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호
철학박사·동국대불교학과
1. 12연기에 있어 식의 위치
이번 주제는 12연기 가운데 무명과 행에 이어 3번째 고리에 해당하는 식(識)이다. 유전연기는‘행을 조건으로 식이 있다’또는‘식은 행을 연하여 일어 난다’고 되어 있으며 반대로 환멸연기는‘행이 소멸 함에 의해 식이 소멸한다’로 나타난다. 이는 다시 12 연기의 4번째 고리인 명색(名色)과 관련하여‘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다’라고 나타난다.
초기경전에서 식은 심(心)과 의(意)의 동의어처럼 사용되기도 하여 수없이 언급되는데 이는 불교가 마음의 문제라는 심리학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식은 12연기 이외에도 불교의 기본교리에서 오온 가운데 다섯 번째인 식온(識), 18계에서 의식(意識) 그리고 6대에서 식대(識大), 사식(四食)
의 식식(識食) 등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이같은 식의 가르침은 초기불교에 이어 계속적으로 빠알리(Pali) 전통의 아비달마불교는 89개의 식을 말하기도하고 대승의 유식에서 전오식(前五識)과 제육의식(第六意識) 그리고 제칠말나식(第七末那識)과 제8아뢰야식 등으로 다채롭게 확장 설명되었고, 다시 밀교와 중국종파불교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이론으로 전개되었다.
2. 식의 어원과 의미 그리고 성격
식의 빠알리와 산스끄리뜨는 vin~n~ana와 vijn~n-n· a이다. 어원적으로 vi와 jn~a- 그리고 ana로 분해하
여 설명한다.
vi는‘분별’이나‘나누는 것’또는‘세밀한 것’을 jn~a-는‘앎’그리고 ana는‘것’으로 ‘나누어 안다’나‘분별하여 차별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어원분석 때문에 학자들에 의해 식을‘인식판단의 주체’로서의 마음을 의미하는 것 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인식판단의 작용’과 함께 ‘인식주체’로 해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식주체라는 말은 식을 실체적 개념으로 오해할 수 있기에 차라리‘인식주관’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초기불교경전에서 식에 대한 이해는 경전의 성립 시기에 따라 약간 다르게 나타난다. 이른 시기에 성립된 경전에서는 그 개념이 분명히 확립되지 않아 같은 인식과 의식과 관련한 용어들과 혼용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용례도 찾아 볼 수 있다. 즉 일반적인 경전의 분위기와 달리 초기층에 해당하는 경전에서는 상(想) 등과 거의 비슷한 의미로 그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게 쓰인다. 마찬가지로 같은 초기불교경전 이라도 Pali Nikaya와 한역 아함에서 또한 그 의미의 차이가 있다.
사전적으로 식을 정의하자면 식은 외부의 객관을 식별(識別)·요별(了別)·인식하는 마음의 작용을 가리키는 것에 대해 붙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즉 식은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 (意)의 육근(六根)에 따라 색(色)·성(聲)·향(香)· 미(味)·촉(觸) 그리고 법(法)의 육경(六境)에 대해 보고[見]·듣고[聞]·맡고[嗅]·맛보고[味]·접촉하고[觸]·아는[知]의 요별작용으로서 안식(眼識)·이식(身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여섯 가지 식을 말한다.
이렇게 5온과 12연기 교설의 맥락에서 이러한 식은 하나가 아니라 여섯으로 설명된다. 즉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의 6식으로 제시되는데 경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因)과 무슨 연(緣)으로 눈의 식(識)이 생기며, 무슨 인과 무슨 연으로 귀[耳]·코 [鼻]·혀[舌]·몸[身]·뜻[意]의 식이 생깁니까?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눈이 색(色)을 인연하여 눈의 식이 생긴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눈의 식이 생기면 그 일체는 눈과 색이 인연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귀와 소리의 인연, 코와 냄새의 인연, 혀와 맛의 인연, 몸과 부딪침의 인연, 뜻과 법의 인연으로써 뜻의 식 등이 생긴다. 무슨 까닭인가. 뜻의 식 등 그 일체는 모두 다 뜻과 법 등의 인연으로써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을 비구여, 눈의 식은(눈과 색의) 인연으로 생기고… 나아가서는 뜻의 식도(뜻과 법의)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라 한다.”
이렇게 식의 성격이 인연(因緣)의 산물임을 강조 하여 부처님은 설하고 있다. 이러한 이치를 비유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불은 타는 물질에 따라 이름이 달리 지어진다. 장작으로 인한 불은 장작불이라고 하고, 짚으로 인한 불은 짚불이라 한다. 이와 같이 의식이란 그것이 일어나게 된 조건에 따라 이름 지어진다.”
여기서 타는 불은 나무가 계속적으로 주어질 때만이 탄다. 나무를 더 하지 않으면 불은 결국 꺼지게 된다. 이것을 아함의 한 경전에서는 손뼉 소리를 내는데 있어 양 손이 맞부딪쳐 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다시 설명된다. 즉“비유하면, 두 손이 서로 마주쳐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눈은 색과 인연하여 눈의 식이 생긴다.(나머지 식도 이와 마찬가지다)”이렇게 한 손은 눈과 같은 기관[根]이고 다른 한손은 눈의 대상[境]을 그리고 마찬가지로 앞의 비유 에서 나무가 타는 것도 이와 같이 조건에 의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면서부터 장님인 경우 눈이 라는 기관의 문제로 인해 시각적 인식 또는 시각적 이미지가 없는 이치와 같다. 이미 경전에서 선천성 맹인은 색깔에 대한 인식 등이 부재함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다만 다른 기관에 의한 인식만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눈의 식은 눈과 색(色)이 인연하여 생긴다는 것으로 의식이란 실체로 영원한 것이 아니고 조건적 이고 임시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식은 색(色)·수(受)·상(想)· 행(行) 등과 의존적인 존재로 천명하고 있다. 즉 경전에서“식은 색(色)·수(受)·상(想)·행(行)을 그 수단으로, 그 대상으로, 그 기반으로 존재한다.”
누군가가“색(色)·수(受)·상(想)·행(行)과 무관한 식의 생멸이나 증대·성장·발전이 있을 수 있다라”고 한다면“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식이 다른 것들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3. 행과 식의 관계
12연기에서 행(行)은 식을 조건으로 존재하고 계속해서 식은 명색을 조건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이는 만약 식이 없다면 다음 명색(名色)으로 나아갈 수 가 없음을 말한다.
이러한 식의 연속성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된다는 것을 경전에서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중 에‘식의 흐름’또는‘존재의 흐름’이라는 표현도 보인다. 이는 현재 철학자들도‘의식의 흐름’이나 존재는 물 흐름과 같다는 식의 표현과 일맥상통하다.
앞서‘행은 무명에 연하여 일어난다’고 할 때 이 는 바른 이치에 대한 무지가 그릇된 행동을 야기 시킨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명이 행의 단 하나의 조건이라고 단언한 경전은 없다. 다만 그 필요조건처럼 제시될 뿐이다. 다시‘식은 행을 연하여 일어난다’라고 하는 맥락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식은 일종의 인식작용이나 인식현상으로 의식 과정의 흐름을 뜻한다. 그리고 의식의 흐름이란 의식 적이든 무의식적이거나 또는 맹목적이거나 본능적 이라 할지라도 의지적 행위 즉‘행’을 벗어나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식은 행에 인연하여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즉 부연하면, 이전의 경험으로서‘행’이 뒷받침되어 현재의 인식작용이나 인식현상이 일어남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의‘행’에 투영되어 현재의 ‘식’이 성립되고 전개된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개 같은 행을 지은 사람은 개 같은 식이 성립 전개되어 보고 듣고 냄새 맡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처의 행은 부처의 눈으로 귀로 세상을 보고 듣는 다는 것이다. 식은 이렇게 이전의 선하고 악한 행위의 전 경험을 짊어지고 나타나기에‘행에 연하여 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행을 조건으로 식이 있으며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의 6식이 일어나는 것은 과거의 경험인 행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시 말해, 과거의 행이 바탕되어 있지 않은 현재의 인식작용이나 인식현상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