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윤(정진화)
수필가, 구룡사 불교대학 41기 회장
 
성도재일 정진 기간 중에 생전 처음으로 참선을 한답시고 법당에 앉았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마음을 내었건만 온갖 잡다한 오만가지 생각이 밀려와서 삼매는 언제 드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대중이 많은 도심포교당에서 매달 하루만 봉사자란 이름으로 공양간에서 그릇을 닦다보니 개수대 앞에 반쯤 가려진 유리창을 통해 많은 대중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내가 주는 공양이 아닌데도 고개를 꾸벅이며 “잘 먹고 갑니다”라며 빈 그릇을 살며시 밀어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하고 돌아서는 노보살님들의 뒷모습을 보면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한 그릇의 공양은 내가 준 것이 아니라 몸을 굽혀 하심하고 있는 저 보살님들의 것인데, 내가 어깨를 들먹이며 으쓱해 하는 것은 분명 주객이 전도된 것,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수백 개의 그릇을 닦다보니 오로지 이 그릇을 빠른 시간 내 깨끗이 닦아야 된다는 일념밖에 없다. 그 많던 잡념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내 어깨와 손이 마치 전자동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이 찰리 채플린 주연의 <모던타임즈>에 나오는 기계 같다고 할까. 함께 호흡이 척척 맞는 도반과 심신이 하나로 조합된 움직이는 기계 같다. 눈빛만 봐도 뭘 말하는지, 몸놀림만 봐도 무엇을 찾는지 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언제 이렇게 호흡이 잘 맞으며 함께 일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법당에서 그토록 찾던 삼매님이 오신 것일까.
절이라는 낯선 곳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을 즈음 도반들과 함께 말만 하면 그 누구도 알만한 절에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몇 군데 간 적이 있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절처럼 모든 사찰의 공양간이 언제든지 공양을 내어놓는 줄 알았다.
사시예불을 보고 난 후, 공양간을 물어물어 갔다. 식탁위에 정성스럽게 잘 차려진 공양이 군침 돌게 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선 터라 배가 출출하거니도 했지만 무엇보다 절밥을 공짜로 먹는다는 생각에 입맛을 쩍쩍 다시며 지금 공양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봉사자인지 공양주인지 화를 벌컥 내면서 “아직 스님도 공양 안 하셨는데 어디 공양을 달라”고 하냐며 혼을 내는데 함께 간 도반한테 미안하기도 했지만, 입이 닳도록 도량이 좋다고 말해 놓은 내 입이 부끄러웠다. 지치고 힘들 때 찾게 된다는, 늘 생각만 해도 포근하고 편안하다는 부처님은 어디 계신단 말인가.
햇살이 좋은 어느 가을 날 예불이 끝난 후,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북한강물과 남한강물이 한 곳으로 합쳐지는 전망 좋은 어느 절에 차를 마시러 갔다. 꼭 불자는 아니라도 누구나가 찾는 그곳에서 가을빛을 마음껏 마시고자 올라갔다. 마침 차방에는 사람이라고는 봉사자 한 명밖에 없었다. 고즈넉한 그 곳에 그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백천만겁 난조우한 부처님의 정법을 만났음에 마음이 들떠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보다.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까.
외국인 젊은이 두 명과 우리나라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두 명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 봉사자가 우리가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달리 친절이 도를 넘은 모습으로 외국인 일행에게 차 마시는 법을 일러주다가 내게 소리쳤다.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이 방과 맞지 않는 사람이니까 나가요. 여기는 당신 같은 사람이 어울리는 곳이 아니에요”하는데 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미안합니다. 내 목소리가 큰 줄 몰랐습니다. 마시던 차를 마저 마시고 일어나겠습니다” 하고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했지만 큰소리로 이 방에 맞지 않다고 야단친다. 우리나라 사람과 외국인을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에 분노가 일었다. 딸 같은 학생들이 보고 있는데 내가 어찌해야 될 지 안절부절 한 것이 내가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 되고 말았다.
가을빛이 그토록 뜨거운 것을 처음 알았다. 따지고 보면 내 목소리가 큰 탓인데 서운한 생각이 드는 건 무슨 일인가. 평소 타인의 눈에 비춰진 내 모습을 일러줘서 고마워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한 내 모습에 또 한 번 짜증이 일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실 입구에 찻값 대신 보시금함이 놓인 곳에 보시금을 넣으려는 순간 내게 야단쳤던 봉사자는 보시함 위에 자기 손을 올려놓고 그 위에 놓으라고 눈짓한다. 생각보다 보시금이 많았는지 금방 안색을 바꾸어 외국인에게 대하던 태도로 “보살님 자주 차 마시러 오세요”라고 한다. 싱크대 가득 쌓인 그릇들을 닦는다. 그릇을 닦을 때마다 나를 닦는다. 가을의 빛이 따가웠던 그 때가 생각나는 것은 지금도 내가 아상我相, 인상人相에 인상印相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아상, 무인상,…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일순간 모든 생각은 달아나고 기계적,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내 몸과 그릇에 묻은 얼룩만 찾게 되는 무아無我에 있다. 후둑 고개를 들어 유리창을 바라본다.
산사로, 도심포교당으로 어려운 발걸음을 옮기는 초심자에게, 내게 허리를 굽히며 잘 먹었다며 인사하시는 노보살님들에게, 봉사자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유리창에 비치는지, 오염되어 버린 물을 한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싱크대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