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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포교를 중심으로 한국불교의 나아갈 방향

회주스님 인터뷰


이성수
불교신문 전직 편집국장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처음에 바르게 낸 마음이 곧 깨달음을 성취하게 된다는 의미다. <화엄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불제자들이라면 누구나 마음 깊이 새겨 수행의 지남指南으로 삼는 경구다. 하지만 처음 세운 원력을 변함없이 유지하며 이어 간다는 일이 결코 녹녹하지는 않다.
첫 발원을 잊지 않는 마음과 또 그것을 부단히 실천하겠다는 간절함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령 300호를 맞이한 <월간붓다>가 그동안 걸어온 길이 바로 그렇다. 부처님 가르침을 보다 많은 이에게 전하겠다는 원력을 변함없는 마음과 정성으로 묵묵히 실천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월간붓다> 발행인 정우스님(영축총림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회주)의 원력이 있다.
“감회가 새롭지요. 바로 엊그제 <월간붓다>의 전신인 <구룡사보>를 낸 것 같은데 벌써
300호를 맞이하게 되었네요.” 정우스님은 문서포교에 대한 교계 관심이 미약하던 시절,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사보寺報 발간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1988년이었다. 처음 사보를
펴낸다고 했을 때 어찌 반대가 없었겠는가. 1985년 통도사 포교당으로 구룡사를 창건해 서울 강남포교의 선구자로 첫발을 내딛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불사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시기였기에 늦추자는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우스님은 신도들과 일반 대중에게 보다 쉽고 빠르게 불법佛法을 전해야겠다는 원력을 실천에 옮겼다.
창간 당시를 스님은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완성시키기 위한 과정 속에서 많은 혼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불교 역시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본연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급변하는 사회에 휩쓸려 방황 했습니다. 이처럼 혼란한 시기의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부처님의 품안과 같은 따뜻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부처님의 품안에서 가정의 평안을 이루기를 일념으로 발원했습니다.”
정우스님의 결단과 신도들의 동참으로 출발한 <구룡사보>는 1989년 <구룡九龍>을 거쳐
<월간붓다>로 제호를 바꾸며 사보에서 명실상부한 불교매체로 성장했다. 신도들은 물론
일반불자와 국민들을 꾸준히 찾아갔다. 신심 나는 소식이 자주 실리자, 신행 활동에 도움을 받기 위해 <월간붓다>를 보내달라는 곳이 늘었다. 미래 한국불교의 희망인 군법당과 해외포교당까지 발송하고 있다. 지난 2012년 해외발송비만 1000만원이 넘는다. “제작비와 발송비 그리고 원고료까지 감안하면 <월간붓다>를 매달 빠짐없이 발행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단 한사람에게라도 더 전해 소중한 인연을 맺도록 해주는 것이 불제자로서 해야 할 보람 있는 일이라는 다짐을 잊은 적은 없습니다.”
어느덧 햇수로 사반세기인 25년이 흘렀다. 창간 준비호를 포함하면 삼백서른한 번째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그동안 발행한 부수만 해도 수백만부에 이른다. 일제강점기부터 수많은 불교잡지가 나와 명멸明滅했지만 25년째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발행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더구나 타종교에 비해 문서포교 활동이 미약한 불교계 현실을 감안할 때 지령 300호를 맞이한 <월간붓다>의 ‘묵묵한 걸음’이 지닌 의미는 경제적 계산으로만 따질 수는 없는 불사이다.
지금의 <월간붓다>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조계종 종정을 지낸 월하月下대종사의 관심과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월간붓다>의 제호題號도 월하대종사가 구순九旬에 직접 붓을 들고 쓴 친필이다. 정우스님은 “노스님께서 <월간붓다>를 발행하여 배포하는 일은 ‘의미 있는 큰 불사’라고 기뻐하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잘 실어서 단 한명이라도 더 포교하라고 당부하셨다”고 회고했다. 1988년 3월 <구룡사보> 창간호에 실린 월하대종사의 법문은 <월간붓다>의 지향점을 잘 제시하고 있다. 당시 월하대종사는 “수행의 근본은 선禪과 교敎의 갈라짐이 아니다”면서 “선시지불禪是之佛이요 교시지어敎是之語의 참뜻을 헤아리는 지혜智慧가 있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설했다. 정우스님이 사반세기 동안 300호가 되도록 <월간붓다>를 내는 것은 대중에게 불법의 참뜻을 전해 지혜로운 삶으로 안내하라는 월하대종사의 가르침을 계승하겠다는 까닭도 있다.
정우스님에 대해 월하대종사는 각별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수도권 포교의 기치를 걸고 출발한 구룡사가 1987년 만불전 회향식을 할 때 법문을 하기 위해 상경한 월하대종사는 ‘진리무상미언설眞理無相未言說 일체만물무비통一切萬物無非通이란 친필을 전했다. 정우스님은 그 뜻을 이렇게 풀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한 후 세상의 이치를 살펴보니, 이미 말로 하기 전에 모두 연기법緣起法에 의해 갖춰진 모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그냥 연기법으로만 이뤄져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부처님의 몸으로 이뤄져 있고, 세상의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부처님 아닌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분별심을 버리고 평상심을 내어 언제나 한결같이 수행하고 정진하란 의미가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이 같은 대종사의 당부와 정우스님의 원력이 튼튼한 뿌리가 되어 <월간붓다>는 결호缺號 없이 독자들에게 불연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월간붓다> 발행을 격려하는 것은 물론 월하대종사는 정우스님을 아끼고 격려했다.
천막법당으로 구룡사를 창건하고 주지 소임을 맡자 “정우는 할 수 있다. 중도에 폐閉하지 말라. 힘들면 나에게 이야기 하라”고 힘을 북돋아 주었다. 대종사의 넉넉한 마음이 정우스님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이다. “30대 중반의 어린 손상좌에게 그 같은 큰스님의 격려는 마치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듯 커다란 힘이 됐습니다.”
월하대종사의 당부를 차질 없이 계승하기 위해 정우스님은 <월간붓다>에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 “큰스님 뜻에 따라 향기로운 내용을 담으려고 합니다. 비록 글이 서툴더라도 신행활동을 하며 체험한 진솔한 이야기들이 조금 더 실리도록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정우스님은 대종사의 뜻을 어느 정도 실천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저는 제 능력과 역량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이렇게까지 많은 일을 할 거라는 생각은 사실 단 한 번도 해본 일이 없습니다. 저도 무척 자유분방한 사람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도시에 머물며 불자들과 함께 어울릴지 몰랐습니다.”
300호에 이르기까지 나온 <월간붓다>는 매호 모두 정우스님에게 ‘보물 같은 존재’들이다. 지금도 정우스님은 <월간붓다>가 나오면 찾아오는 이들에게 한권씩 권한다. 스님이 창건한 20여 곳에 이르는 국내외포교당에도 빠짐없이 비치해 놓도록 했다.
정우스님은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 잡지 전체를 꼼꼼하게 다 볼 수는 없지만 필요한 부분은 꼭 읽는다”면서 “보다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읽고, 또 그것이 인연이 되어 부처님 가르침에 가까워 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우스님이 서울 구룡사와 일산 여래사를 비롯해 신도시 포교당을 찾을 때마다 <월간붓다>가 신도들의 사랑을 받는지 눈여겨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참배를 마치고 <월간붓다>를 읽는 신도들을 보면 기쁜 마음이 절로 생긴다고 한다. “당연히 보람을 느끼지요”라며 스님은 환하게 웃었다. 미국 오리건주에 사는 한 신도는 교민들이 자주 찾는 한인마트에 <월간붓다>를 갖다 놓는다고 한다. 그리고는 책이 다 없어질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 이유는 이교도들이 <월간붓다>를몽땅 치워 버리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 때문. 정우스님은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더 많이 발행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긴다”고 말했다.
1965년 통도사에서 홍법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한 정우스님에게 영축총림 통도사는
고향과 같은 곳이다. 특히 통도사에서 인연을 맺은 노스님들의 가르침은 지금까지 수행자의 길을 묵묵히 걷게 한 원동력이다. 특히 정우스님은 경봉·벽안·월하 스님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인자한 성품으로 후학들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늘 따뜻하게 지도했던 어른스님들의 향기가 그립다고 했다. 1977년이었다. “스물 다섯쯤 됐을 겁니다. 어른스님들께 미처 말씀드리지 못하고 상경上京했습니다. 서울이라는 ‘큰 마을’에서 공부하고 싶었는데, 어린 마음에 허락해주실 것 같지 않아 몰래 올라왔지요.” 서울에 도착해 관악구 봉천동의 작은 절에 거처를 정하고 나서야 정우스님은 어른스님들께 편지로 문안을 드렸다. 얼마 후 벽안스님이 답장을 보내왔다. 정우스님이 지금도 마음에 새기고 있는 벽안스님의 편지 내용이다. “젊은이들은 구습舊習을 타파하고, 이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부응하라. 공부하러 갔다고
하니, 안심安心이다. 통도사를 위하고 불교를 위하라.” 당시 동국대 이사장 소임을 보고 있던 월하대종사는 주소가 적힌 편지 봉투만 들고 물어물어 정우스님이 있는 봉천동 절을 두 번이나 직접 찾아왔다. 손상좌가 머무는 거처가 제대로 돼 있기는 한지, 공양은 제때에 하는지, 그리고 공부는 얼마나 하고 있는지 당신이 손수 살폈던 것이다. 정우스님은 “우리는 그 어른들의 그늘에서 가르침을 자양분 삼아 이만큼 성장했는데,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본다”고 당시 일화를 회고했다.
정우스님은 그동안 조계종 총무부장, 중앙종회의원,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등을 역임하며 대중을 외호하고 종단발전과 불법 홍포를 위해 노력해 왔다. 군복무시절 사병의 신분으로 호국황룡사와 호국일월사를 건립하고, 수도권에 포교당을 세우는 한편 뉴욕 원각사 주지를 지내며 해외포교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부처님 성지에 도량을 세우고, 해당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학교도 건립했다.
<월간붓다> 300호 발행과 계사년 새해를 맞이한 정우스님은 “이제 남은 시간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살려고 한다”고 밝혔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부처님의 대자대비 정신을 전하겠다는 원력이다.
설을 맞아 스님은 독자와 불자들에게 덕담德談을 선물했다. “너무 경직되지 말고 유연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과욕을 부리고 어리석음 때문에 분노를 치솟게 하지 말고, 남을 아끼고 상대를 존중해 주었으면 합니다. 지나치게 경직되고 편협할 필요가 없습니다. 배려할 수 있는 자애로움과 인자로움이 우리 불자들에게는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일이 종교의 소임이라는 것이 정우스님의 소신이다. 불교나
기독교나 그 어느 종교든 세상을 맑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이 세상에 윤활유나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런 저런 일로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는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과 활력을 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