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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응축의 시간이다

정성운
텃밭농부


우리나라에서 겨울은 일반적으로 12월부터 2월까지에 해당하는 네 계절의 마지막을 말한다. 겨울의 특징은 기온이 낮으며 밤의 길이가 길다. 기온이 낮은 까닭에 강수는 눈이 내리므로 겨울은 흰색으로 상징된다. 기상학적으로는 9일간 일평균기온의 이동 평균이 5도 미만으로 떨어진 뒤 올라가지 않는 첫날부터가 겨울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이동 평균이라는 말이 어렵다. 한마디로 여러 날의 기온이 평균적으로 뚝 떨어졌다는 뜻이다.
계절의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다. 유독 추위를 느끼는 사람에게 겨울은 더 빨리 다가와 오래 머문다. 중부지방에서는 대개 10월 중순쯤이 되면 서리가 내리는데, 이때부터 겨울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네 개의 계절은 삼 개월씩 균등하게 나뉘지 않는다. 나에게 겨울은 밤이 길어지는 시기쯤부터 다가온다. 추분(9월 22일 또는 23일)을 지나면 밤의 길이가 길어진다. 밤의 길이가 길어지니 서늘함이 느껴진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밤의 길이가 14시간 30분에 이른다. 오래된 유행가 가사처럼 ‘동지섣달 긴긴밤’이다. 낮의 길이가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절기는 춘분(3월 21일)이다. 그러니 나의 겨울은 10월부터 시작되어 3월 말쯤이 되어야 끝난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는 1년의 절반이 겨울인 셈이다.
긴 밤의 시간은 사람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선 육체의 활동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어둠으로 인해 시야를 좁힌다. 일찍 집으로 향하게 만든다. 어둠은 기온을 떨어뜨린다. 몸이 움츠러든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몸이 따뜻해지는 음식을 찾게 되고, 따뜻한 곳에 몸을 두려고 한다.


마침내 밤보다 낮이 길어졌다


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지혜를 짜냈다. 동지를 작은 설로 치르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불교와 민간에서는 오래전부터 동지에 팥죽을 먹었다. 팥의 붉은색이 악귀를 좇는다고 생각했으며, 후후 불어서 먹는 뜨거운 팥죽은 추위를 떨치게 해주었다. 동짓날을 기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날이 지나면 밤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어둡고 춥고 긴 겨울의 정점을 넘어섰으며, 이제부터 밝음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축하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동지가 지났으니 움츠린 몸을 펼 일이다. 아직 봄은 멀리 있지만, 봄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밭의 겨울은 스산하다. 초록의 무성함은 온데간데없다. 마른 풀들과 군데군데 움푹 팬 흙 사이에 내려앉은 눈이 버짐처럼 허옇다. 바람이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마른 풀에 서걱인다.
마늘밭을 덮었던 부직포를 한쪽 끝을 살짝 걷어내어 살펴보니 한 뼘쯤 자란 마늘 싹이 새파랗다. 한겨울에 보는 푸른 싹은 경이롭다. 11월에 심은 마늘이 튼실하게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삼동의 추위를 견뎌냄으로써 마늘은 알싸한 맛이 드는 것인가 보다. 마늘 맛은 추위가 응축된 뜨거움이다. 마늘은 뿌리를 하얗게 내리고 싹을 내밀어 저리 겨울을 보낸다. 추위가 물러난 3월쯤 되면 싹을 더 밀어올리고, 마늘통을 불린다. 흰 눈은 파의 아래 줄기를 덮고 있다. 파는 보온을 하지 않아도 겨울의 추위를 이겨낸다. 죽은 듯 보이지만 뿌리는 생생하다. 봄이 되면 파는 쑥쑥 자란다. 두 해 전 겨울을 난 파로 김치를 담갔다. 아삭하고 알싸한 맛이 일품이었다. 봄에 겨울을 먹는 경험이었다.
겨울은 침잠의 시기이다.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향해 머물도록 이끈다. 여름엔 밖으로 향해 쑥쑥 키를 키운다. 에너지를 분수처럼 발산한다. 발산이 있었으면 응축이 있어야 한다. 이 겨울에 숲을 거닐거나 들판에 서보면 겨울이 어째서 깊은 마음의 시간인지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겨울의 숲과 들판엔 고요함이 흐른다. 잎을 떨군 나무는 앙상하게 보이지만, 낭창한 가지에 잎눈을 틔워 에너지를 응축한다. 바람이 불면 윙윙거리는데, 그건 필시 잎눈이 바람과 함께 흥겹다는 신호이다.


경전 읽고 보시하기


겨울은 춥고 낮이 짧은 탓에 사람 만나는 시간이 줄어든다. 바깥 활동보다는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겨울은 경전 읽기에 맞춤한 계절이다. 경전 읽기를 시작했다. 내 나름의 동안거다. 쌍윳따니까야.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이 역주한 것인데,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초기 경전의 하나인 쌍윳따니까야는 2,889개 경을 담은 방대한 분량인데, 전재성 회장은 이를 발췌해 180개의 경으로 압축했다. 주註를 자세히 달아 내용의 이해를 돕고 있다. 내가 경전을 읽는 이유는 길을 찾고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매일 3개 이내의 경을 읽기로 했다. 수를 제한한 것은, 경전이란 모름지기 숙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전 읽기는 숙고, 성찰의 과정이다.
1개의 경을 읽을 때마다 일정액을 적립하기로 했다. 적립액은 순전히 나의 재정 사정을 고려해 임의로 정한 액수이다. 적립된 금액은 월말에 내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인 신대승네트워크에 회비 외의 보시금으로 보내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보시금을 만들기로 한 것은 신대승네트워크의 어려운 재정 형편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덧붙여진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보시행에 다가가기 위한 의지이기도 하다. 단체에 내는 회비는 회원으로서의 의무이며, 이로써 회원의 권리를 얻는다. 보시와는 같은 것 같지만 한참 다르다. 회비는 권리와 의무 관계를 성립시키는 계약적 성격이 짙다. 보시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어놓는 것이다. 육바라밀은 불자로서 사는 지침이다. 첫 번째가 보시이다. 보시는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는 불교의 오랜 변천의 역사에서 늘 강조되어온 덕목이다. 
건전한 기부문화 조성을 목표로 창립된 아름다운재단은 다양한 기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재미난 것이 많다. ‘공짜 점심 기부’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서 점심을 대접받았다면, 점심값만큼의 액수를 기부하는 것이다. 사용처를 지정할 수도 있다. 가령 나의 기부금을 이주 배경 청소년의 한국문화 교육에 써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아름다운재단은 그 용처에 적당한 사업을 위해 집행한다. 미처 그러한 사업이 없다면, 나의 제안으로 새로운 사업이 만들어지게 된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로구나


아름다운재단은 1% 기부를 요청한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수치가 아니다. 계기가 된다면, 마음만 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울산에 사는 한 꽃집 사장님, 어느 택시기사는 그날 순수익의 1%를 기부한다. 하루 몇백 원인 경우도 있다. 많지 않은 액수로 보일 수도 있다. 여럿이 되면,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큰 흐름이 된다. 한 그루의 나무가 모이고 모여 마침내 거대한 숲이 만들어진다. 애초에 숲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의 경전 읽기와 보시금 적립은 얼마 전 도서관 서가를 일별하다가 그야말로 우연히 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기상천외한 1% 나눔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 『세상에서 가장 큰 1%』에서 비롯됐다. 이 책은 아름다운재단에서 펴냈는데, 나에게 적합한 보시의 방법을 생각하게 했고, 경전 읽기를 통해 보시를 하겠다는 데에 이르게 했다. 경전도 읽고 보시도 하게 되었으니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이것을 보면, 삶의 전환은 그윽하고 큰 가르침을 접하면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세상의 한 모퉁이 얘기를 담고 있는 짧은 책도 이정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事事佛供이란 가르침이 이런 것이구나! 새해에도 많은 부처님을 만나 함께 불사를 행하기를 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