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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의 원리와 실천

김호귀 /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1. 중도의 원리
카니시카왕을 전후로 하여 남인도의 칼링가 지방에서 출세한 용수(龍樹 Nagarjuna 150-250)는 대승불교의 다양한 교학을 발흥시키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때문에 소위 팔종(八宗)의 조사로 존칭된다. 그의 저술인 “중론”의 귀경게에서는 모든 희론을 단멸시키는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기한 것도 없고 또한 소멸한 것도 없으며  不生亦不滅
영원한 것도 없고 또한 단절된 것도 없으며  不常亦不斷
동일한 것도 없고 또한 변이한 것도 없으며  不一亦不異
다가온 것도 없고 또한 멀어진 것도 없다네  不來亦不出


이것은 붓다의 근본교리인 연기의 이법에 기초하여 용수의 학설이 성립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연기(pratityasamutpada)라는 용어는 용수에 의하면 ‘저것[彼]에 의하여 이것[此]이 존재한다.’는 말로 해명된다. 여기에서 저것과 이것이라는 대명사는 12연기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존재의 구성요소의 그 무엇을 대표한다. 12연기 가운데서 중요한 바탕을 형성하는 식(識)과 명색(名色)의 관계에서 이것이 언급된다. 그래서 ‘저곳에 의하여 이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식과 명색은 마치 갈대묶음이 서로 의지하여[相依] 서 있는 것처럼 상의상대(相依相待)로 설명된다. 식과 명색은 저것과 이것의 상관성에서 저것과 이것으로 생기하여 존재한다. 이와 같은 연기가 귀경게에서 말하는 생·멸·거·래·일 ·이·단·상이라는 8가지의 입장으로서 소위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1) 불생불멸(不生不滅) - 시간성의 원리
생이라는 것은 보통 능생과 소생이 개념적으로 분별되고 존재[有]가 되며 확정된다. [定] 곧 자체로서 존재하는 리얼한 능생의 인으로부터 소생의 과가 생겨난다. 그런데 이처럼 자체로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인이 먼저 존재하고 그로부터 과가 생겨난다는 사상은 법의 상호관계성으로 설명되는 연기에서는 부인된다. 그러므로 그 생(生)은 연기의 입장으로 보면 이런 까닭에 불생(不生)이다.
마찬가지로 자체로서 존재하는 인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이 거부되는 경우에는 생이라 해도 그것은 실체가 있는 사물이 생겨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지랑이를 예를 들면 마치 인으로부터 아지랑이와도 같은 과가 생겨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소멸하여 없어져야[無] 할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멸하여 없어지는 것조차 없으므로 소멸[滅]도 연기에서 불멸(不滅)이다.


2) 불거불래(不去不來) - 공간성의 원리
거·래(去·來)는 가고 오며 나아가고 멈추는 것처럼 일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동작 내지 작용을 나타내는 말이다. 동작의 주체인 작자(作者)와 작자가 동작함으로써 동작으로 드러나는 소작(所作)과 그 사이의 관계성이 각각 개별적으로 분별된다는 것은 부인된다. 때문에 거래는 연기의 입장에서 불거·불래(不去·不來)이다.


3) 불일·불이(不一·不異) 및 불상·부단(不常·不斷) - 변화성의 원리
위에서 말한 능생과 소생의 인과관계에서 보면 능생의 인에 실체성이 가정되고 그 자체에 실용성이 가정된다. 이 능생의 인이 소생의 과로서 그대로 드러나는 인과동일성에서는 과의 위상에 여전히 인의 체·용(體·用)이 존속하는 인의 항상성이 되지만 법의 상의상대성에 바탕한 연기법에서는 인의 실체성과 실용성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된다. 이 점에서 그 동일성과 항상성은 부인되기 때문에 불일·불상(不一·不常)이다.
말하자면 인법과 과법이 이체(異體) 곧 별체로서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할 경우, 인이 과를 향하여 생기하는 것은 부인되므로 상의상관성의 연기에서는 그 인법과 과법이 별이(別異)로 단절되는 이·단(異·斷)의 사상은 곧 부인된다. 이것이 불이·부단(不異 ·不斷)이다.


2. 중도의 실천
이와 같은 팔불(八不)은 곧 희론을 적멸시키는 근본방식이다. 희론이란 구체적인 존재인 세간이 능지(能知)·소지(所知)·능언(能言)·소언(所言)과 같이 언어의 형태로 개념적으로 표현되어 거기에 능지가 있고 소지가 있으며 능언이 있고 소언이 있다는 식으로 이 세간에 행사되는 것을 말한다. 세간은 이처럼 능소를 분별하고 능소를 ‘존재’하는 것으로 희론하는 집착의 형태이다. 그러나 그 능소는 연기 곧 상의상대성이므로 능성(能性)이 먼저 개별적으로 성립되어 있다해도, 그리고 소성(所性)이 먼저 개별적으로 성립되어 있다해도 그것은 모두 부인된다. 또한 저것과 이것은 상의상대에 의하여 저것과 이것이 생기하고 존재하는 것이므로 능성과 소성이 동시에 부여된다해도 그 능소 양자의 상의상대가 성립될 리도 없다. 그래서 능과 소의 상응론(相應論)도 부인된다. 따라서 연기에 있어서 능과 소의 두 가지는 그 어떤 것도 자체로서 결정된 상(相)이 없이 두 가지 모두 상의상대이다.
그 어떤 것이 먼저인가 하는 시작이 없어 무시 이래로 그 실체가 없다. 곧 무시성(無始性)으로서 공(空)이다. 이처럼 구명된 능소의 희론은 결코 희론으로서 성립될 수 없는 공의 경지가 곧 희론의 적멸이다. 이 희론이 적멸된 경지가 승의제(勝義諦)인데 용수는 늘상 이 점을 개현시키려고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용수는 그 경지를 공성(空性)이라 하였다. 연기의 도리가 지향하는 바처럼 희론이 적멸되어 공성이 공성으로서 작용을 지니는 것을 공용(空用), 곧 공의 인연이고 공이 터득되는 것으로 공의 목적이라 하였다. 공성이 공의 제일의 형태라면 공용은 공의 제이의 형태이다.
이처럼 팔불로 제시된 희론의 적멸은 출세간의 공승의제(空勝義諦)로서 상의상대인 연기이지만 동시에 이 연기에서 세간의 올바르고 긍정적인 존재방식이 도출된다. 그것을 “중론”에서는 공의(空義)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