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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복淸福과 탁복濁福

승한 스님 북한산 중흥사 총무스님


새해다. 덕담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한다. 들어도 들어도 듣기 좋은 말, 들어도 들어도 또 듣고 싶은 말, ‘복 많이 받으세요.’ 대체 복이 무엇이기에 들어도 들어도 싫지 않고, 해도 해도 더 해주고 싶은가?
이처럼 좋은 복.
사전적 정의부터 보자.
복의 사전적 정의는 ‘아주 좋은 운수’ 또는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을 말한다. 비슷한 말로 ‘복조福祚’라고도 한다. ‘복조가리 없다’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그래서 그럴까? 복이라는 단어는 우리 생활에서 해학적으로, 아주 깊숙이, 재미있게 쓰인다.


‘복 들어온 날 문 닫는다.’
‘복 속에서 복을 모른다.’
‘복 없는 가시내는 봉놋방에 가 누워도 고자 곁에 가 눕는다.’
‘복 없는 정승은 계란에도 뼈가 있다.’
‘복 없는 놈이 가루 장사하려니까 골목 바람이 내분다.’
‘복은 쌍으로 안 오고 화는 홀로 안 온다.’
‘복이야 명이야 한다.’
‘복 있는 과부는 앉아도 요강 꼭지에 앉는다.’


이쯤 되면 복은 복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다. 운수도 좋아야 하지만, 자기 복을 자기가 창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복이고, 복의 속성屬性이다.
우리네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복과 복의 속성.
행복을 불러올 수도 있고, 불행을 불러올 수도 있는 복과 복의 속성.
손등과 손바닥 같은 그 복과 복의 속성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청복淸福과 탁복濁福이다.
청복은 글자 그대로 ‘맑고 깨끗한 복’이다. 탁복 역시 글자 그대로 ‘탁하고 투명하지 않은 복’이다.
그럼, 어떤 것이 청복이고 어떤 것이 탁복인가?
탁복은 우리가 흔히 복이라고 여기고 사는 것들이다. 돈 많고, 얼굴 예쁘고, 명예와 권력을 얻고, 지위가 높아지고, 자식들이 잘 되고, 오래 사는 것 등 우리 눈에 보이는 복들이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 복들은 언젠가 반드시 없어질 복들이다. 언젠가 반드시 사라지고 소멸해서 없어질 복들, 그래서 무상한 것들이다. 헌데도 우리들은 모두 기를 쓰고 이 탁복을 지향하며 산다.
청복은 정반대다. 한정 없이 행복해져버리고, 한가해져버리고, 열려버리는 마음, 그것이 바로 청복이다.
청복은 참으로 맑고 투명하다. 그래서 결코 우리들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으로는 맛볼 수 없는 복들이다. 오직, 마음으로, 느낌으로만 알 수 있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항상 즐겁고 기쁘고 유쾌한 마음, 그것이 청복이다.
진짜 행복은 이 청복에 있다.
다산 정약용은 이러한 복들을 뜨거울 열熱자 열복熱福과 맑을 청淸자 청복淸福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열복을 ‘높은 지위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며 떵떵거리고 사는 복’, ‘누구나 원하는 그야말로 화끈한 복’이라며, 세속에서 말하는 성공과 출세 같은 것이 그것이라고 명명했다. 
반면에 청복은 ‘욕심 없이 맑고 소박하게 한세상을 건너가는 것’, ‘사소하지만 청아한 삶의 일상’이라고 규정했다. ‘깊은 산 속,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곳에 살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푸른 계곡물 바라보며 발을 담그고, 예쁜 꽃과 나무들을 벗하며, 내 인생의 사소하지만 의미를 찾는 삶’, ‘비록 가진 것은 넉넉하지 않아도 만족할 줄 알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청복이라고 한 것이다.
조선 중종 때 사람 송익필宋翼弼은 ‘족부족足不足’이라는 시에서 청복의 삶을 다음과 같이 예찬했다.
군자는 어찌하여 늘 스스로 만족하고(군자여하장자족君子如何長自足)
소인은 어이해 언제나 부족한가.(소인여하장부족小人如何長不足)
부족해도 만족하면 언제나 여유롭고(부족지족매유여不足之足每有餘)
족한데도 부족타하면 언제나 부족하리.(족이부족상부족足而不足常不足)
넉넉함을 즐기면 족하지 않음 없고(낙재유여무부족樂在有餘無不足)
부족함을 근심하면 만족할 때가 없네.(우재부족하시족憂在不足何時足)
……
부족함과 족함이 모두 내게 달렸으니(부족여족개재기不足與足皆在己)
외물이 어이 족함과 부족함이 되리오.(외물언위족부족外物焉爲足不足)
불교에도 당연히 한 말씀 있다.
중국 남송南宋 때 유명한 선승禪僧인 대혜 종고大慧 宗. 선사는 『서장書狀』에서 ‘남을 속여서 하면 탁복濁福이라고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하면 청복淸福’이라고 했다.
실제로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에 그런 사건이 있었다. 
부처님 제자 중 수달타라는 갑부가 있었다. 빌 게이츠 같은 갑부였다.
평소 부처님 법문을 자주 듣던 수달타는 부처님으로부터 ‘물질에 연연치 말고 살라’는 말씀을 듣고 퍽 죄스러워했다. 가진 재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수달타는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말씀드렸다, ‘제가 갖고 있는 재물이 죄가 되고 잘못된 일이라면 없는 사람에게 모두 나눠 주겠다’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뭐라고 답하셨을까?
부처님께서는 그런 수달타 갑부에게 오히려 ‘재산을 더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수달타 갑부는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고, 그 돈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푼다는 생각 없이 베풀었기 때문이다. 수달타 갑부는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베풀었다’는 집착 없이 재산을 베풀었던 것이다. 이것이 청복이고, 진짜 행복이고,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삶이다.
그럼, 우리는 이 두 가지 복 중 어떤 복을 받고, 지어야 할까?
내 답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두 가지 다다. 청복도 받고 탁복도 받고, 청복도 짓고 탁복도 지으라는 것이다.
아무리 청복을 받고 짓고 싶어도, 탁복이 없으면 청복을 받고 지을 수 없다. 또 아무리 탁복을 받고 짓고 싶어도, 청복의 마음이 없으면 불행과 두려움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청복의 마음 없이 탁복만 받고 지으려다보면 감옥 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우리나라 재벌 가운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 재벌치고 전과前科 없고 감옥 갔다 오지 않은 사람 드물다. 
마음이 탁하면 탁복이다. 그러나 마음이 청하면 청복이다.
사람 몸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기왕에 사람 몸 받아 태어났으니 남부럽지 않게 잘 살면 얼마나 좋고, 높은 자리, 권세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이름을 얻으면 얼마나 복된 인생인가.
다만, 우리가 그 지위와 재산과 명예와 권력을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회향하면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에만 수달타 장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수달타 장자는 많다. 대표적인 수달타 장부가 세계 제일의 갑부 빌 게이츠다. 재산이 무려 1천억 달러가 넘는 게이츠는 자신의 세 자녀에게 각각 1천 달러씩만 주고, 나머지는 모두 기부했다. 2013년 포브스는 빌 게이츠의 현재 기부액이 280억 달러(29조 6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저 먼 날,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털어 ‘기원정사’라는 절을 지어 부처님께 보시했던 수달타 장자처럼, 빌 게이츠처럼, 올 한 해 모든 분들이 청복도 많이 받고 탁복도 많이 받아 더욱 더 행복한 삶을 사시길 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