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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우통수(于筒水)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강원도 평창 오대산 서대 장령봉에 오르면 조그만 샘이 있다. 우통수(于筒水)다. 우통수는 예부터 한강의 발
원지로 전해져왔다. <신증동국여지승 람>과 <택리지> 등의 기록이 그렇다. 그러나 1918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 조사국에서 실측한 결과 태백시 하장 면 금대산 밑 검룡소가 우통수 보다 32.5㎞ 긴 것으로 밝혀져 시작점의 자 리를 검룡소에 내주었다. 그러나 여전 히 많은 사람들에게 우통수는‘한강의 시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마도 오대산이 주는 신령한 기운 때문일 게다. 오대산엔 부처님의 몸에 서 나온 뼈가 응결된 진신 사리가 모셔진 적멸보 궁을 비롯해 동서남북 중앙 5곳에 불보살들이 상주한다는 불 가의 믿음이 있는 곳이다.
오대산 초입에 있는 월정사에서 차 를 타고 20~30분을 달리면 한여름에 도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절한 기온을 유지한다는 상원사다. 근대의 고승 한 암-탄허의 성성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 다. 그 상원사에서 적멸보궁 쪽으로 가 지 않고 왼쪽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 야 우통수가 있는 장령봉이다. 바위산 이 대부분인 한국의 다른 명산들과 달 리 오대산은 흙이 많은 육산이다. 그래 서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그곳에서 나는 산나물도 맛이 그만이다. 그런데 아무리 육산이라지만 한겨울 장령봉을 오르는 길은 바위산 이상으로 험준하 다. 또한 겨울바람이 상상외로 차다.

육산이라고 가볍게 여겨 준비 없이 올라갔다가 큰 경을 칠 뻔했다. 산행엔 평소 호형호제하는 LG인화원 이병남 사장과 월정사 박재현 종무 소장과 함께 했는데, 산행 준비에 철저한 이 사장의 겉옷과 장갑으로 그나마 산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경사진 험로에서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오 르니 옛 선승이 새삼 떠올랐다. 세상엔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80년대 초 불과 40여 세의 나이로 좌탈입망(앉은 채로 세상을 떠남) 한 선승 혜수 스님이 있었다. 그는‘이 시대의 마지막 괴각승’으로 불릴 정도로 성격이 괴팍 했다. 혜수는 그처럼 괴팍하면서도 군자대로행
(君子大路行)이라면서 절 집안의 작은 문으로 는 출입하지 않고 꼭 큰문만을 이용했다. 언젠 가 도반들과 함께 만행을 할 때 대구 팔공산 동 화사에 갈 때였다. 도반들은 그런 혜수를 골려 주기 위해 동화사에 앞질러 가서 절집의 대문 격인 천왕문을 잠가버렸다. 그러나 천왕문 옆 은 툭 터져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혜수는 들어오지 않았다. 도반 들은“우리가 장난을 해 화가 나서 돌아갔는가 보다”며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서 천왕문에 나와 보니 혜수는 그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도반들이 사죄했지 만 혜수는 태연하게“밤새 서서 참선을 했다” 고 말했다.

동화사 주지 원명 스님은 70년대 그런 혜수 와 함께 이 눈길을 오른 적이 있었다. 원명 스님 은 당시 발목까지 덮이는 농구화를 신고 있었 다. 그러나 혜수는 털신을 신고 있었다. 털신은 눈이 많이 쌓인 곳에선 신발이 눈에 빠지곤 해 서 눈밭을 걷기 어려웠다. 그래서 혜수는 아예 털신을 벗어들고 맨발로 눈길을 걸어 올라갔다.

원명 스님은 농구화를 신고도 발이 시려 참기 힘들었다. 신발을 신고도 꽁꽁 얼어붙는 눈길에 서 혜수의 발은 칼로 에이는 듯 한 통증이 엄습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혜수는 산 위에 올라 서 얼음물에 발을 담갔다. 얼음 든 발을 갑자기 따뜻한 물에 넣으면 동상에 걸리기에 서서히 녹 이기 위한 것이라곤 하지만, 꽁꽁 언 발을 또 얼 음물에 넣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선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다. 그 모습을 지켜봤던 원명은 “육체의 고통 정도는 아예 초탈한 모습이었다” 고 하는 회고담을 들은 적이 있다.

추울 때는 추위를 탓하며 따뜻함을 그리 워하고, 더울 때는 더위를 탓하며 시원함을 그리워하는 이 중생에겐 추위와 더위와 좋 고 싫음에 연연하지 않는 그런 담담한 경지 가 부러울 따름이다. 그 혜수가 걷던 길을 40~50분을 오르니 그 외딴 봉우리에 나무 껍질로 만든 너와집 하나가 외로이 앉아있 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는 너 와집을 하얀 눈이 이불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염불암에 한 스님이 살고 있다. 혜수와 같은 담담한 경지를 꿈꾸는 또 다른 선승이 다. 여름엔 뱀이 방 안까지 들어와 함께 잠 을 이룬다는 곳이다. 또 때론 귀신이 들끓어 이곳에 온 스님이 공부를 하지 못하고 하산
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오고하는 허상을 여 실지견하지 못한다면 어김없이 당할 수 있 는 곳인 셈이다. 그 허상에 현혹되지 않는 스님의 살림이 넉넉해진 것인가. 겨울이면 먹을 것이 없는 산짐승과 새들이 마당에서
그에게 탁발을 한다. 그는 인적 끊어진 그곳 에서 홀로 마음을 밝히고 있다. 그가 마시는 물이 바로 옆에 있는 우통수다.

이 우통수는 다른 골짜기의 물들과 함께 오대산 계곡을 흐르다가 내린천과 월정천 을 합류해 오대천을 이루고 다시 조양강을 거쳐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그런데 예부터 우통수는 그 빛깔이나 맛이 특이하고, 무게
도 보통 물보다 무거워 한강에 이르기까지 다른 물과 섞이지 않고 물 속 깊이 흐른다 고 전해져왔다. 그래서 마치 중국 양자강의 경우와 마찬가지란 뜻으로 중냉(中冷)이라 고도 불렀다. 여러 줄기의 냇물이 모여서
강을 이루고, 바다에 이르러도 중냉의 물만 은 다른 물과 섞이지 않고 고유의 맛을 그 대로 간직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통수를 조 선 최고의 물로 쳤다. <삼국유사>엔 신라 때 신문왕의 태자 보천과 효명왕자가 국난
에 처해 이 물을 길러 진여원(현재 상원사) 의 문수보살에게 올려 공양하고, 스스로 차 를 다려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한양에서도 한강 가운데로 들어가 물 속 깊은 곳에서 길러다 파는 물은 다른 물보다 값이 몇 배
나 비쌌다고 한다.<홍길동전>을 지었던 허 균도 이 우통수로 차 한 잔 우려마시기를 늘 그리워하며 다시(茶詩)를 읊었다.

봄 지난 들꽃은 병든 눈을 닦아주고 비 갠 뒤 산새들은 조용한 잠을 청하는 듯 찻사발에 달인 차로 소갈증이나 낫게 하고 싶지만 어찌 우통(宇筒)의 으뜸가는 샘물을 얻으랴.
물도 사람도 깊고 제 빛깔이 있어야 한 다. 진흙 속에 있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추위 속에 있으면서도 추위 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는 혜수처럼, 한강의 온갖 물과 함께 어울려 흐르면서도 제 빛깔
을 유지하는 우통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