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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불자가 되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전국 선원에서는 성도재일을 맞이하여, 7일 동안 용맹정진勇猛精進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결제대중結制大衆들은 왜 용맹정진을 하고 있을까요?
부처님은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시기 전, 전정각산에서 내려와 니련선하 강가, 지금의 부다가야 보리수하 금강좌에서 길상초를 한 줌 얻어 깔고 용맹정진을 하셨던 시기입니다. 부처님이 하신 용맹정진을 우리나라 선원의 스님들도 선정삼매禪定三昧와 반야지혜般若智慧를 닦기 위하여 수행하는 것입니다.


선방에서 용맹정진으로 이삼일이 지나다보면 뒤로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장군죽비를 들고 있는 스님이 넘어졌던 스님 앞에 서 있습니다. 분명 넘어지는 소리는 들었지만, 본인이 넘어진 것은 잘 모릅니다. 두 어깨를 내어 주고 장군죽비로 3대씩 경책을 받게 되면, ‘고맙습니다. 감사 합니다’ 합장인사를 해야 합니다. 자신이 넘어진 줄은 모르고 넘어지는 소리는 들렸지만, 장군죽비 든 스님이 넘어진 스님 앞에 서 있는 것을 목격한 청소년기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사람 인人 자 셋이면 무리 중衆 자입니다. 정원庭園에서 키우는 나무들은 곧게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시림의 나무들은 곧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탁마 하며 성장하고 있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상의相依 상관성相關性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 그런 공동체의 모습이었으면 합니다.


『사제론四諦論』에 ‘중생들이 삼악도三惡道에서 받는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가를 알게 되면 자연히 악한 일을 꺼리고 두려워하는 생각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악도에서 받는 고통에 대해서 부정不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輪廻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삼악도의 고통과 괴로움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런 업은 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 가르침을 믿고 의지하며 행하는 것이 바라밀다의 수행법입니다.


사자후 보살이 부처님께 여쭙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오음五陰(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 공空하여 있지 않다면, 누가 가르침을 받고 도를 닦겠나이까?”
“선남자여, 온갖 중생이 모두 생각하는 마음, 지혜의 마음, 처음 내는 마음, 정진하는 마음, 믿는 마음, 선정의 마음이 있나니 이런 법이 비록 잠깐 잠깐 생멸하더라도 오히려 비슷하게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도를 닦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등불이 비록 잠깐 잠깐 멸하지마는, 광명이 있어 어둠을 깨뜨리듯이 생각하는 마음 등等의 여러 가지 법도 그와 같으니라.


중생들의 먹는 것이 비록 잠깐 잠깐 멸하지마는, 굶주린 이로 하여금 배가 부르게 하며, 좋은 약도 잠깐 잠깐 멸하지마는 능히 병을 다스리며, 해와 달의 광명도 잠깐 잠깐 멸하지마는, 초목들로 하여금 자라게 하느니라. 그대가 말하기를 잠깐 잠깐 멸하는데 어떻게 자라게 하겠는가 하지마는, 마음이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자란다고 이름 하느니라.


선남자여, 사람이 글을 읽을 적에, 읽는 구절이나 글자를 한꺼번에 읽는 것이 아니어서, 앞에 것이 중간에 이르지 못하고, 중간 것이 뒤에 이르지 못하며, 사람과 글자와 마음이 모두 잠깐 잠깐 멸하지마는 오래오래 닦으므로 통달하게 되느니라.”
- 『열반경涅槃經』 -


요약하면, 은장이 처음 견습공일 때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비록 잠깐씩 기술을 습득하고 앞에
것이 뒤에 이르지 못하지만, 오래오래 익힌 연고로 인간문화재인 세공의 은장이 기술을 얻게
되어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이라 하듯이, 글을 읽어 외우는 것도 그와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마치 씨앗이 ‘네가 싹을 내라’고 땅이 가르치지 않지만, 싹이 스스로 나는 것이며, 꽃도 네가
열매를 맺으라고 말하지 않지만 법의 성품이 열매를 저절로 생기게 하듯이 중생의 도道를 닦음도 이와 같다고 하십니다.


막 태어난 송아지가 태어나면서 어미 소의 젖을 찾는데, 젖을 찾는 지혜를 누가 가르친 적이
없지만 젖을 먹듯이……. 중생의 도를 닦음도 이와 같아서 처음에는 증장하지 못하지마는, 오래오래 닦으므로 모든 번뇌를 능히 깨뜨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과일을 얻기 위하여 과일의 열매를 종자로 심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는 수고로움을
주었으나 과일을 얻기도 전에 열매에서 수확한 종자까지 없어졌지만, 그래도 종자로 인하여 과일을 얻게 되었듯이, 수다원의 오음五陰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재산이 많은 노인이 있었으나 외아들은 먼저 죽고 손자는 다른 지방에서 살다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기별을 받고 와서 그 재산을 상속받게 됩니다. 비록 재산은 자신이 모은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재산을 차지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이 없는 것은, 그 내림이 같은 연고이니, 수다원의 오음(색·수·상·행·식)도 그와 같다 하시는 것입니다.


『화엄경華嚴經』에서 문수보살이 선재동자에게 이릅니다.


“그대는 이미 깨달음의 보리심을 내었고, 그대는 선지식을 가까이 해서 보살의 행을 물으며
보살도 실천을 하고자 한다. 그대는 선지식을 친히 가까이 하며 공양함은 물론 온갖 지혜를
구족하는 인연을 맺었느니라.
선남자여, 선지식을 친히 가까이 하며 공양함은 온갖 지혜를 구족하는 첫 번째 인연이니라.
그러므로 이 일에 고달픈 생각을 내지 말지니라.”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기 위해 구법행을 떠나고자 할 때, 이렇게 칭찬하면서도 고달픈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은 고단할 수는 있지만 고달픈 삶은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으면 그것은 언제나 물러나지 않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자리에 친히 가까이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을 열 번만 일념으로 찾아도 극락정토에 간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미타부처님을 열 번만 부르면 극락 간다고 하셨는데, 사실 일념으로 열 번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목숨을 거두면서 아미타부처님을 열 번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평소에 일념으로 한 번씩 한 번씩 부르는 염불이 열 번, 스무 번, 백 번, 천 번이 되는 염불삼매법이 있습니다.


불보살님을 생각하며 염불하는 삼매는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수행이란 깨달음의 완성이다’ 하였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가치를 진정한 삶의 가치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다’ 하는 것입니다.
참 수행을 하는 것은 성불하기 위함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불종자의 끈을 놓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45년 동안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법을 대물림으로 상속해서 지금까지도 보고, 듣고, 느끼고, 실천하게 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덕목으로 삼아야 합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