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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생활속의 사경수행(寫經修行)

여산스님 / 캐나다 토론토 대각사


불교, 한문, 영어, 이 세 가지 공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대부분 ‘어렵다’라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불교를 믿고〔信〕 배우고〔解〕 수행하고〔行〕 체험하고〔證〕 나아가 포교〔傳〕하려는 원을 세운 사람이라면 출가·재가를 막론하고 이 세 가지를 다 공부해야 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눈 밝은이의 입장에서 보면 불교는 코로 냄새 맡는 것과 같은 당연지사인데 어렵고 말고 할 일이 아닐 것이고, 한시를 통해 선의 안목을 드러낸 대선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문만큼 인간의 의식수준을 깊이 있고 간단명료하게 표현해내는 문자를 찾기도 힘들 것입니다. 또한 영어문화권에서는 아기들도 영어로 말하고 개도 알아듣는 걸 보면 영어 그 자체가 어려운 언어는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왜 어렵나?’하고 묻는다면 결국은 대상을 향한 닫힌 마음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가까이하여 자주 익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어려운 것은 법이 아니라 중생의 업(생활습관)이 어렵다는 말과 같습니다.
수행이란 닦을 수(修), 행실 행(行), 곧 ‘행실을 닦는다’는 말로 풀이 됩니다.
행실이란 외모와 몸가짐, 언어습관, 생각의 패턴이며 평소에 생활하는 가운데 보통 ‘나’와 ‘남’을 구분하여 지칭하는 말로써 이를 불교말로는 업이라 합니다.
즉 모두가 본래 불(佛)인 우리의 몸과 말과 마음에 덧씌워져 반복적으로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생 습관인 업을 덜어내는 과정이 수행이라면, 그 결과가 본래 우리에게 깃들어 있는 불(佛)의 복덕을 온전히 누리고 사는 것임은 당연지사임이 분명합니다.
바쁘지 않으면 들떠야 사는 현대인들에게 혼자만의 외로움은 죽음보다 더 피하고 싶은 고통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신심은 얕고 아는 것만 많은 불교는 오히려 더 큰 번뇌가 되어 일상의 삶을 더 번잡하게 만들 뿐이니, 실천수행이 꼭 필요하다고들 하나 막상 무슨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초발심 불자님들, 해마다 반복되는 행사불교의 지루함, 일회성 이벤트 불교의 거창함에서 오는 내면적 허함을 수행으로 채우고 싶은 불자님들, 비록 입으로는 병속의 물을 쏟듯이 막힘없이 줄줄 외우지만 경의 뜻은 알아지는 것 같지 않은 송경 수행자들, 눈으로 읽을 때는 이해되는 것 같다가도 말로 설명하려면 꿀먹은 벙어리요, 글로 쓰려고 하면 눈앞이 깜깜해지는 독경 수행자들, 오직 화두일념으로 정진하여 견성성불하고 싶고 좌선이 좋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다급한 마음에 조복되지 못한 중생습관과 신심 부족으로 막상 앉아보면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고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나는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아니면 졸음으로 인하여 수행이 곧 고통인 좌선 수행자들, 아무리 좋은 뜻도 한 마디로는 다 전달하기 힘든 현대인의 복잡한 정서와 환경변화에 맞는 포교를 위해 다양한 언어방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시는 포교사님들, 이 모든 분들에게 사경수행(寫經修行)을 적극적으로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사경은 선(禪)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 자 한 자 손으로 정성껏 옮겨 적는 것은 그대로가 자기부처와 만나는 선수행임은 새삼스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설사 한 글자를 사경하더라도 몸은 반듯하게 앉고, 중생 말이 그쳐지고, 중생 생각이 멈추어집니다. 한 글자 사경하는 순간은 몸으로 짓는 업인 살생·투도·음행이 그치고, 입으로 짓는 업인 거짓말·아첨·이간질·욕설이 멈추고, 마음속 깊이 자리한 모든 근심·걱정·불안·두려움·외로움·후회·미움·원망·시기·질투가 물러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몸과 마음에 얹힌 중생습관이 그치니 이것은 지계입니다. 이렇게 산란한 몸과 마음이 쉬고 고요함이 드러나면 이것은 그대로 선정입니다. 선정삼매 속에서 부처님의 금구·성언을 한 자 한 자 종이에 새기며 자기 마음에 회광 반조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이와 같이 사경은 일상생활 가운데 계·정·혜 삼학을 동시에 닦는 수행이며, 밝아진 그 마음이 부처마음과 둘이 아니니 한 글자 사경이 곧바로 선수행입니다.
사경은 성불의 길입니다!
보살이 닦는 육바라밀인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지혜 가운데 으뜸이 보시요, 보시 중의 으뜸이 법공양입니다. 사경수행으로 자신의 무명업장을 닦아 본래의 밝은 성품을 회복하여 안과 밖의 모든 다툼이 쉬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자리이타행으로 법공양이 보시 중의 으뜸이 되는 이유입니다. 역사 속에서 생몰한 한 인간에 불과했을 싯다르타의 발심출가수행이 석가불의 탄생으로 이어져 수많은 조사 선지식을 낳아 사람과 역사를 살려왔고 오늘날 전 세계가 불법을 향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 글자 사경에서 두 글자로, 5분 사경에서 10분으로, 한 편 사경에서 두 편으로 이어져 나아가는 사경수행과정은 그대로 인욕과 정진바라밀행입니다. 그러므로 한 글자 사경 속에 보살이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육바라밀을 닦아 성불하는 길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경은 시작이 바로 완성이며, 중간에도 환희심이 절로 나고, 끝은 신심으로 충만한 수행이요, 일행이 곧 만행의 공덕을 두루 갖춘 바라밀행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경 수행과 겸한 언어문자 공부는 그자체로 자리이타 법공양의 보살행이며, 수승한 전법의 방편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경은 불자신행의 요건인 스스로 믿고 배우고 수행하고 체험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법의 행덕까지 동시에 다 갖추고 있어서 바쁘고 복잡한 현대 생활 가운데서도 누구나 마음만 열면 할 수 있는 수승한 수행임이 분명합니다.
날이 갈수록 신심은 없고 구하는 것만 많아지는 재가 신도님들, 수행은 없고 아는 것만 많아지는 출가 수행자들, 우리 모두가 함께 가야할 길은 오직 한 길-바라는 것 없는 순일한 신심으로 안과 밖의 모든 다툼을 온전히 쉬게 할 수행의 길, 그 길 위에서 사경수행을 새롭게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