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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수용하자
조기룡 _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산중불교(山中佛敎)는 흔히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거론된다. 우리나라의 유수한 사찰들이 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현상의 설명적 표현이기는 하나, 산속에 숨어서 사람들을 멀리하는 불교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하지만 한국불교가 본디 산중불교는 아니었다. 조선조 시대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승려들의 도성출입이 금지되었을 때 자연히 사찰이 산중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제 한국불교는 산중에서 도심으로 나와야 한다. 산중불교는 수행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대중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탁발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사회와 격리된 적이 없었다.

불교가 인간세상과 멀리 떨어지면 아무리 좋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도 우리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불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산중에서 나와 대중들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다행히 근래에 들어 도심포교에 원력을 세운 출가자들이 증가하면서 도심포교당이 지속적으로 창건되고 있다. 하지만 산중에서 수행에 전념해온 출가자들에게 있어서 도심포교당의 운영은 원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난제(難題)일 수 있다. 불교계가 도심포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사회환경 변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도시지역의 인구집중 현상 심화와 도시인의 생활양식 변화를 분석하고 이해한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산업혁명과 함께 일어난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급격한 서구문물의 유입과 서구적 방식의 경제정책을 추진 하는 과정에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경험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였고, 그곳에서 활동할 주민의 생활편의를 위하여 배후도시를 건설하였다.

수도권 지역인 반포, 강남, 목동, 잠실, 노원, 분당, 평촌, 일산, 광명, 시흥, 하남 등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고 짧은 기간 내에 각 지역별로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게 되었다. 수도권 지역은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25% 이상이 거주하는 대규모 도시 형태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흥도시에서 교회나 성당을 찾기는 용이하나 사찰을 찾아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최적의 포교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신도시 택지개발사업지 구 내 종교용지를 둘러싸고 불교계가 수수방관하여 거의 분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부 택지지구 에서는 해당 사업단이 불교용지를 지정해 주었음에 도 신청자가 없어 타종교로 넘어간다.

도시지역 거주자의 생활은 농촌지역 거주자의 생활과는 상당한 양태의 차이가 있다. 도시주민은 마을이 아닌 직장을 중심으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으며 익명성이 강한 아파트에서 거주한다. 이러한 도시의 라이프 스타일은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 의식을 깨뜨리고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단절을 초래하였다.

이에 도시환경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상당수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고 있으며, 고독감을 해소 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한다. 그 대안 중 하나로 선호되고 있는 것이 종교공동체이다.
도시지역 거주자 중에는 반드시 열성적인 신도가 아니라 일종의 소속감과 이웃을 얻기 위하여 종교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는 이러한 종교적 욕구를 간과한 채 기존 신도의 이탈방지에만 급급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객관적 입증 사례가 종교인구비율 중 불교인구비율이 50대 이후에 높은 것이다.

불교인구비율은 40대 미만인 어린이·청소년· 청년층에서는 기독교에 비하여 매우 낮은 반면에 50대 이후 중장년층과 노년층에서는 매우 높다. 여기에서 유념할 것은 농촌지역에는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도시지역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것이다. 중장년층과 노년층의 불교인구비율이 많다는 것은 불교가 젊은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지역의 포교에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종합하면, 한국사회에서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인구집중 현상과 생활양식 변화가 나타나고 있으나, 불교는 이러한 사회 변화에 대응 할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도심포교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다.

우선 신도시의 종교용지를 분양받아야 한다. 도심 포교를 하기 위해서는 사찰부지가 필요하다. 건물임대의 방식도 있으나 사찰이 성장하면 독립된 공간이 필수이다. 이에 불교계는 신도시에서 종교용지를 분양받기 위한 대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하여야 한다.

정부의‘주택종합계획’에 따르면 2012년까지 100 만평 규모의 미니 신도시 50여개가 더 건설된다.
이 가운데 수도권에만 25개의 미니 신도시가 건설될 예정이다. 하지만 신도시가 개발될 때마다 불교계는 사찰용지를 확보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개발계획을 입안할 때 종교시설용지는 기존의 종교시설에 우선 공급하고 나머지를 외부 종교단체에 불하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독교가 신도시를 중심으로 개척교회를 세워 적극적으로 선교를 전개한 반면에 불교는 산중사찰을 중심으로 정부지원금과 관람료에 의존하여 도심포교를 등한시한 결과이기도 하다.

신도시의 종교용지분양은 개별사찰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종단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종단에 신도시 포교를 책임지고 전담할 부서를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부서에서 종교용지분양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분양받고자 하는 사찰에 제공하고 부동산 관련 법규 등을 자문해주는 것이다. 또한 종단 차원에서 도심포교 프로그램과 매뉴얼을 작성하여 교육한다면 도심포교당의 운영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도시지역 거주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법회의 다양화, 신도교육의 실시, 수행풍토의 조성이 필요하다. 농촌사회와는 달리 도시사회에서의 일상생활은 일주일을 주기로 바쁘게 움직인다. 근무일과 휴무일이 명확하다. 종교생활 등 개인의 여가생활은 주로 일요일 혹은 토요일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심포교를 위해서는 일요법회를 정례화해야 한다. 일요법회를 매번 봉행하면 불교교양대학운영의 기반도 마련될 수 있다. 또한 직장인들을 위한 새벽법회도 시도할만하다. 새벽법회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자기 정화를 통하여 희망찬 하루를 시작하게 해줄 수 있다.

도시지역 거주자의 상당수는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신앙심에 의존하기 보다는 실증적인 논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불교교양대학 등을 통한 불교교육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이러한 신도교육은 신도의 기복신앙을 작복신행으로 변화시켰으며, 나아가 공부에 대한 욕구를 수행으로 연결 시켜 주게 된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웰빙(well-being)을 추구한다. 도시인들은 직장과 가정에서 과거에 비해 많은 스트레스를 겪고 있기 때문에 정신적 안정을 추구한다. 근래의 수행에 대한 관심 제고도 정신적 안정을 추구하는 현상의 하나이다. 도심포교당들은 참선수행과 같이 시대흐름에 맞는 신행체계를 갖추고 신도에게 정신적 안정을 제공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