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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와 선사들의 논쟁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1.
선어록을 읽다보면 많은 선사들이 교학을 전공하는 강사들을 ‘비판’하는 사례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어떤 경우는 비판을 넘어 ‘비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눈에 띈다. 그러나 강사들의 선·교 관계에 대한 입장이 ‘비판’이나 ‘반목’보다는 ‘화회(和會 회통)’ 쪽에서 논의한다. 이런 경향을 우리는 조선 후기의 불교 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사례의 한 인물이 석전 박한영 대강백이다. 석전 스님은 일제시대 서울 개운사에 고등강원을 개설하여 많은 학인들을 배출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로 해방 이후 남한의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이 운허 강백이다. 석전 스님은 고등강원에 학생들에게 교敎로는 『화엄경』을, 선禪으로 『선문염송』을 최고의 과목으로 설정하여 겸학兼學을 시켰다.
아무튼 이런 석전 스님에게는 『석림수필石林隨筆』이라는 문집이 있는데, 이는 훗날 『석전문초石顚文.』라는 서명으로 문인들의 손에 의해 간행된다. 『석림수필』에는 총 21개의 수필이 수록되었는데, 선사와 강사의 ‘화회和會’와 관련하여 필자가 주목하는 수필로서 「개구개증하애원각皆具皆證何碍圓覺」이 있다.
이 수필의 이야기 소재에는 전고典故가 있는데, 대혜 종고(大慧宗. 1089∼1163)의 『서장書狀』에 실린 편지 「답손지현答孫知縣」이 그것이다. 이 편지는 대혜 종고 선사가 소흥紹興 28년(1158) 경산사徑山寺에 주석하면서 당시의 절강성 항주부 여항현餘杭縣의 현감에게 보낸 편지다.


2.
이 편지에서 대혜는 경전의 본문을 간삭(刊削 제멋대로 빼거나 보태는 행위)하는 손孫 지현知縣의 잘못을 반박하고 있다. 이 반박 과정에서 대혜는 청량 징관과 규봉 종밀의 사례를 들어, 이 두 대가들도 경전 본문의 자구를 임의로 간삭刊削하지 않았던 사례를 들어 현감을 나무라고 있다. 즉 옛 대가들도 혹 경문經文에 의심나는 점이 있으면, 주석서에서 그 의심을 드러내어 논의를 할 뿐 결코 제멋대로 빼거나 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석전은 대혜가 문증의 사례로 든 『원각경』 본문에 대한 규봉의 ‘의심’과 그
‘의심’을 반박하는 늑담 극문(.潭克文 1025∼1102) 선사의 설을 인용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철학에 입각하여, 이 둘(=종밀과 늑담)의 입장은 물론 나아가 대혜의 처신에 대해서도 ‘다른 입장으로 논평(代曰)’을 제시한다.
『원각경』 ‘경문의 번역 오류(譯經訛)’를 제기한 종밀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원각경』 「미륵장」에서 부처님은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선남자여 일체 중생들이 모두 원각을 깨닫는다.(善男子야 一切衆生이 皆證圓覺하노니)” 그런데 규봉은 『원각경』의 여러 주석들 속에서 번역자가 범본을 잘못 읽어 ‘구具’ 자로 번역해야 할 것을 ‘증證’ 자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제기한다. 종밀의 의도는 ‘모든 중생이 원각을 간직하고 있다’함은 가능하나, ‘모든 중생이 원각을 깨닫는다’함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종밀의 견해에 대해 필자는 이 대목의 장항長行에 상응하여 세존께서 몸소 붙인 게송偈頌을 근거로, 종밀의 입장을 두둔한 바 있다. 아무튼 종밀은 ‘의심’만 했지, 간삭刊削하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의 견해를 주석을 통해서 사적인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다.
대혜는 종밀이 이렇게 경문을 고치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아울러 대혜는 늑담 극문이 찬술했다고 하는 「개증론皆證論」의 내용도 소개한다. 늑담 극문의 입장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즉, 모든 중생이 원각을 ‘가지고만(具)’ 있고 ‘증득하지(證)’ 못한다면, 축생을 비롯하여 아귀와 나아가 범부들은 영원히 깨달을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늑담 극문의 반박은 종밀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원각경』 「미륵장」은 5성性의 차별을 논하는 것이 핵심 주제이기 때문이다.


3.
그러면 석전 강백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다른 입장으로 논평(代曰)’했는가? 석전 강백은 두 측면에서 자신의 입장을 전개하고 있다. 하나는 ‘향상종체向上宗體’의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성언량聖言量’의 입장이다. 전자는 선禪의 논리이고, 후자는 교敎의 논리이다.
먼저, ‘향상종체向上宗體’의 입장을 보자.
‘향상종체向上宗體’란 향상일규向上一竅를 논하는 선문禪門의 입장이다. 선문에서는 어떤 주제를 논의할 때에 두 측면에서 접근한다. 그 중의 하나는 ‘파정(把定 상대를 전면적으로 비판하여 부정하는 행위)’이고 또 하나는 ‘방행(放行 상대의 입장을 완전하게 인정하는 행위)’이다. ‘파정把定-방행放行’의 두 짝으로 화두를 강설하는 것은 선가의 오랜 전통이고, 이 전통은 백파 긍선에도 전해졌고, 석전도 역시 이 집안사람이라 이 전통을 백분 활용하고 있다. 석전이 보기에 ‘파정把定’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누구도 이 ‘원각’의 경지는 언어나 사유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행放行’에서 보면 모든 중생이 이미 ‘원각’을 증證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성언량聖言量’의 입장을 보자.
‘성언량聖言量’이란 ‘성인의 말씀’도 논증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현량現量’과 ‘비량比量’과 함께
‘성언량聖言量’을 논증의 근거로 삼는 것은 인도에서부터 중국에 이르는 불교의 전통적인 논증 방법이다. 석전은 ‘성언량聖言量’을 논증의 근거로 채택하여, 『화엄경』 「여래출현품」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언만”을 논증의 근거로 삼아 ‘구具’의 입장을 옹호하기도 하며, 한편으로 『열반경』의 “범유심자凡有心者는 개당득성아뇩보리皆當得成阿.菩提하니라”를 논증의 근거로 삼아 ‘증證’의 입장을 옹호하기도 한다. 이런 양 방면의 입장에서 규봉과 늑담의 입장을 모두 비판한다. 나아가 이치가 이러한데, 대혜는 늑담의 입장만을 옹호하니 이 또한 잘못이 적지 않다고 비판한다.
이렇게 보면 석전 강백은 교敎의 입장에서는 ‘성언량聖言量’을 논거로 논증을 해 나아가고, 선禪의 입장에서는 ‘향상종체向上宗體’의 논리로 사량분별의 자취를 지워간다. 이것이 바로 조선 중기 이래로 이 지역에 정착한 선교겸수禪敎兼修의 가풍이다. 장기판으로 비유하여 말하자면 ‘선교禪敎 양수겹장’인 셈이다.


4.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입장에 서 있는 석전 강백으로서는 석전 당시 일부 선승들이 불조를 마구잡이로 욕하는 잘못된 폐단을 염려한다. 당시의 이런 세태를 ‘광선狂禪’이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었다. 사문으로서의 율의를 무시하고, 또 그것을 무반성적으로 흉내 내는 풍조에 대한 석전 나름의 염려가 있었던 것이다. 석전은 당시의 이런 폐단을 ‘매리지구폐(罵.之口弊 욕설의 폐단)’라고 지적한다.
강사들을 마구잡이로 비난하는 당시의 세태에 대한 석전의 염려와, 선교겸수禪敎兼修를 주장하는 종밀의 입장을 옹호하려는 석전의 충정은 『석림수필』의 여러 곳에서 보인다. 그 대표적인 수필이 「석실본출세하택입지명정石室本出世荷澤立地明正」이다.
조선 후기에 형성되어 석전에게로 전승되는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전통은 비록 미미하지만 현대에도 계속되었다. 이런 전통에 서 있는 강사들은 교종 텍스트의 꽃인 『화엄청량소초』와 선종 텍스트의 꽃인 『염송』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도량이 봉선사 능엄학림이고, 그곳의 핵심 인물이 위에서도 언급한 월운 강백이다. 그 도량에서 월운 강백은 일찍이 『화엄청량소』를 비롯한 전통 강원의 이력과목에서 다루던 각종 경소에 관한 사기私記와 과목科目을 정리했고, 또 『기신론필삭기』, 『금강경간정기』, 『원각경규봉소』, 『능엄경계환해』 등을 강독 번역했다. 이와 더불어 선종의 핵심 교재인 『조당집』(2책), 『경덕전등록』(2책), 『선문염송·설화』(10책)를 번역·출간했다.
이렇게 본다면 전통적인 간화선의 입장과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산중이 아닌 저자거리에서 수행을 강조한 점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E-mail : ananda@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