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1.
불자들은 재가이든 출가이든 부처님께 불공도 드리고 나름대로 수행을 한다. 이번 호에서는 이 문제를 불교 교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의 독서 경험으로는 『대승기신론』이라는 책 속에서 이런 문제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하에서는 이것을 요약해서 소개하기로 한다.
『대승기신론』의 「해석분」끄트머리 부분에 보면, 중생을 ‘부정취不定聚’와 ‘정정취正定聚’ 두 부류로 나누고 있다. 부정취不定聚와 정정취正定聚라는 용어는 『아함경』, 『구사론』, 『유가사지론』 등에도 보이는데, ‘정정취’란 ‘끝내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코스에 제대로 들어간 무리’라는 뜻이다. 반면에 ‘부정취’란 아직 ‘3악도’의 무리로 들어갈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무리이다.
‘부정취’ 중생들은 업과 과보를 믿고 10악惡을 참회하며 10선善을 닦고 불공드리고 그렇게
하기를 1만 겁이 지나면, 여러 인연에 따라 출가하여 ‘정정취’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정정취’에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정취’에 들어가지 못한 불자는 재가이건 출가이건을 막론하고 현재의 형편에 맞게 10악을 참회하며 10선을 닦아야 한다. 특히 재가의 경우는 삼보에 공양하고, 끝내는 발심하여 ‘출가 불자’ 대중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재가의 몸으로 정정취에 드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재가 불자는 형편에 맞도록 열심히 노력하여 언젠가는 ‘엄격한 의미의 출가’ 대중에 들어야 한다. 재가 불자들이 들으면 서운할지 모르지만, 『대승기신론』에서는 그렇게 쓰여 있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출가중심의 종교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다. 출가를 했더라고 ‘정정취’에 들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기나 긴 생명 현상 속에서 쌓아온 업業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동시에 일률적으로 ‘정정취’에 들 수는 없다. 저마다의 속도가 있고, 코스가 있고, 계기가 있다. 때문에 인연에 맞게 수행을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수행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믿음이 쌓여서, 다음에는 진여眞如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쌓여서, 그리하여 마침내는 진여를 체험해야 한다. 소위 신信⇒해解⇒행行⇒증證을 단계적으로 거쳐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에는 3아승기의 겁이라는 긴 세월이 걸린다고 하지만,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도 증명하듯이 선재동자는 단 한 번의 일생에 그 과정을 다 거쳐 성불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빠를 수도 있다. 문제는 ‘제대로 된 방법’을 사용하는가? 또 ‘꾸준한 정진’이 있느냐? 그것이 관건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제대로 된 방법인가? 『대승기신론』은 말한다. ‘바른 믿음’과 ‘바른 실천’이
그것이다. 그 책에 의하면 ‘바른 믿음’이란 진여眞如를 믿고, 부처님을 믿고, 불경의 말씀을
믿고, 승단을 믿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여’를 믿는 것이다. 그리고 ‘바른 실천’이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지관止觀을 실천하는 것이다.
‘바른 믿음’이 없는 실천은 세속의 사회봉사와 다를 바 없다. 사회봉사와 대승불교의 보살행은 다른 점이 많다. 물론 불교가 아니라고 해서 가치가 없지는 않다. 불교 말고도 가치 있는 것이 세상에는 많다. 그리스도교도 그렇고 이슬람교도 그렇고 나아가 유네스코 정신에 입각한 인도적 차원의 봉사활동 등도 그런 류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일을 했다고 해서 성불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성불을 목표로 하는 가르침이다. 성불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 성불하겠다는 발심이 있어야 한다. 이제 『대승기신론』에 입각하여 발심의 단계와 각 단계별 형태를 보기로 한다. 여기에는 세 단계가 있다.
3.
첫째는 믿음이 쌓여서 나오는 발심이다.
이 단계는 아직 ‘정정취’에 들지 못한 사람들이 거쳐야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업과
과보를 믿고 10선善을 일으키며,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며, 위없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여, 여러 부처님을 만나 직접 받들어 공양하고 신심을 내어 수행한다. 소위 ‘재가 불자’가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이렇게 하기를 1만 겁劫 동안 꾸준히 하면 마침내 출가하여 ‘출가 불자’가
되는데, 이를 두고 정정취正定聚에 들어간다. 혹은 여래종如來種 속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경우에 만약 어떤 중생은 선근이 적어서 아득히 먼 옛날부터 번뇌가 매우 두터우면, 비록 부처님을 만나 공양하더라도 인천人天의 종자를 일으키고 혹은 이승二乘의 종자를 일으킨다. 설사 대승을 구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근기가 안정되지 못해서 어떤 경우는 잘 나아가고 어떤 경우는 물러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되 아직 1만 겁劫이 안 지났어도 그 중간에 인연을 만나 발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부처님의 겉모습을 보고 발심하기도 하며, 혹은 여러 스님에게 공양하는 것을 계기로 발심하기도 하며, 혹은 2승二乘의 가르침에 의하여 발심을 하기도 하며, 혹은 다른 사람에게 배워서 발심하기도 한다. 이런 발심들은 모두 확고한 것이 아니어서 나쁜 인연을 만나면 경우에 따라서는 믿음이 물러나거나 사라져 이승二乘의 경지에 떨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제대로 발심하게 되면 세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는 곧은 마음[直心]이 드러나는데, 이는 진여법을 제대로 생각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속 깊은 마음[深心]이 드러나는데, 이는 일체의 모든 선행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셋째는 대비심大悲心이 드러나는데, 이는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발심이 제대로 되었는가는 이 세 가지 점을 스스로 점검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이해하고 실천을 통해서 나오는 발심이다.
이 단계는 ‘정정취’에 들어간 불자의 경우이다. 법성法性을 믿어서 법성의 본바탕에는 일체의 간탐.貪이 없는 줄을 이해하기 때문에 법성에 수순隨順하여 보시 바라밀을 실천하며, 법성의 본바탕은 물들어 더렵혀짐이 없어 5욕慾의 허물을 여읜 줄 이해하기 때문에 그에 수순하여 지계 바라밀을 실천하며, 법성의 본바탕은 고苦가 없어 성내고 괴로워함을 여읜 줄 이해하기 때문에 그에 수순하여 인욕바라밀을 실천하며, 법성의 본바탕은 몸과 마음의 형상이
없어 게으름을 여읜 줄 이해하기 때문에 그에 수순하여 정진바라밀을 실천하며, 법성의 본바탕은 항상 안정되어 그 본바탕에 어지러움이 없는 줄 이해하기 때문에 그에 수순하여 선정바라밀을 실천하며, 법성의 본바탕은 밝아서 무명을 여읜 줄 이해하기 때문에 그에 수순하여 반야바라밀을 실천한다.
셋째는 도를 체험해서 나오는 발심이다.
이때의 발심은 초지인 ‘정심지淨心地’로부터 보살 ‘구경지究竟地’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별로 일어나며 그에 따르는 체험의 ‘경계’가 나타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진여眞如를 체험한다. 그런데 전식轉識에 의지했기 때문에 ‘경계’라고 말했지만 이 단계를 체험한 자에게는 ‘경계’가 없고 오직 진여의 지혜뿐이므로 법신法身 그 자체가 된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소위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방편을 통해서 불가사의함을 보이지만, 실로 이 단계에 있는 ‘출가 불자’ 즉 ‘출가 보살’은 종성種性과 근根이 동등하고 발심도 동등하며 증득한 것도 동일하다. 왜냐하면 모든 보살이 다 3아승기겁을 거쳐 수행했기 때문이다. 단지 중생이 사는 세계가 같지 않고 그들이 보고 듣는 것과, 저마다의 능력, 욕구, 성질 등이 달라서 수행의 내용도 차별이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일 뿐이다.
이런 단계를 거친 수행자는 모든 공덕이 다 완성되어 색구경처色究竟處에서 모든 세간 중 가장 높고 큰 몸을 보여준다. 이른바 일념一念이 끊어지지 않는 지혜로써 무명이 단번에 없어지는 것을 일체종지一切種智라고 하는데, 이런 지혜를 터득한 수행자는 불가사의한 업이 있어 시방에 몸을 나타내어 중생을 이롭게 한다.
ananda@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