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오늘은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성도재일成道齋日입니다.
세속 나이 35세 때입니다. 29세에 2월 8일 출가하신 후 6년만의 일입니다.
불기佛紀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기점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부처님은 2568년 전 음력 2월 보름에 열반하셨습니다. 80세를 계셨으니까 2648년 전, 4월 초파일에 가비라국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셨으며, 29세에 음력 2월 8일 출가하셨고, 6년 후 12월 8일에 성도하셨으며, 45년간 전법하신 후 구시나가라 싸라쌍수 나무 아래에서 음력 2월 보름날 입멸에 드셨습니다.
불교의 4대 명절은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날, 출가하신 날, 성도하신 날, 열반에 드신 날입니다. 이렇게 4대 명일을 특별히 봉축하고 있는데, 그 4대 명일 중에서도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은 불자들이 절에 제일 많이 오십니다.
그것은 아마도 부처님께서 과거 다겁생多劫生에 출가자로, 수행자로, 보살로 사시다가 그 열매를 도솔천에서 4월 초파일 룸비니동산에 씨앗으로 심어진 날이기 때문에 특별히 기념하기 위해서 봉축하는 날일 것입니다.
2648년 전 룸비니동산에 심어진 불종자가 성숙하는 과정이 29세요, 출가 이후 6년 동안 납자衲子의 길을 걸으시며 깨달음을 이루셨을 때가 35세에 활짝 핀 연꽃을 피웠을 때이고, 45년 동안 전법을 하시다가 구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실 때 열매의 결실은 우리불자들에게 청정법신의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청정법신淸淨法身과 원만보신圓滿報身과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을 드리우니 아니 계신 곳 없으신 부처님이신데, 초파일을 제외하고 출가재일과 성도재일, 열반재일에는 불자들이 사찰을 많이 찾지 않는 것은 깊이 반성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한 영향도 있겠습니다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스님은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나라’ 하셨듯이 성도재일 법회를 시작으로 출가재일과 열반재일 법회도 부처님오신날처럼 많은 불자들이 사찰을 찾아 불교의 4대 명일을 봉축해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호명 보살로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면서 사바세계의 인간 세상에 오실 때 발원하시기를 “내가 중생들을 이끌어 완성시키지 아니하면 누가 있어 그들을 이끌어 완성시키겠는가. 내가 중생들을 조복하지 아니하면 누가 그들을 조복하겠는가. 내가 중생들을 교화하지 아니하면 누가 있어 그들을 교화하겠는가. 내가 중생들을 깨닫게 하지 아니하면 누가 있어 깨달음을 얻게 할 것인가. 내가 중생들을 청정케 하지 아니하면 누가 그들을 맑고 깨끗하게 할 것인가. 이것이 내 의무요 내가 응당히 해야 할 일이다.”라 하셨습니다.
『열반경涅槃經』에 “만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具足하면 세상으로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 법에 더럽혀지지 아니하리니 우담바라 꽃과 같으리라.”하셨는데,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겠습니까?
“첫째는 신심信心이 있어야 됩니다. 두 번째는 계율戒律을 지켜야 되고, 세 번째는 선지식善知識을 친히 가까이 해야 하며, 네 번째는 안으로 잘 생각함이요, 다섯 번째는 진지한 정진精進을 구족해야 합니다. 또 여섯 번째는 바른 생각을 구족함이요, 일곱 번째는 지혜를 구족함이며, 여덟 번째는 바른 말을 구족함이요, 아홉 번째는 바른 법을 좋아함이며, 열 번째는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고, 더럽혀지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면 특히 정치권에서 이렇게 살아가주면 국가와 민족에게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보살이 열 가지 무진장無盡藏을 얻고 나면 복덕이 구족하게 되고 지혜가 청정해져서 설법을 함에 있어 중생들의 근기를 잘 알게 된다 하셨습니다.
그 열 가지는 무엇이겠습니까? 『화엄경華嚴經』 「명법품明法品」에 “이른바 부처님을 뵈옵는 무진장을 얻나니 한 털구멍에서 아승기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하심을 보는 연고며, 법에 들어가는 무진장을 얻나니 부처님 지혜의 힘으로 모든 법이 한 법에 들어감을 관찰하는 연고며, 잘 기억하는 무진장을 얻나니 모든 부처님의 말씀하신 법을 받아 지니고 잊지 아니하는 연고며, 결정한 지혜의 무진장을 얻나니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한 법과 비밀한 방편을 잘 아는 연고며, 뜻과 취지를 아는 무진장을 얻나니 모든 법의 이치와 의향의 정도를 잘 아는 연고며, 끝없이 깨닫는 무진장을 얻나니 허공 같은 지혜로 삼세의 모든 법을 통달하는 연고며, 복덕의 무진장을 얻나니 일체 중생의 뜻을 충만하되 다함이 없는 연고며, 용맹한 지혜로 깨닫게 하는 무진장을 얻나니 일체 중생의 우치한 번뇌를 능히 제해 버리는 연고며, 결정한 변재의 무진장을 얻나니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법문을 연설하여 중생들을 깨닫게 하는 연고며, 십력과 두려움 없는 무진장을 얻나니 모든 보살의 행을 구족하여 때가 없는 비단을 정수리에 매고 장애가 없는 온갖 지혜에 이르는 연고이니 보살이 일체 선근으로 회향할 때에 이 열 가지 무진장을 얻는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불자들은 이를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네 가지 법에 의지해야 합니다. 즉,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며,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며,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며,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법에 의지한다는 것은 곧 여래의 열반에 의지함입니다. 모든 여래의 가르침이 곧 법의 성품이며, 법의 성품이 곧 여래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여래의 은밀하고 깊은 법을 잘 알아 여래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뜻은 깨달음이고 여래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음이며 교법敎法은 영원함이고, 교법이 영원하다는 것은 승가僧伽가 상속해 영원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지혜란 곧 여래인데 여래의 공덕을 잘 알지 못하는 성문들의 분별식심은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요의경은 명의가 환자를 보고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것과 같으며, 그 요의경을 잘못 쓰면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생산하지만, 독사가 그 물을 마시면 독을 생산하는 이치와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탐貪·진瞋·치癡 삼독심三毒心인 번뇌煩惱와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락五欲樂의 망상妄想으로 생긴 사대四大는 무상無常하고 일체가 고통과 괴로움인 번뇌이며 자아自我는 무아無我이고 부정不淨한 것이 현상계現相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선행善行을 해야 합니다.
첫째, 부처님의 가르침, 선지식善知識의 가르침, 경經·율律·론論 삼장三藏의 가르침은 아무리 들어도 싫증을 내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바르게 관찰하고 바른 생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지식知識에 의지하지 말고 지혜智慧에 의지해야 합니다. 지혜란 곧 여래如來입니다. 곧 법신法身인줄 알고 지혜에 의지해야 합니다.
넷째, 바른 가르침을 따라 능히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행복과 불행은 어디로부터 발현되는 것일까요?
의심疑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의심에 대해 제자들에게 “대게는 의심하지 아니함을 의심이라” 하셨습니다. “나 너 의심 안 해.” 그렇게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의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래는 ‘진어자眞語者, 실어자實語者, 여어자如語者, 불광어자不誑語者, 불이어자不異語者’이십니다.
세상을 살면서 따로 참말이니 정말이니 하는 수식어는 필요 없습니다.
‘정말’이라는 말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음식 만드는데 식재료가 많아야지 양념이 많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조화로움은 긍정적인 삶의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게 하고, 의심은 부정적인 삼독심三毒心의 번뇌煩惱인 것을 알고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믿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지식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안으로는 잘 생각하는 내관사유內觀思惟를 해야 하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정진을 해야 하며, 바른 생각의 정념과 바른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바른 말을 해야 하고, 삿되고 용렬한 이들이 진리도 아닌 것을 진리라 설파하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바른 법을 따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