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범
숲해설가
숲에서의 생명체들은 우리 인간사회처럼 매정한 약육강식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경쟁할까?
일견 그렇게 보이지만 아니다. 숲의 생명체들은 경쟁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서로를 인정하면서 공존한다. 숲의 나무와 풀들에게 경쟁이란 자기가 살기 위해 타자를 억압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한 자기와의 싸움의 과정이다.
숲의 식물은 자신에게 필요한 햇빛을 향해 수직의 공간에서 자기의 하늘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타자의 공간을 빼앗기 보다는 비어 있는 공간을 스스로 찾아 그 자신의 존재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 매일 매일 자신을 키우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숲의 가장자리에 자라는 키 작은 풀들을 보라. 고만고만해 보이는 그들도 매일매일 빛을 다투며 살아간다.
빛을 차지하는 데 불리할 수밖에 없는 키가 작은 식물들은 진화를 통해서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시기를 키가 큰 식물들보다 앞당기는 식으로 생활 주기를 조절해 빛을 놓치지 않는다.
복수초, 바람꽃, 얼레지 등이 봄의 전령사로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이유다.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키가 크면 큰 대로 나무들 또한 빛과 양분을 서로 다투며 살아간다.
숲의 상층부를 이루는 소나무, 산벚나무 등 키가 큰 나무들은 서로 자신의 하늘을 열기 위해 줄기를 키우고 가지를 벌린다. 숲의 중층부와 하층부를 이루는 나무들도 상층부 나무들이 한 차례 걸러 낸 빛을 얻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울창한 숲속에서 발아한 어떤 신갈나무는 제 잎을 거의 오동잎만큼이나 크게 키워 다른 나무들 때문에 그늘이 진 환경에서도 빛을 받기 위해 놀랍게도 스스로 잎을 더 넓게 키운다. 이건 타자가 아닌 자기와의 싸움이다.
이렇게 빛을 향해 자라는 식물의 성질을 ‘주광성phototropism’이라고 한다. 식물은 빛으로 향하기 위해 자신의 생장을 조절하는 에너지를 재배치함으로써 주광성을 확보할 수 있다.
층층나무의 경우 곧게 자라는 줄기에 층층이 돌려 뻗는 긴 가지를 매단 채 빠르게 성장하는데 자신의 공간을 열 때까지는 가급적 곧게 층층이 가지를 뻗는 일에 몰두한다. 그늘진 숲에서 자신의 하늘을 열 수 있는 높이까지는 무조건 빠르게 자라는 전략을 익힌 나무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여느 활엽수처럼 자유롭게 가지를 뻗어 부드러운 수형을 갖추게 된다.
숲의 빛은 공평하다. 이 빛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 각자의 몫이다. 이러한 점을 간파한 식물들은 자기의 특성과 환경을 고려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꾀해왔다. 식물은 이렇게 매일 빛을 향하고 공평하게 비추는 햇살을 생명 저마다의 처지와 환경에 맞게 살아가고 있다. 매일 그렇게 자기를 자라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무와 풀들이 보여주는 경쟁은 이렇듯 자신과의 싸움이 우선이다. 타자를 누름으로써 이기는 것만을 선으로 삼지는 않는다. 더러 칡덩굴처럼 타자를 휘감아 결국 타자를 해치는 존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물들은 무리한 경쟁에 골몰하지 않는다. 식물들은 자신을 꽃피우기 위한 공간을 열기 위해 오로지 자신과 싸운다. 이것이 숲에서 식물들의 경쟁이다.
숲에 기대어 사는 새들 중에 동고비와 딱따구리의 경쟁과 공존도 흥미롭다.
그들은 같은 나무에 있는 애벌레와 곤충들을 잡아먹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자원을 슬기롭게 분배하는 방법으로 공존한다.
딱따구리는 주로 나무속에 있는 먹이를 먹고, 동고비는 나무겉에 있는 먹이를 먹는다. 딱따구리는 아래에서 위쪽으로 이동하며 먹이를 구하지만, 동고비는 주로 그 반대의 모습으로 먹이를 구하는 것이다. 경쟁 속에서도 놀라운 공존방식이다.
진달래와 철쭉도 지혜롭다. 두 나무 모두 분홍색의 비슷한 꽃을 피운다. 그러나 개화 시기는 진달래가 철쭉보다 대략 보름 정도 빠르다. 서로서로에게 더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개화시기를 달리하게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른 봄이라 번식을 매개해줄 곤충의 수는 유한한데, 같은 색깔의 비슷한 꽃이 한꺼번에 만발함으로써 꽃가루받이에 성공하지 못하는 꽃들이 많았던 경험이 그들 유전자에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진달래가 개화시기를 앞당겼거나 철쭉이 점차 개화시기를 늦춤으로써 서로가 만족하는 수분 성공률을 높였을 것이다.
동고비나 딱따구리는 타자가 선점하고 있는 공간에 자신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먹이에 대한 접근방식을 바꾸었고, 진달래와 철쭉은 둘 중 하나가 선점한 개화시기를 피하기 위해 개화를 촉진하거나 늦췄다. 이를 위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에너지를 재편해야 했을 것이다.
주어진 경쟁 환경을 피하고 자신을 실현할 공간과 때를 열기 위해 생명체들이 벌여온 노력이 모여 지금의 생태계를 이루었다. 숲의 생명들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자신을 변화시켜 자신이 꽃피울 장소와 시간을 찾는 것이야말로 자연이 보여주는 경쟁의 정수이다. 그 경쟁을 통해 생태계는 더 견고하게 연결되고 물질은 막힘없이 흐르며 순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인간이 벌이는 경쟁은 어떤가.
오로지 나를 변화시켜 나를 실현하고, 그를 통해 더 풍요로운 생명공동체를 이루도록 고안된 경쟁의 원리, 그 건강한 경쟁의 긍정성은 이미 상실되어 버렸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익을 빼앗고 누르는 것으로 승리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칡덩굴 방식의 잘못된 경쟁만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이 심화될수록 곤궁해지는 타자가 늘어나고 공동체도 점차 쇠락해갈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오로지 자기 성장을 모색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를 통해 타자와 관계를 맺고 더 나아가 생명공동체를 위해 무언가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살찌움으로써 삶의 터전이 더욱 비옥해지는 사례를 숲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데 제비꽃과 개미가 서로를 돕는 과정이 그 한 예이다. 제비꽃은 주로 개미를 매개자로 자신의 씨앗을 번식시킨다. 개미들은 자신의 집으로 식량을 옮긴다. 개미는 제비꽃이 개미를 부르기 위해 씨앗에 붙여놓은 ‘일레이오좀’이라는 젤리를 담은 물질을 먹기 위해 제비꽃 씨앗을 통째로 물어 집으로 옮긴다. 개미에 옮겨진 제비꽃 씨앗은 때가 되면 새롭게 제 싹을 틔워 종족 번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샛노란 꽃을 피우는 애기똥풀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제비꽃처럼 개미를 위한 식사를 준비해주고 개미를 통해 자신의 씨앗을 옮겨 번식한다. 서로 도와가며 삶을 잇는 이러한 방식의 공존은 숲에서는 흔하다.
숲의 생명체는 아주 복잡한 관계의 망으로 얽히고설켜 살아간다, 그 복잡한 관계의 망 속에서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라고 꽃피우고 열매 맺으며 성장하도록 되어 있다.
인간은 더욱 그렇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서 온전한 하나의 섬이 아니다.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오로지 자신의 배만 불리고 제 영혼만 살찌우면 된다는 위험한 욕심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숲에서 배워야한다. 불교의 자리이타自利利他,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사상으로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의 망 속에서의 공생과 공존의 방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