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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화엄경이 출현하게 된 ‘먼 인연’-「여래현상품 제2」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지난 1월호에 『화엄경』 총39품을 분석하는 옛 어른들의 전통 중, ‘신-해-행-증’으로 나누는 방법을 소개했다. 그 중에서 중생들에게 믿음을 내게 하려고 설하신 여섯 개 품品이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이 여섯 개 품도 옛 어른들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서 독서했다.
『화엄경』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원체 방대하기 때문에, 분석적으로 독서해야 그나마 갈피를 잡을 수 있다. 이런 독서방법을 ‘과목 나누기’라고 한다. 총 6품을 셋으로도 나누는데, (1)첫째는 『화엄경』이 출현하게 된 핵심 인연을 설하는 부분이고, (2)둘째는 보조적 인연을 설하는 부분이며, (3)셋째는 중생들에게 믿음을 내도록 설법하시는 본론 부분이다.
1월호에서는 「세주묘엄품」을 소개하여, (1)의 『화엄경』이 출현한 핵심 인연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이번 2월호에서는 (2)의 보조적 인연을 설하는 부분 중에서, 비교적 거리가 먼 보조 인연에 해당하는 「여래현상품」을 요점적으로 소개하려 한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의 하나가 ‘인연법’이라는 말은 독자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결과는 ‘인’과 ‘연’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어떻게 인연을 짓느냐에 따라 결과가 생기는 것이지, 어떤 신神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란다. 『화엄경』을 설하게 된 ‘인’에 해당하는 품品이 「세주묘엄품」이다. 한편, 『화엄경』을 설하게 된 ‘연’에 해당하는 품品이 둘인데, 하나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연緣’을 설하는 「여래현상품 제2」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연’을 설하는 「보현삼매품 제3」이다.


2.
이번 호의 제목에 ‘먼 인연’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가? 불교의 핵심이 인연법이라는 말은 위에서도 했다. 독자들도 잘 아시다시피, 핵심적인 원인을 ‘인’이라 하고, 보조적 원인을 ‘연’이라 한다. 이 중에서 보조적 원인을 옛 어른들은 ‘방편적 인연’이라 이름 붙였다. 여기서 말하는 옛 어른이란 당나라 시대의 고승, ‘청량 징관’ 국사이다.
방편이 되는 ‘연緣’도 그 강도에 따라 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상대적으로 그 강도가 ‘먼 방편’에 해당하는 「여래현상품 제2」가 있고,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좀 ‘가까운 방편’에 해당하는 「보현삼매품 제3」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여래현상품 제2」에서 여러 질문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그 질문이 원인이 되어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화엄경』이 설해졌다고 분석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보현삼매품 제3」에서는 ‘삼매의 힘’, 즉 ‘명상의 파워’ 때문에 『화엄경』이 설해졌다고 분석하는 것이다.
질문이 있어서 답변이 있는 것이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삼매’ 즉 명상의 힘이 보태져야 한다는 발상이다. 이런 발상은 불교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알아두어야 한다.
대승이나 소승의 어느 경전을 막론하고, 불경은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질문-답변’의 맥락을 잘 이해하고 독서해야 한다. 말에는 소위 ‘맥락’이라는 게 있기 마련인데, 그걸 잡지 못하고 말만 붙들면 본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말에는 진실이 담겨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선정禪定’의 힘이 받쳐주어야 한다. 그만큼 불교에서는 명상이 중요하다. 승려나 신도를 막론하고, 신행생활에서 명상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교리 배경이 있다.


3.
『화엄경』이 설해지게 된 ‘먼 인연’에 해당하는 「여래현상품 제2」의 구조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첫째 수많은 대중들이 나와 설법을 청하는 대목, (2)둘째 광명을 놓아 연연 있는 자들을 불러 모으는 대목, (3)셋째 설법 들을 대중들이 모여드는 대목, (4)넷째 부처님께서 신비한 상서를 내어 설법하실 뜻을 드러내는 대목, (5)다섯째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하고 찬탄하는 대목, (6)여섯째 이상과 같은 일이 무수한 세계에서 하염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마무리하는 대목, 이렇게 모두 여섯 대목으로 「여래현상품 제2」가 짜여 있다.
이상의 여섯 대목 중에서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곳은 (1)의 첫째 대목이다. 이곳에서 질문이 모두 40개가 쏟아진다. 독서를 위해서는 이 질문을 잘 기억해두고, 그 질문의 대답이 『화엄경』 어느 대목에서 나오는지 메모해가면서 독서해야 한다.
40개의 질문은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1)첫째는 궁금한 점을 ‘바로 청하는 대목’으로 총 20개의 질문이다. (2)둘째는 궁금한 점을 ‘사례를 들어 청하는 대목’으로 이것도 역시 20개이다. 좀 더 세분하면, (1)의 첫째 20개 질문 중에서 ①앞의 10개는 부처님에게 구비되어 있는 ‘원만한 공덕과 그 작용’을 여쭙는 대목이고, ②뒤의 10개 질문은 부처님의 ‘뛰어난 몸매’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여쭙는 대목이다.
한편 (2)의 20개 질문도 둘로 나뉘는데, ③앞의 10개 질문은 부처님에게 갖추어진 ‘두루하신 변화작용’을, ④뒤의 10개의 질문은 ‘깊고 넓은 인행因行의 공덕’을 각각 여쭈는 대목이다.
‘인행因行’의 단어 뜻을 좀 더 살펴보자. 번역하면 ‘원인이 되는 수행’인데, 이 용어는 ‘결과로서의 깨달음(果覺)’과 서로 짝이 된다. ‘수행-깨달음’의 관계를 ‘원인-결과’의 관계로 설명하는 불교의 전형적 논리이다.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면, 이 대목을 잘 읽고 기억해서 실천해야 한다. 간단하게 결론만 뽑아보면, 세상만사는 서로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로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통찰하고, 그렇게 통찰하면서 보현보살과 같은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면, 누구나 끝내는 부처가 된다는 메시지이다. 이것을 화엄교학에서는 줄여서 이렇게 말한다. “법계를 깨달아가며, 동시에 보현행을 실천한다.” 화엄 철학의 핵심이다.
그러면 질문이 이렇게 10개씩 모두 ①②③④로 내용이 구분되는데, 이에 대한 대답이 『화엄경』의 어느 품品에 나오는지 간단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①에 대한 대답은 「여래현상품」에 나온다. ②에 대한 대답은 「이세간품」과 「여래출현품」 등에 나온다. ③에 대한 대답은 여러 품에 걸쳐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온 법계에 세계世界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는 「화장세계품」, 「세계성취품」, 「비로자나품」, 「여래현상품」, 「보현삼매품」 등에서 말씀해 주신다. 또 ‘중생들의 세계가 얼마나 많은 지’에 대해서는 「광명각품」과 「십인품」 등에서 설해주신다. 이렇게 점점 나아가 열 번째의 ‘부처님의 나이는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래수량품」과 「보살주처품」에서 대답하신다.


4.
④에서 나온 질문은 매우 광범위하게 『화엄경』 여러 품에 걸쳐 조목별로 일목요연하게 대답해주신다. 수행이라는 원인이 있어야 깨달음이라는 결과가 있다는 인연법을 중시여기는 불교의 특징이 여기에도 잘 드러난다. 매우 중요한 대목이니, 질문의 내용 10개를 조목별로 나열해 보기로 한다. 당시 모여든 여러 ‘보살’과 여러 ‘세간 맡은 이(世主)’들이 다음과 같이 궁금해 한다.
“①온갖 보살의 서원바다(일체보살서원해一切菩薩誓願海)와, ②온갖 보살의 발심하여 나아가는 바다(일체보살발취해一切菩薩發趣海)와, ③온갖 보살의 도를 돕는 바다(일체보살조도해一切菩薩助道海)와, ④온갖 보살의 운전하는 바다(일체보살승해一切菩薩乘海)와, ⑤온갖 보살의 수행하는 바다(일체보살행해一切菩薩行海)와, ⑥온갖 보살의 벗어나는 바다(일체보살출리해一切菩薩出離海)와, ⑦온갖 보살의 신통바다(일체보살신통해一切菩薩神通海)와, ⑧온갖 보살의 바라밀바다(일체보살바라밀해一切菩薩波羅蜜海)와, ⑨온갖 보살의 지위바다(일체보살지해一切菩薩地海)와, ⑩온갖 보살의 지혜바다(일체보살지해一切菩薩智海)를 부처님 세존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신다면…….”
①②의 질문에 대해서는 10신信의 법문으로 대답하시고,  ③④의 질문에 대해서는 10주住의 법문으로 대답하시고, ⑤의 질문에 대해서는 10행行의 법문으로 대답하시고, ⑥의 질문에 대해서는 10회향廻向의 법문으로 대답하시고, ⑦⑧⑨의 질문에 대해서는 10지地의 법문으로 대답하시고, 끝으로 ⑩의 질문에 대해서는 제7회 <보광명전 설법>에서 총 11품에 걸쳐 대답해주신다.
이상과 같은 점으로 볼 때에, 『화엄경』을 설하시게 된 ‘먼 인연’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여래현상품」은 매우 중요하다. 『화엄경』이 아무리 방대하고 복잡하고 또 그런 만큼 교리가 심오하지만, 과목을 쪼개어 분석적으로 독서하면, 내용 이해가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왕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면, 출가 스님이나 재가 신도나 『화엄경』의 내용은 제대로 알고 일생을 마치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