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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내내 계속되는 상상 초월 가행정진

대승사 대승선원


유철주 /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주임


출·재가 함께 정진하는 도량 자리매김
해제 이후에도 21일간 산철 용맹정진 


금강송 숲길을 따라 꼬불꼬불 올라간 문경 사불산(四佛山). 사람이 수행하기에 가장 좋다는 해발 600~700m 지점에 아담한 사찰 대승사(大乘寺)가 자리하고 있다. 불사를 막 끝낸 백련당과 요사채가 대웅전과 대승사 아래 들어섰다. 주지 철산스님이 지난 몇 년간 원력을 세워 최근에 완공한 건물들이다.
계속되는 혹한에 산과 사찰이 모두 얼어 붙어버렸지만 대승선원(大乘禪院)과 백련당에서의 구도열기는 혹한을 물리치고도 남을 정도다. 이번 동안거에는 대승선원에 25명의 스님이 방부를 들였고 백련당에서는 9명의 재가자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사찰이지만 여느 교구본사 선원 못지않은 열기다. 봉선사 주지를 역임한 철안스님과 조계종 전 기본선원장 영진스님, 중앙종회의원인 무애스님, 전 중앙종회의원 도완스님 등이 함께 정진하고 있다. 
대승선원장 철산스님은 “여느 때보다 구참 스님이 많아 공부 분위기가 잘 잡혀 있다”고 말한다.
대승사는 신라 진평왕 때인 서기 587년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창건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천강사불 지용쌍련(天降四佛 地湧雙蓮). 하늘에서 사면에 부처님의 상호가 새겨진 바위가 내려앉자 왕은 절을 세우고 스님을 모셨다. 절에서 수행하던 이름 없는 스님이 입적해 법구를 땅에 묻자 땅에서는 두 송이의 연꽃이 피었다.”
지금도 대승선원 건물 외벽에는 ‘천강사불 지용쌍련’ 편액이 걸려 있다. 이후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사불산을 사이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만나 서로의 수행을 점검했다고 하며, 고려시대의 대선사 나옹혜근도 대승사에서 출가했다.
근대 들어 대승사는 한국 선불교의 전진기지가 된다. 1944년 청담, 성철, 우봉, 서암, 자운스님 등은 대승사 선원에서 함께 수행했으며, 성철스님은 당시 3년간 눕지 않고 앉아 수행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계속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1947년부터 ‘부처님 법대로 살자’고 다짐하며 진행된 봉암사 결사의 논의가 대승사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근현대 불교의 거목들이 정진했던 곳이어서인지 대승선원의 수행은 혹독하다. 수행 일과표를 보면 새벽 3시 예불 및 입선을 시작으로 5시 방선, 5시 50분 조공, 8시 입선, 11시 방선 및 예불, 11시 20분 사시공양, 오후 2시 입선, 4시 방선 및 청소, 4시 50분 약석, 7시 예불 및 입선, 10시 방선 및 취침 등으로 이어진다. 가히 ‘살인적’인 수행스케줄이다.
그런데 철산스님의 답은 명쾌하다.
“이곳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은 자신이 원해서 온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은 고생이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승사 전통으로 자리 잡은 산철결제 3 . 7일간 용맹정진을 해도 잠을 많이 잔 사람보다 더 생생하고 눈빛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습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철산스님의 낯빛도 깨끗하기만 하다. 스님은 선원장과 주지 소임을 같이 봐야 하기 때문에 선원 스님들보다 더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래도 눈빛은 너무나 맑았다.
스님은 “한 철만 공부하면 자신이 득도한 것으로 여기고 자신의 양식은 그것으로 다 벌었다고 믿기도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며 “선각자에게 끊임없이 묻고 탁마해야 한다. 스스로 공부한 것이 맞는지 선지식들에게 묻고 또 물어 지혜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산스님은 연말에 선방에서 보내고자 온 한 신도에게 “산모들이 그 큰 고통을 참고 아이를 낳는 것도 원력(願力)이 있기 때문”이라며 “깨달음을 얻겠다는 원력이 간절히 서야 힘든 수행도 이겨 내는 것”이라고 원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저 눈발이 흩날리듯 생각이 이리저리 변하고, 몸뚱이가 움직이는데 그 몸뚱이를 움직이게 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한번 참구해 보라”며 화두를 내렸다.
백련당에서 정진하고 있는 재가자들은 대부분 50, 60대들로 수행 경력이 5~10년 정도에 이를 정도로 공력이 만만찮았다. 재가자다 보니 가정사나 업무 등 개인 사정에 따라 수행 기간은 다소 자유로운 편이다.
강원 양구군에서 왔다는 법명이 반야인 여성 수행자(51)는 한 달에 열흘씩만 정진하고, 부산에서 온 이석향(51) 동의과학대 교수도 틈틈이 이곳에서 정진한다. 디자인 전공인 이 교수는 30대 중반에 머리 깎고 출가, 행자 생활까지 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출가한 바람에 산중에 있기보다 품은 뜻을 세간에서 펴라는 어른 비구니 스님의 당부로 다시 내려왔다고 한다. 그는 부산의 한 선원에 머물면서 학교 강의에 나가고, 방학 때는 이곳을 주로 찾는다.
가장 나이가 어린 30대 후반의 남성 수행자는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을 찾는 도중 이곳에 왔다. 그는 “옛날부터 안거에 참여해 보고 싶었는데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오게 됐다”고 말했다.
대승사 신도들은 매월 15일부터 24일까지 10일간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을 한다. ‘그 스님들’에 ‘그 불자들’이다.
대승사는 스님들과 재가자들의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함께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한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계속해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금우문화재단을 만들어 문경시내에서 매주 300여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가마를 열어 도자기를 굽고 도라지, 장뇌삼, 죽염, 된장 등을 직접 재배하고 만들어 스님들을 외호하고 대중들에게 보시하고 있다.
철산스님은 “사찰이 산중에 있어 자급을 위해 시작한 일이 많이 커졌다”며 “절에 오는 분들에게 부처님 가르침뿐만 아니라 차 한 잔 할 수 있는 다기(茶器)를 드리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근현대 한국 선불교 중흥의 요람이었던 대승사 대승선원은 오늘도 이렇게 출·재가가 함께 정진하며 한국 불교의 내일을 기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