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화엄경 속에서 선재동자가 구법 여행에서 거치는 단계를 이 방면의 학승들은 크게 여섯으로 나눈다. ①발심하기, ②마음먹기, ③실천이론 배우기, ④회향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기, ⑤수행의 지위 배우기, ⑥깨달음을 체험하기이다. 작년 12월호에서는 ②마음먹기를 다루었다. 2023년 1월은 ③실천이론 배우기를 소개할 차례이다. 실천이론은 한문으로는 ‘10행行’ 법문에 해당한다. ②마음먹기 관련 10주住 법문을 듣고 실천하는 장면은 자행 동녀가 선재동자에게 선견 비구를 만나라고 추천하면서 끝이 난다. 이하에 동국역경원에서 간행한 운허 스님께서 번역하신 <한글대장경> 씨리즈의 80권본 화엄경에서 그 장면을 인용해 본다.
“선남자여, 여기서 남쪽에 한 나라가 있으니 이름이 세 눈[三眼]이요, 거기 비구가 있으니 이름이 선견(善見)입니다. 그대는 그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느냐고 물으라. 그때 선재동자는 그의 발에 절하고 수없이 돌고 사모하여 우러러보면서 하직하고 떠났다.”
자행 동녀의 추천대로 선재는 ‘세 눈[三眼]’ 나라에 도착했다. 드디어 선견 비구를 만났다. 인사를 한 뒤에 선재는 다음과 같이 법문을 청한다.
“거룩하신이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고, 보살의 행을 구하옵니다. 듣자온즉 거룩하신 이께서 보살의 도를 잘 열어 보이신다 하오니, 바라건대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도를 닦는지를 저에게 말씀하여 주소서.”
질문의 요지는 보살로서 마땅히 닦아야 할 수행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찌 실천하는지 알려 달라는 내용이다.
이 질문을 받은 선견 비구는 현재 자신은 나이도 젊고 출가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지난 과거세에 무수한 세월을 거치면서 수행을 했음을 밝혀둔다. 그러면서 그 긴 세월 자신 닦은 수행에 대해 선재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그런 수행을 닦아 얻게 된 효과도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①잠깐 동안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 세계의 티끌 수 여래께 공경하고 공양하였으니, 부드러운 마음으로 여래께 공양하려는 서원을 성취한 연고며 ②잠깐 동안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여래의 법을 받나니, 아승기의 차별한 법을 증득하여 법륜을 유지하는 다라니의 힘을 얻은 연고며 ③잠깐 동안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보살의 수행 바다가 앞에 나타나나니, 모든 행을 깨끗이 하여 인다라 그물과 같은 서원의 힘을 얻은 연고며 ④잠깐 동안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삼매 바다가 앞에 나타나나니, 한 삼매문으로 모든 삼매문에 들어가서 서원의 힘을 청정케 하는 연고니라.”
위에서 필자는 ①②③④의 번호를 붙여 구절을 구분하면서 [] 부호를 찍었다. 그리고 각 구절마다 중간에 [,] 부호를 찍어서 앞뒤의 문장을 나누었는데, 그것은 수행으로 이루어진 결과와 그 결과를 얻게 된 원인을 구별하려고 그런 것이다.
절에 다니는 불자라면 한 번쯤은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런 물음을 가지고 위의 ①②③④를 음미해보면 좋다. ①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부드러운 마음으로 여래께 공양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그 ‘서원’을 꾸준하게 실천했다. 그랬더니 잠깐 동안에 무수한 여래께 공양을 올려 가르침 받들어 모실 수 있었다. 즉, ‘서원’을 세우고 실천했더니 되더라는 것이다. ‘서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사람 사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그렇지만 서원을 세워 ‘무수한 세월’ 실천하면 어느 ‘한순간’에 결과가 성취된다는 교훈의 말씀이다. 원인 쌓기는 긴 세월이지만 결과의 완성은 한순간이다.
2.
선견 비구에게 법문을 들은 선재동자는 다음에는 자재주동자를 만나 가르침을 청한다. 물론 선견 비구가 추천한 인물이다. 이렇게 법문 듣고, 다음 만날 법사를 추천받고, 가서 만나 뵙고 법문 듣고, 또 다음 사람을 추천받고, 이렇게 「입법계품」의 형식은 반복된다. 일반 독자들이 이런 경전을 읽기에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경은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읽었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절실하다.
예부터 화엄경을 전문으로 하는 고승들은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만나는 과정의 문장의 양상을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었다.
첫째는 ‘10신-10주-10행-10회향-10지’의 수행 단계를 따라 실천하는 분이다. 10신의 단계에서는 문수를 만난다. 10주부터 10지까지는 각각 10명씩 총 40명의 선지식을 만난다. 여기까지가 첫째 부분이다. 청량淸涼 국가께서는 이 부분을 ①기위수행상寄位修行相이라고 과목을 부쳤다.
둘째는 그동안 여러 선지식을 만나 수행하여 축적된 인연으로 진여법계의 세계를 체험하는 부분이다. 마야부인과의 만남을 비롯하여 하느님 광명 아가씨, 모든 이의 벗 꼬마 선생, 모든 예술 잘 아는 동자, 현승 우바이, 견고한 해탈 장자, 묘한 달 장자, 이길 이 없는 군대 장자, 가장 고요한 바라문, 덕나는 이 동자, 이렇게 총 10명의 선지식을 만나 법문을 듣는다. 역시 청량淸涼 국가께서는 이 부분을 ②회연입실상會緣入實相이라고 과목을 부쳤다. 이 단계에 이르면 비로소 부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즉, 진여법계를 체험하기 시작한다.
셋째는 선재동자가 무수한 선지식을 만나 수행해서 얻은 공덕을 모두 모아 완전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체험할 원인을 완성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만나는 선지식은 바로 미륵보살이다. 역시 청량淸涼 국가께서는 이 부분을 ③섭덕성인상攝德成因相이라고 과목을 부쳤다. 아직 완전한 체험에는 이르지 못했다.
넷째는 지혜[智]와 관조[照]가 둘이 아님을 체험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선재는 처음에 만난 문수보살을 다시 또 만나게 된다. 선재는 구법 여행에서 문수를 두 번 만나게 된다. 빙 돌아, 거치고 거쳐 다시 제 자리에 돌아온 것이다. 역시 청량淸涼 국가께서는 이 부분을 ④섭덕성인상攝德成因相이라고 과목을 부쳤다. ②③④를 ‘등각等覺’의 지위라고 한다.
다섯째는 실천하여 수행할 내용이 얼마나 많고 많은지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만난 선지식은 보현보살이다. 수행의 대명사로 알려진 보현을 만나는 장면이다. 선재는 보현을 만난 무수한 수행 방법을 듣고 배워 완성한다, 그리하여 선재가 부처가 된다. 따르고 배우려 대상이 자신이 된 것으로, 이를 묘각妙覺이라 한다. 주객이 하나 되는 오묘한 체험이다. 역시 청량淸涼 국가께서는 이 부분을 ⑤현인광대상 顯因廣大相이라고 과목을 부쳤다.
3.
다시 ‘10행’ 닦는 이야기로 돌아간다. 선견 비구를 만난 다음, 자재주 동자, 구족 우바이, 명지 거사, 법보계 장자, 보안 장자, 싫은 줄 모르는 왕, 대광 임금, 부동 우바이, 변행 외도, 이렇게 총 10명을 차례로 만난다. 그리하여 ‘10행’을 닦는다.
‘10행’에 대한 이론적 설명은 화엄경의 저곳 「십행품 제21」에 마쳤으니, 이곳 「입법계품」의 이 대목에서는 몸소 하는 체험 수행이 펼쳐진다.
선견 비구를 만나서는 ‘환희행’을 실천하고, 자재주동자를 만나서는 요익행을 실천하고, 구족 우바이를 만나서는 무위역행을 실천하고, 명지 거사를 만나서는 무굴요행을 실천하고, 법보계 장자를 만나서는 이치란행을 실천하고, 보안 장자를 만나서는 현선행을 실천하고, 싫은 줄 모르는 왕을 만나서는 무착행을 실천하고, 대광 임금을 만나서는 난득행을 실천하고, 부동 우바이를 만나서는 선법행을 실천하고, 마지막으로 변행 외도를 만나서는 진실행을 실천한다.
만난 사람들의 하는 일이나 신분들도 다양하다. 마지막에는 외도를 만나서 가르침을 받는다. 그 외도에게 올리는 설법을 청하는 인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사오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도를 닦는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듣자온즉 거룩하신 이께서 잘 가르치신다 하오니 바라옵건대 말씀하여 주소서”
이렇게 청법을 받은 변행 외도는 자신이 몸소 했던 수행의 경험을 들려준다. 변행 자신은 넓은 세상 어디에고 또 그 세상에 사는 여러 모습의 중생들 모습으로 환생하여 그들을 교화했다고 말한다. 듣는 이들의 수준과 좋아함에 눈높이를 맞추어 부처님 가르침을 포교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넓고 그 속에 사는 중생들의 종류가 다양한지는 「세계성취품 제1」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 모든 곳 모든 중생을 대상으로 포교를 한단다. 심지어는 외도에게도 말이다. 외도에게 포교하는 장면을 보자.
“선남자여, 염부제에 있는 96종 외도들이 제각기 야릇한 소견으로 고집을 세우거든, 나는 그 가운데서 방편으로 조복하여 모든 잘못된 소견을 버리게 하며 염부제에서와 같이 다른 사천하에서도 그렇게 하고, 사천하에서와 같이 삼천대천세계에서도 그렇게 하며, 삼천대천세계에서와 같이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의 중생 바다에서도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갖가지 방편․갖가지 법문․갖가지 몸․갖가지 말로써 법을 말하여 이익케 하느니라.”
진실한 수행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전의 본문에는 선재가 법문 듣는 장면만 서술되어 있지만, 선재는 들은 대로 가르쳐 준 대로 몸 수행했음을 독자들은 읽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