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호 철학박사·동국대불교학과
1. 12연기에 있어 행의 위치
이번 주제는 무명에 이어‘행(行: sa?khara)’이다. 12연기에 있어 무명 다음의 두 번째 고리에 해당 한다. 12연기(十二緣起)란 인생의 조건 또는 현실이 12가지로 연기한다는 것으로 순서는 ①무명(無明) → ②행(行) → ③식(識) → ④명색(名色) → ⑤육입(六入) → ⑥촉(觸) → ⑦수(受) → ⑧애(愛) → ⑨취(取) → ⑩유(有) → ⑪생(生) → ⑫노사우비고뇌(老死憂悲苦惱)이다.
 
인생이 행복하지 않고 고통의 상황이 지속되는 조건은, 무명을 조건으로 행이 있고, 행을 조건으로 식이 있고, 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고, 명색을 조건으로 육입처가 있고, 육입처를 조건으로 촉이 있고, 촉을 조건으로 수가 있고, 수를 조건으로 애가 있고, 애를 조건으로 취가 있고, 취를 조건으로 유가 있고, 유를 조건으로 생이 있고, 생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근심·슬픔·괴로움·번민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범부 중생들의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다. 유전연기(流轉緣起)라 하기도 하는데 여덟 번째 고리의 갈애[愛]로 열두 번째 고통[苦]으로 ‘흐르고 구르는’그리고 다시 첫 번째 무명으로 돌고 돌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환멸연기(還滅緣起)는 무명이 소멸함에 의해서 행이 소멸하고, ···내지 ···생이 소멸함에 의해서 노사우비고뇌가 소멸 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은 유전연기로 범부 인생의 실상을 밝혀 범부가 고통이 없는 환멸연기를 성취하기를 궁극적으로 제시하신다. 12연기의 연기법(緣起法)은 불교의 중심 가르침이요 근본 가르침이요 기본 가르침이다. 세계와 인생의 근본을 밝힌 세계관이다. 특히 인생의 참모습을 밝힌 것이 12연기
이다.
2. 행의 어원과 의미 ‘행’의 원어는 sa·nkhara나 sam·sk·ara이다. 이러한 행은 12연기에서와 함께 삼법인의 제행무상(諸行無常)에서 그리고 오온의 행온(行蘊)에도 나타난다. 행은 대단히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 맥락에 따라 달리 이해해야 한다. 삼법인에서의 사용이 가장 큰 의미로‘형성된 것(formation)’을 의미한다. 12연기와 오온에서의 행은 업(業)과 동의어이다.
업의 원어인 karma와 kamma와 행의 sam·khara/sam·sk·ara는 어원적으로나 의미상으로 같다. 기본적으로‘의지적 행위’를 나타내며 세 종류의 신행(身行)과 구행(口行) 그리고 의행(意行)으로 나누어 시설된다. 이를 삼행(三行)이라 한다. 인간의 신체적 활동, 언어적 활동 그리고 심리적 활동의 총체를 말한다. 특히 12연기 맥락에서 행을 설명할 때 복(福) 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삼법인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제행무상보다 더 큰개념은 제법무아로 행보다는 법이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행은 유위(有爲)에 한정되지만 법은 제행(諸行)과 유위는 물론 무위(無爲)의 세계까지 포함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 볼 점은 유위의 원어는 sam·khara인데 sam·khara의 과거분사형 명사 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유위가‘형성된 것’이나 ‘만들어진 것’을 또는‘조건 지워진 것’을 의미할 때 번역 상에 있어서나 그 쓰임새에 있어 행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됨을 볼 수 있다. 이는‘모든 것이 조건적으로 형성‘유위’되어 있는 가운데‘순간순간 일종의 에너지나 힘’처럼 이어지고 발휘되는 것이 ‘행’이기 때문이다.
3. 무명과 행의 관계 이처럼 행의 의미는‘형성된 것’이나‘형성력’또는‘의지적 또는 의도적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삼행(三行)은 곧 삼업(三業)으로 행은 곧 업을 의미한다. 그렇다면‘무명을 조건으로 행이 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무명의 범부 중생은 항상 내가 있다는 생각으로 신구의 삼업을 짓는 데 이를 바로 행이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행은‘무명에 따른 행위’이기에 진실(明)한 입장에서 보면‘조작(造作)’을 의미 한다. 때문에 경전에서 행이란 '(오온과 같은) 유위를 조작하기 때문에 행이라 한다고 정의하기도 한다.
행은 무명을 조건으로 표출방식에 있어서도 몸으로, 말로, 뜻으로 선업(善業)이나 불선업(不善業)으로 나타난다.
몸으로는 살생과 도둑질 그리고 사음(邪淫)의 3가지를 그리고 말로 망어, 양설, 악구, 기어의 4가지를, 뜻으로 탐, 진, 사견과 같은 4가지를 짓는다. 이를 십불선업도(十不善業道)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천수경>에서 알 수 있듯이 선업도로 가기 위해 매일 매일‘살생중죄 금일참회, 투도중죄 금일참회 ··· 치암중죄 금일참회’와 같은 열 가지 불선을 끊임없이 참회하고 있다.
이처럼 행과 업은 무명을 조건으로 일어난다. 다시 말해, 무명이 없으면 행도 업도 있을 수 없다. 행은‘의도’나‘의지’에 조건적으로 있는 것으로 업보 사상에 따르면 윤회의 세계에서 해탈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세계에 다시 태어나도록 결정짓는 것이 바로 행이다.
4. 행과 세 가지 복행(福行) 행은 업의 동의어로 삼행(三行)은 다시 복행(福行)과 비복행(非福行) 그리고 복행도 비복행도 아닌 부동현행(不動現行)과 관련하여 시설된다. 부처님은 12연기 맥락에서 행 앞의 무명과 뒤의 식(識)과 관련 해 다음과 같이 설하신다.
“만약 무명(無明)에 있는 사람으로 복행을 계획하면 그의 식(識)은 복으로 나아가 갖추어진다. 만약 복행이 아닌 것을 계획하면 그의 식(識)은 비복행으로 나아가 갖추어진다. 나아가 복도 비복도 아닌 부
동현행(不動現行)을 계획하면 그의 식(識)은 부동현 행으로 나아가 갖추어진다.”경전에서 이렇게 무명의 상태에 있게 되면 복행과 비복행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행을 지을 수 있지만 무명이 사라지고 명(明)이 일어나면 비복행은 물론 복행이나 부동현행도 일으키지 않는다 한다. 이는 앞 호에서‘무명’과 ‘복행’의 관계를 설명하는『청정도론』의 인용구절과 그대로 상통한다. 따라서 복행에 따른 복과의 범위와 열반을 구분하고 있으며 세간적 복행만으로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열반을 성취한 아라한이나 붓다는 복이나 비복행(非福行)의 개념에서조차 넘어서 있다. 즉 행 가운데 복행이라 할지라도 무명과 관련 하여서는 유전 연기하는 번뇌의 상태 속에 있고 반대로 환멸연기로 번뇌를 소멸하면 이러한 삼행 또한 있을 수 없다고 설한다. 무명에서 명(明)이 일어나면 삼행으로부터 벗어난다. 열반에 이르면 삼행이 제거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12연기의 행 속에 복행은 포함되어 있어 복과 행과 업 모두 작위적(作爲的)인 유위(有爲)의 범위로서 무위(無爲) 열반이 아니다. 왜냐하면, 복개념 자체가 고(苦)에 상대되는 낙(樂)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반과 해탈의 견지에서 행의 멸(滅)이 요구되지만 업(業)도 궁극적으로 지멸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때문에 불교에서는 항상 복은 세간 범위로 그리고 욕망을 떠난 출세간은 복행마저도 초월한 범위로 대비되어 시설된다. 이러한 맥락은 경전에서 부처님의 복행과 관련해 석가모니 부처님은 오랫동안 의복·음식·평상·침구·의약으로 등광 부처님에 공양하고 다시 부처님의 반열반 후에도 오랫동안 그 불상과 사리에 공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공덕으로 생사 가운데 무량한 안은 (安隱)함과 같은 복을 받으면서 해탈을 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처를 이룬 현재는 신구의로 지은 모든 행이 다해 해탈에 있고, 생사에 있지 않는다고 설하고 있다. 해탈의 세계는 복업까지도 다한 경지임을 대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불교의 궁극적인 지점에 있어서는 복락의 행에도 안주하지 않고 이를 뛰어넘어 열반 해탈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이다.
흔히 사랑에 빠지면 상대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어 눈에 콩각지가 씌었다고 한다. 눈에 콩깍지가 낀 상태는 밝음이 없는 무명으로 중생의 상태이다.
우리는 눈에 콩깍지 상태이기에‘마누라 예쁘면 처가의 말뚝도 예쁘게 보여 말뚝에 절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행에 해당된다. 눈에 콩깍지 낀 중생은 끊임없이 현실을 조작하고 왜곡하여 그려낸다. 무명을 조건으로 행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작과 왜곡의 행으로 고통을 키워나가고 있다.
부처님은 유전연기로 범부 인생의 실상을 밝혀 범부가 고통이 없는 환멸연기를 성취하기를 궁극적으로 제시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