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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자리 마른자리

승한스님
북한산 중흥사 총무


얼마 전 『스님의 자녀수업』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걸 보고 젊은 부부들이 자녀교육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많이 찾아온다. 그분들에게 나는 먼저 묻는다. 지금 시부모님이나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사느냐고. 열에 아홉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럼 아이를 몇이나 두었느냐고 묻는다. 거개가 한 명 이상이다. 그럼 나는 또 묻는다. 지금 아이들 버릇이 어떠냐고. 혹시나 여러분 자녀가 할아버지나 할머니,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한테서 냄새가 난다고 옆에도 가지 않지는 않는가 물어본다.
얼마 전, 나는 태국에 있는 유니세프 즉, 유엔아동기금 아태지역사무소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홍콩 등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17개 국가 만 9세부터 17세까지 청소년 1만73명을 대상으로 어른에 대한 존경심 실태를 측정하기 위해 실시한 면접조사 결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500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어른을 매우 존경한다’는 항목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불과 13퍼센트만 그렇다고 대답, 17개 아·태 국가 가운데 맨 꼴찌를 차지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왜 이런 참담한 결과가 나왔을까?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지 무려 1700년이 넘고, 유교가 들어온 지도 1500년이 넘었는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원인은 딱 한 가지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을 존경할 줄 모르는 것은 바로 젊은 엄마 아빠들 탓이다. 젊은 엄마 아빠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고 웃어른들을 존경할 줄 모르니까 아이들도 엄마 아빠를 따라 자연히 할아버지 할머니를 존경할 줄 모르고, 선생님을 존경할 줄 모르고, 윗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게 된 것이다.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세계의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부모와 윗사람을 존경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독교의 경우 「출애굽기」, 「에베소서」, 「마태복음」, 「로마서」 등 「성경」 곳곳에 부모와 윗사람을 공경하고 존경하라는 구절이 수도 없이 나온다.
「출애굽기」 2장 12절에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고, 「에베소서」 6장 2절부터 3절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째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다.
조선 500년 동안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유교도 마찬가지다. 「동몽선습」이라는 책이 있다. 조선 중종 때 박세무가 어린이들 예절교육서로 지은 책이다. 그 가운데 「장유유서」 편에 부모와 윗사람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세히 이르고 있다.
‘천천히 걸어서 어른의 뒤에 가는 것을 공손이라 하고, 빨리 걸어서 어른을 앞질러가는 것을 공손치 않는다고 이른다. 고로, 나이가 나보다 갑절이면 어버이로 섬기고, 10년이 많으면 형으로 섬기며, 5년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여 따라가도 된다.
어른은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는 어른을 공경한 연후에야 어린이를 업신여기고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서 사람의 도리가 바르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실제 사례를 들어 더욱 피부에 와 닿게 가르치고 있다. 초기경전인 『쌍윳다니까야』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길을 가시다 한 뼈 무덤을 보고 오체투지 절을 했다. 그것을 본 아난존자가 물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스승이시고 모든 중생의 어버이신데, 어찌하여 보잘 것 없는 해골더미에 절을 하시나이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네가 비록 나의 상수제자요 출가 한지도 오래되었지만 아직 이치를 알지 못하는구나. 이 한 무더기 뼈들은 전생에 나의 조상이었을 것이고, 또 나의 부모도 되었을 것이므로 내가 예배한 것이니라.”
부처님의 이 일화가 발전해 나중에 대승경전의 『부모은중경』이 되었고, 『부모은중경』은 ‘한량없이 크고 깊은’ 부모의 열 가지 은혜를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첫째, 어머니가 품에 품고 따뜻이 지켜주신 은혜.
둘째, 해산날에 즈음해 큰 고통을 이기신 은혜.
셋째, 자식을 낳고 모든 근심걱정을 잊으신 은혜.
넷째,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어서 먹이신 은혜.
다섯째,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신 은혜.
여섯째, 젖을 먹여서 기르신 은혜.
일곱째, 손발이 닳도록 깨끗이 씻어주신 은혜.
여덟째, 먼 길을 떠나갈 때 걱정하시는 은혜.
아홉째, 자식을 위해 나쁜 일까지 짓는 은혜.
열째,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주시는 은혜.


우리는 지금,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가? 혹시, 지금 늙으신 부모님은 뒷전이고 자식들에게만 너무 매몰되어 살고 있진 않은가?
아이들은 정말 정직한 존재다. 부모 행동을 ‘도장’ 찍듯, 그대로, 정확하게, 따라 배운다. 우리 사회에 청소년 범죄가 날로 늘어나고, 교육현장에서 ‘왕따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것도 따지고보면 우리 사회에 ‘연예인’은 넘쳐나도 ‘본받고 존경하고 싶은 어른’은 없기 때문이다. 젊은 엄마 아빠들이 먼저 늙으신 부모를 잘 봉양하며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묘목은 어렸을 때 잘 길러줘야 한다. 우리 아이들을 커다란 기둥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세 살 적부터 묘목을 잘 키워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그 과보는 고스란히 부모에게로 돌아온다. 오늘 저녁부터라도 당장멀리 계신 부모님께 문안전화를 드리며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도 자주 찾아뵙고, 옛 스승님도찾아뵙고, 양로원이나 노인복지센터 등으로 봉사활동도 자주 다니자. 그것이 우리 아이들을살리고, 행복하게 키우는 바른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