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좌담
본지는 지령 300호를 맞이해 불교학자와 불교언론계에 종사하고 있는 전·현직 편집 책임자를 모시고 ‘문서포교의 의의와 전망'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도심포교의 활성화를 통한 생활불교의 장을 펼쳐나가기 위해 창간 된 월간 『붓다』의 창간 의의 ▲구룡사와 여래사의 개원과 도심포교 성과 ▲도심포교와 문서포교의 상보성 ▲교계언론과 문서포교 현황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 ▲불교잡지의 역사와 방향성 ▲사보 발행 현황과 방향성 등에 관한 광범위한 토론이 펼쳐졌다.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정리, 게재한다.
<편집자주>
사회 박경준 동국대 교수
참석자 박부영 _ 불교신문 편집국장
정성운 _ 전 불교TV 보도국부국장
사기순 _ 우바이예찬 편집위원
일시 : 2013년 1월 15일
장소 : 본지 편집실
정리 : 신원식
박경준
공사다망하신데도 이렇게 자리를 함께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월간 『붓다』는 도심포교를 통해 불교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실현하고자 구룡사를 창건한 정우스님에 의해 1989년 창간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차례의 거름도 없이 다양한 문화포교를 실현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절을 처음 찾은 초심자들에게는 불교를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고 기존의 불자들에게는 신심을 더욱 굳건히 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나름대로 애써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늘 토론회의 주제가 「문서포교의 의의와 전망」이기는 하지만, 이 토론회가 월간 『붓다』 지령 300호를 맞이해 열리는 만큼 먼저 월간 『붓다』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월간 『붓다』가 그동안 나름대로 어떤 역할을 했고, 월간 『붓다』의 창간이 한국불교 문서포교사에 있어서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특히 월간 『붓다』가 구룡사 정우스님에 의해 창간되었고 주요 독자층도 구룡사와 여래사를 비롯한 통도사 포교당 소속 사찰 불자들과 지역 주민들일 것이기 때문에 지역적 특성에 어울리는 내용을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그리고 포교지로서 지역 주민들에게 어떻게 파고들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월간 『붓다』가 국내 불교계뿐 아니라 세계를 향해서도 보편성을 갖는 잡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기순
개인적으로 월간 『붓다』를 처음 접한 것은 1989년 『현대불교』라는 잡지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구룡사 주지이신 정우스님을 인터뷰하기 위해 절을 찾아갔는데, 구룡사의 웅장한 규모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찰이 현대적인 건물로 지어졌다는데 우선 놀랐고, 그러면서도 건물이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미를 지니고 있다는데 또 놀랐으며, 상상도 못했던 극단 「신시」가 그 절에 있다는데 놀랐습니다. 정우스님을 인터뷰하기에 앞서 구룡사의 외형적인 규모에 놀라면서 종무소 앞에 놓여있는 『구룡사보』라는 잡지를 처음 보았습니다. 본업이 잡지사 기자이다 보니 더 관심을 가지고 잡지를 펼쳐보았는데, 『구룡사보』라는 제호와는 다르게 단순한 사보의 성격을 뛰어넘어 국내 불교뿐 아니라 세계불교의 흐름까지도 담아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불교계 잡지로는 『불광』, 『불교』, 『법륜』, 『법시』, 『금강』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 국내의 불교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구룡사보』는 제호에 걸맞지 않게 당시 종합불교지에서도 다루지 못하는 해외 불교계의 기사와 세계불교의 흐름까지도 다루고 있다는 느낌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월간 『붓다』는 당시 불교 잡지계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성운
월간 『붓다』를 보면서 특이하게 받아들인 것이 있는데, 바로 월하스님의 법문을 맨 앞에 싣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월 실리고 있는 그 글들을 보면서 수행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지혜들이구나, 하는 생각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른을 중심에 잡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편집방향은 우리 불교가 어른에 대한 예우를 단순히 나이 드신 분으로서가 아니라 스승에 대한 귀의의 본보기를 보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때 정우스님은 한국불교의 한계를 이런 것들을 통해서 매워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사찰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어른의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열어가려는 시도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는 다람살라소식과 대만 불광산사의 성운스님 글, 미국의 화가이자 저술가인 헤리 C. 두리틀의 글 등을 연재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의 불교를 통해서 우리 한국불교가 나아가야할 길을 모색해보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무척 인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부영
월간 『붓다』를 말하기에 앞서 구룡사를 생각해보면, 구룡사는 한마디로 원스톱 서비스가 진행되는 가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도심에 포교당을 만들고, 그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사찰입니다. 구룡사의 성장 밑거름은 어린이포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스님과 더불어 노는 아이들을 보고 신도들도 하나둘 마음을 내기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도 유치원은 구룡사의 자랑입니다. 만불보전이 들어선 땅만큼 넓은 공간은 아이들의 놀이터입니다. 국내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 구룡사는 또 극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우스님께서 개인적으로 맺은 연극과의 인연으로 사찰에 극단까지 만든 것입니다. 인터넷 방송국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상담소와 불교전문 상담기관인 진리의 전화, 자비나눔을 위한 홍법문화복지법인 등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구룡사에서만 볼 수 있는 기관입니다. 어린이 예술단, 문화센터 등 문화 관련 단체가 많은 것도 구룡사만의 특징입니다. 이러한 구룡사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가고 있는 것이 바로 월간 『붓다』입니다. 1989년 2월 창간한 이래 단 한차례의 거름도 없이 발행되어 오늘의 300호까지 이르렀다니, 이는 구룡사만의 자랑이 아니라 한국불교 전체가 함께 기뻐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박경준
부처님의 탄생게인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의미처럼 불교는 부처님 자신의 문제를 통해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등 이 세상의 뭇 생명들의 괴로움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불교는 개인의 안심입명安心立命 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여 궁극에는 해탈과 열반으로 이끌 수 있어야만 그 존재 의의가 있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포교와 전법교화라고 하는 것은 그 만큼 중요한 문제이며, 불교의 숙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불교에서의 포교는 중요한 것인데, 특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불교계로서는 도심포교의 문제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특히 구룡사와 여래사 같은 사찰이 책임져야 할 도심포교에 대한 사명은 막중하다 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구룡사와 여래사의 개원과 그 과정에서 월간 『붓다』가 한 역할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사기순
불지종찰인 통도사만 보더라도 지방에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이 도심에 모여살기 때문에 도시에서 통도사까지 매주 법회를 보러 가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통도사까지 법회를 보러 간다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구룡사와 여래사를 비롯한 수도권 주위에 개원한 20여 개가 넘는 통도사 포교당은 도심포교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바로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했던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정우스님이 서계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정우스님을 인터뷰하러 갔을 때 신도들로부터 느낀 감정은, “우리 스님은 땀이 흐르도록 기도를 열심히 하시고 수행을 열심히 하셔서 항상 몸에서 땀이 흐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정우스님은 포교를 위해 용맹정진을 하셨고 그 덕분에 구룡사와 여래사 등이 빠른 시일 안에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 월간 『붓다』를 처음 보면서 느낀 소회도 되새겨보자면, 법회 때 스님의 법문으로 들려주는 부처님 말씀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역대 조사 선지식과 큰스님 법문을 싣고 주지스님 법문도 함께 실어서 사찰에서 불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또 그 당시 불자들이 불교공부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던 시절인데, 교양대학을 개설하여 불자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려고 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월간 『붓다』에도 불교교리와 불교강좌 등의 지면을 만들어 꾸준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보았습니다. 그 당시 불교 잡지는 지금보다도 많았지만, 이처럼 사보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종합 불교지를 지향하는 잡지는 월간 『붓다』가 최초의 시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정성운
도심포교라는 것이 도심에 절을 세운다고 다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도심포교당을 세운 사찰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어떤 신도들하고 만들어 가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구룡사가 최초로 도심포교를 성공시켜 한국불교계에 모범을 보인 사찰이 아닌가 합니다. 그 중심에 정우스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앞서 다른 분들도 말씀을 한 부분이지만, 특히 정우스님은 절에 계실 때면 예불부터 신도들도 참여하도록 하여 모두가 사찰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준 것이 구룡사를 성공한 최초의 도심포교당으로 우뚝 서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한편으로는 80년대 구룡사가 도심포교의 길을 열지 않았다면 현재의 한국불교 상황은 어찌 되었을까를 상상해보면 산중불교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기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룡사의 개원이 산중의 다른 큰 사찰에도 자극을 줬다는 말씀입니다.
박부영
역사적으로 보면 도심포교는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신군부에 의해 법난이 일어난 시기입니다. 당시의 법난을 현재는 신군부 책임으로 많이 돌리지만, 발생 당시만 해도 우리 불교가 대중들과 만나지 않고 젊은 층들을 외면했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많은 스님들과 불자들이 법난을 겪고 난 뒤 스스로의 자각 속에서 도심으로 파고들어갔고, 젊은이들을 만나려 했습니다. 그 연장 속에 구룡사도 있었지만, 종단 차원의 도심포교가 시작되었던 시기입니다. 이처럼 종단 차원의 도심포교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 도심포교당들이 대중들과 밀접해질 수 있었고, 특히 산중불교에서 포용하지 못했던 젊은 층과의 접근을 쉽게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 중 구룡사의 정우스님은 당시 개발되고 있는 서울의 신도시라고 할 수 있는 강남의 구룡사를 비롯해서 일사 여래사 등 신도시가 들어서는 곳이면 포교당을 세움으로써 한국불교 포교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경준
화제를 바꿔 불교잡지의 역사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합시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잡지는 1912년에 창간된 『조선불교월보』로 되어 있습니다. 그 뒤 당시의 열악한 불교계 현실과 일제의 탄압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불교』를 비롯해서 『유심』 『조선불교계』 『원종』 『조음』 『회광』 『홍법우』 등 많은 잡지가 나와 불교 포교는 물론 국민의 정신문화 창달에도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두 몇 해 발행되는 것으로 폐간되고 맙니다. 물론 일제의 탄압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현재까지 꾸준히 발행되는 잡지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정성운
『불교』는 1924년에 권상로 박사에 의해 창간되었다가 폐간된 뒤 다시 만해 한용운스님에 의해 복간되었다 일제에 의해 강제폐간 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발행이 중단되었다가 1970년대에 제호를 그대로 이어 받아 태고종에서 현재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가장 오래된 잡지라고 한다면 『불광』을 들 수 있는데, 몇 십 년을 지속해서 발행하는 잡지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월간 『붓다』가 올해로 25년이 되었는데, 불교계의 현실로 보았을 때 25년 동안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큰 것 같습니다.
사기순
불교 잡지를 발행하는 궁극의 목적은 포교입니다. 문제는 그 포교가 지속적으로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잡지 발행의 주체가 되는 사찰과 스님이 문서포교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얼마나 지원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할 것입니다. 또 잡지 발행의 실무를 맡고 있는 잡지인들 또한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포교사라는 자긍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박부영
불교 잡지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불교계와 잡지계를 뒤에서 따라가려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앞서 이끌어간다는 능동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경준
시대적인 흐름이겠지만, 통신문명의 발달로 불교계뿐 아니라 잡지계 전체, 나아가 문서매체 전체가 위기라는 지적이 많이 있습니다. 문서매체의 위기의 시대에 불교잡지가 지향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성운
전문성을 살려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송과 인터넷이 아무리 발전해도 방송은 방송으로서, 신문은 신문으로서, 인터넷은 인터넷으로서 담당해야 할 몫이 각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불교 잡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교 신문에서 할 일, 불교 방송에서 할 일, 불교 잡지에서 할 일은 분명히 다릅니다. 처음 잡지를 발행할 때 발행 목적과 지향하는 방향, 그리고 독자층을 정해놓고 출발하기 때문에 거기에 충실하면 된다고 봅니다. 더 심층적이고 더 세분화하고 더 전문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전제 조건으로 잡지 제작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확고한 사명감과 신심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월간 붓다』의 지령 300호를 기점으로 구룡사에서 현재 불교잡지계에서 일하고 있는 종사자들을 한데 모아 서로 정보공유도 하고 잡지 제작인으로서의 자긍심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사보인 대회’ 같은 것을 마련하여 시도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사기순
잡지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같은 제호 아래 각종 원고를 수집하여 시간적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편집 간행하는 정기간행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이나 신문에 비하면 간행 간격이 길기 때문에 속보성에서는 뒤지지만 장기적으로 정보를 분석하고 검토하여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방송이나 신문매체보다 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전문지로서의 본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불교 잡지 발행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 포교이기 때문에 포교의 기능을 살려나가야만 합니다. 현대와 같이 고도로 분업화된 산업사회에서 다양한 계층을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 있는 잡지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연령대와 사회적 지위, 성별, 지역 환경 등에 따라 관심의 대상도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불교 잡지마다 일정한 대상을 상대로 하는 전문지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박부영
폭과 시야를 넓혀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행 주체가 사찰이라고 해서 사찰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불교 잡지라고 해서 불교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경쟁력에서 뒤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가령 필자를 선택할 때에도 불교 내부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필진을 개발하여 불교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그것은 인재포교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영권과 편집권이 분리되어야만 장기적으로 불교 잡지가 나름의 특성을 살려 오래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경준
불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확실하고 바르게 전해주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불자들의 바른 신행을 위해서라도 불교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발행인이나 편집과 제작을 하고 있는 잡지인이나 좋은 불교 잡지 만들기에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울러 월간 『붓다』 지령 300호 발간을 맞이하여 월간 『붓다』 관계자분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구룡사와 여래사 등 월간 『붓다』 와 관련이 있는 통도사 포교당의 불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잡지, “이번 호에는 무슨 내용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하는 잡지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보와 종합 불교잡지의 성격을 병행하는 잡지로 자리매김하여 현재 한국불교 잡지계를 선도해나아가길 기대해봅니다. 바쁜 와중에도 오늘 토론회에 참석하여 고견을 내주신 토론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