 중단했다. 그러다 귀국 후인 2016년 다시 모임을 열어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며 한 문장씩 정리하였다. 2,500년 전 부처님 뜻은 물론 산스끄리뜨로 기록한 옛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오늘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나아가 책으로 묶었을 경우 100년, 1,000년 뒤 미래의 사람들은 어떻게 읽을지를 간파해야 하는 긴 고뇌의 시간이었다. 역자의 이러한 간절한 원력과 치열한 공부의 결과물인 이 책은 우리에게 부처님 원음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한다.


책 속으로
바라밀의 산스끄리뜨인 빠라미따(pāramitā)는 '피안으로(pāraṁ) 건너가는(√i) 것(tā)'이라는 의미이다. 보시바라밀은 '보시+피안으로+건너가는+것'이란 구조의 복합어인데, 이 복합어를 문법적으로 어떻게 풀이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우선 '피안으로+건너가는+것' 부분은 피안(pāra)에 격조사를 갖춘 상태이므로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이란 의미로 확정되어 있다. 따라서 '보시'에 어떤 격조사를 붙이는가에 따라 전체 의미가 결정된다. 총 일곱 가지 격조사 가운데 문맥상 가능성을 지닌 경우는 도구격과 소유격이다. ① 도구격을 적용하면 '보시로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이 되니 보시를 뗏목 삼아 피안으로 건너간다는 의미이며, ② 소유격을 적용하면 '보시의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이 되니 보시라고 일컫는 피안으로 온전히 건너가는 것이란 의미이므로 흔히 일컫는 '보시의 완성'에 해당한다. (…중략…) 만약 위격(爲格)을 적용한다면 '보시를 위해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이 되니, 보시를 행하기 위해 피안으로 건너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피안은 보시를 행하기에 아주 좋은 보시정토布施淨土 같은 곳이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다.
— 본문 56~57쪽


중국에 정착된 사상의 개념은 앞서 산스끄리뜨 원전을 통해 살펴본 원래의 개념과 제법 차이를 보인다. 이는 사상의 개념이 잘못된 내용으로 전달되었다거나 후대의 주석가들이 내용을 잘못 이해하였다기보단 달마의 가르침이 중국 특유의 조사선불교로 정착하였듯이, 그것을 자신들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각색하여 이해하고 신행이나 수행에 접목시킨 것이라 보인다. 아무래도 인도인에 비해 해탈의 개념이 피상적으로밖에 와닿지 않음은 물론, 아뜨만을 고유불변의 실체로 여기고 말고와 관련된 흔적을 자국 문화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중국으로선 굳이 그 개념을 도입해서 자국 문화에 심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것이 좋다는 것도 아니요, 결국엔 흔적도 없이 없애야 된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것임에랴. 그러다 보니 아상류我相類에 속하는 모든 상은 원래의 개념, 즉 무엇은 어느 외도 집단에서 혹은 내부의 특정 부파에서 고정불변의 실체로 산정하였다는 등의 내용은 아뜨만과 더불어 간과되고 새로운 내용으로 풀이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생상의 중생sattva이라는 개념 또한 인도의 원죄론原罪論과 중국의 군집론群集論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 메꿔지기 어려운 까닭에 중국에선 달리 해석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 내용이 우리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니, 그래선지 ‘아상이란 '나입네' 하는 생각이고, 인상이란 '나는 사람입네' 하는 생각이며, 중생상이란 사람인 우리는 무리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고, 수자상이란 우리는 모두 고귀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다.’라는 내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 본문 81~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