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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바다에서 모두 하나다

박정규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

눈 속에서 동백꽃이 피면 봄이 온다고 합니다. 따스한 봄날 하늘과 땅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서로 부딪치며 무수한 생명의 꽃을 새로이 피우고 있습니다.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연기의 바다 에서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를 울리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인간의 생명도 한 송이 꽃과 같은 존재일 따름입니다.

#1. 1월 20일 용산에서 철거민과 경찰을 포함 6명이 화마 속에서 죽었습니다. 재개발 과정에서 보면 한쪽은 생존권의 문제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경제적 이익의 사소한 일부분일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문제는 항상 있을 수 있는 갈등의 문제를 사회적 공권력이 일방적으로 한쪽을 해결하려 하면서 소중한 인간의 생명들이 죽어 갔습니다.

1977년 4월 광주 무등산에서 움막을 짓고 살던 21살 청년이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쳐 자기 집을 철거하고 불까지 지르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철거반원 넷을 살해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일기에“60일 동안 굶주려 가면서 무등산에 집을 지었다.
흩어져 살았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었고, 나는 이 집을 어머니께 선물로 바쳤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가난 탓에 초등학교 밖에 안 나왔지만, 열심히 살았던 청년이었던 것입니다.
개발은 무엇을 위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걸까요? 우리 스스로 성찰해본다면 자명할 것입니다. 이기적인 욕심, 가진 것 없는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나눔 없이 자기는 작은 금전이라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그 마음이 살생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특히 용산 참사는 공권력에 의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입니다. 공업은 더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경기서남부 지역 연쇄살인 사건은 용산 참사 못지않게 새해 벽두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습니다.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연기적인 사고로 볼 때,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용어가 하나의 분석일 것입니다. 사이코패스는‘겉은 멀쩡하면서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라는 뜻이랍니다. 사이코패스는 발달된 문명도시일수록 잠재적인 그 수는 엄청나다고 합니다. 개개인의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과 조건이 있겠지만, 현대사회의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 살생의 문화 등 사회적인 원인이 주범일 것입니다. 우리는 끔찍한 살인자를 만들어내는 사회문화적 원인과 대안을 고민하는데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연쇄살인범의 얼굴공개 논란, 사형제 폐지 논란 등으로 성찰은커녕 재발방지를 위한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 버렸습니다. 더구나 용산참사와 연계되어 엉뚱한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무고한 살인범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또 하나의 사회적 폭력일 것입니다. 이미 국제기준으로 볼 때 10년 동안 사형 집행이 되지 않아 사형제 폐지국가가 되었음에도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논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증오로서 복수를 하는 것은 나쁜 업이 반복되는 결과만이 있을 뿐입니다. 승가공동체에서 최고의 벌은 추방하는 것이라 합니다. 무기한 종신형을 통해 과보를 받게 하는 것, 진정한 참회를 통해 업을 소멸시키게끔 시간을 주는 것이 불교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3. 또 새해벽두에 일어난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1월 6일 정부는‘일자리 창출을 위한 녹색뉴딜사업 추진방안’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핵심중의 하나는 4대강 살리기입니다. 4대강 살리기는 표현만 다르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대운하 사업의 일환이라고 합니다. 녹색이라는 이름으로,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될 4대강 정비 사업은 또 하나의 커다란 국가적 재앙이자 생명 살상행위입니다. 지금까지 개발로 인한 생명의 파괴와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의 생태문화 파괴이자 식수까지 위협하는 반생명적인 행위라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공공서비스, 복지제도 강화 등 사람을 위하고 녹색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중요합니다. 생명을 살리고 상생과 화합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일에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용산참사도 연쇄살인범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4. 새해 초부터 이렇게 암울한 소식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한줄기 반가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여든 살 할아버지와 마흔 살짜리 소의 아름다운 동행을 그린 다큐멘터리‘워낭소리’였습니다. 저도 친구의 소개로 설날(구정) 오후 몇 개 안되는 영화관을 수소문해 가족과 함께‘워낭소리’ 를 보았습니다. 첫 장면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봉화 청량사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 탑 앞에서 소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감독이 불자이고 불교적인 시각 속에서 작품을 고민했다는 것이 불자로서 반가웠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소는 동물이 아닌 노동과 삶의 동반자였으며, 인간처럼 소중한 생명으로 존중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한테 해가 될까봐 농약도 치지 않고, 사료 대신 풀을 베어다 먹이는 할아버지의 정성. 양지바른 곳에 소의 무덤을 만들어 주고‘워낭’소리로 서로를 기억해주는 모습들은 우리의 생명들이 어떻게 서로 상의상존 하는 관계인지 어떻게 상생해야 하는지를 감동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고기를 먹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굶어 죽게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화 한통화로 돼지와 닭을 죽여 맛을 탐욕하는 생명살상 시스템을 갖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내 혀끝의 감미로움과 흥미로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시대 속에서 나도 언제 교통사고 등 무고한 희생자가 될지 모릅니다.

이밖에도 공개적인 학교 서열화를 통해 교육을 황폐화 시키고 학생들을 자살과 고통으로 몰아 가는 교육현실 등 우리사회는 개발과 경쟁, 탐욕으로 인한 갖가지 병폐가 우리 생명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서로 상생과 조화로운 삶을 통해 생명이 만발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면 해답은 있을 것 같습니다.
숭산스님이 쓰셨다는 세계일화(世界一花)가 떠오릅니다. 세상은 한 송이 꽃과 같나니 당신은 꽃이요, 부처님입니다. 당신의 이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모든 생명을 잘 섬겨야 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봄날 뭇 생명들과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