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돈
한의학 박사
원광대학교 한의대 외래교수
햇살고운한의원 대표 원장
작년 봄에 30대 중반의 남성과 30대 초반의 여성이 중년 부인의 손에 이끌려 진료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남자는 잔뜩 주눅 들어있고 그와 반대로 중년 부인은 목에 힘이 들어간 자세로 꼿꼿이 앉아있었다.
중년부인이 먼저 말을 열면서 그러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전모를 알게 되었다.
세 사람의 관계로 보면 중년부인은 장모, 남성은 사위, 여성은 딸인데 결혼한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임신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검진 결과 딸은 정상인데 사위에게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사위의 정액에 활동성 정자가 적어서 불임의 원인이 된다는 진단에 여러 차례 인공수정과 시험관 아기까지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해서 한방치료를 받고자 내원했다는 것이다.
불임이란 부부가 피임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과거에는 정상인 경우 1년 이내에 80-90%가 임신을 하며 2년 후에는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는 5%에 불과했다. 그러나 갈수록 환경오염과 정신적 스트레스 등에 의해 불임증 환자는 증가하는 추세이며 전체가 임연령에 있는 성인의 10-15%가 불임환자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정상적인 임신은 남편의 활동성 정자 개체수가 정상이어야 하고, 남편의 정자가 아내의 자궁경부 점액을 통해 자궁 및 나팔관을 통과하여 난자와 만나야 하며, 아내의 난자가 정상적으로 성숙하여 배란된 뒤 나팔관으로 흡인되어 수정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불임검사는 아내와 남편이 같이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의학에서는 임신을 밭농사에 비유하여 설명을 많이 한다. 즉, 남성은 씨앗으로, 여성은 그 씨앗이 뿌리내려 자라는 밭으로 많이 비유가 되는데, 농사가 되지 않는 경우는 먼저 종자가 불량할 수도 있겠고, 좋은 종자를 밭에 뿌린다 하더라도 싹이 틀수 있는 내적, 외적 조건이 맞지 않으면 싹을 틔울 수 없을 것이다. 황폐해진 땅에 씨앗을 뿌린다거나 너무 메마른 땅이나 너무 물기가 많은 땅에 씨앗을 뿌리는 경우에도 싹을 틔울 수가 없다. 그리고 계절에 맞지 않게 한겨울에 씨앗을 뿌린들 싹이 날 리 없으며 한여름 또한 씨앗이 말라 비틀어져 버릴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남성의 성기능이 약하거나 정자의 양이 많지 않는 경우도 있겠고 여성의 자궁생식기의 온도 및 습도가 적당하지 못하고 너무 차다거나 너무 열이 많거나, 혹은 너무 비만하다거나 너무 말라서 진액이 부족하다거나 하면 불임의 원인이 될 수가 있다. 또한 정신적 스트레스나 기혈이 허약한 상태도 불임을 야기할 수도 있다.
한의학에서 남성불임의 원인으로는 신장의 수기 및 정(精)의 부족인 경우와, 원기가 허약 하거나 신장에 한기가 있어 정자의 활동저하를 초래하는 경우, 과도한 성행위에 의한 생식능력 저하 및 심리적 불안이나 심신(心腎)의 부조화로 인한 조루 등을 남성불임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여성 불임의 원인은 크게 간기울결형, 신허형, 습담형, 어혈형, 기혈허약형, 궁한형 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만일 불임의 원인이 자궁자체의 해부학적인 이상이 있을 경우는 일차적으로 수술요법을 시행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하지만 해부학적 또는 구조적 문제가 아닌 염증이나 스트레스성, 기능성 불임증일 경우는 한방을 통하여 변증하여 치료하면 효과적이다.
근래 한의학의 진단 방법은 과거처럼 맥진 등의 오관에 의한 진단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전신의 체열 분포를 알아보는 적외선 체열 검사, 각 장기의 기능과 스트레스 정도를 보는 경락 기능검사, 순환 장애를 알아보는 생혈액 검사, 비만 정도를 알아보는 체성분 검사, 골반 및 척추의 변위를 보는 모아레 검사 등 다양한 검진을 통하여 정확한 결과를 근거로 치료를 하기 때문에 전보다 치료율이 훨씬 높다.
상기한 불임의 경우 한방진단 결과, 사위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며 오히려 평상시 스트레스가 많아 체중까지 불어서 간기울결형과 습담형 불임 원인을 가진 딸 때문이었다.
딸은 2개월 집중치료를 받던 중 임신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마도 뻣뻣하던 장모의 목은 자라목이 되고 잔뜩 주눅 들었던 사위는 어깨에 제법 힘이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