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인간의 삶은 전생의 업 또는 유전자 같은 선천적 요인과 교육 또는 수행 같은 후천적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된다. 선천적 요인은 불가항력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후천적 요인은 우리가 얼마든지 바꾸어 갈 수 있고 개선해 갈 수 있다. 후천적 요인을 바로잡기 위한 교육과 수행은 빠를수록 효과적이다. 우리 속담에도‘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고, 우리는 예로부터 태교를 중시해 왔다. 요즈음은 태교가 태아의 인성교육이나 심성교육의 차원을 넘어 다양한 지적 능력을 키우는 수준으로까지 진전하고 있고 전문서적
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거기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태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는 점은 바람직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불교는 태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우선 불교는 태아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관심과 인식을 견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태아에 대한 인식은 무엇보다도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등에서의 12연기 해석에 잘 나타난다. 유부는 12연기를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로 해석하면서, 12지(支) 가운데의 식(識)을 탁태 시의 식으로, 명색(名色)과 육입(六入)을 태내에 있는 태아의 심신의 발육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구사론』과『유가사지론』,『 대보적경』과『포태경』등에서는 태아의 성장 과정을 단계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놀랍다.
『구사론』에 따르면 태아의 성장 단계는 다음의 오위(五位)로 구분된다.
1)갈라람(kalala)위 : 탁태 후 7일까지의 단계로서, 미음의 거풀처럼 끈끈하고 조금 굳어지는 것과 같은 상태다.
2) 알부담(Arbuda)위 : 탁태 후 2주째(8~14일)의 단계로서 젖이 식을 적에 표면이 약간 엉기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상태다.
3)폐시(Pesi)위 : 탁태 후 3주째의 단계로서 피와 살이 겨우 엉겨서 아직 굳어지지 않은 상태다.
4)건남(Ghana)위 : 탁태 후 4주째의 단계로서 살이 엉기어 굳어진 상태다.
5)발라사(Prasakha)위 : 탁태 후 5주째부터 세상에 태어나기 직전까지의 단계로서, 두 팔,두 다리, 오장육부가 완전히 형성되어가는 상태다.『 유가사지론』에서는 여기에 발모조위(髮毛爪位), 근위(根位), 형위(形位) 등의 삼위를 더하여 태아의 성장 기간을 팔위(八位)로 구분 하고 있다.
『부모은중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설해져 있다.
어머니가 아기를 밴 지 1개월에는 마치 풀끝의 이슬 같아서 아침에는 저녁을 보존할 수 없나니, 아침에 모였다가 낮에 흩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니라. … 4개월에는 사람의 모습이 비슷하게 이루어지고 5개월에는 머리와 두 팔과 두 다리가 이루어지며 … 7개월에는 뱃속에서 360개의 뼈마디와 8만 4천의 털구멍이 생기느니라. … 9개월에는 어머니의 심장 등은 아래로 향하고, 대장 등은 위로 향하는데 그 사이에 하나의 산(수미산, 업산, 혈산)이 있어 이 산이 한 번씩 무너지면서 한 가닥의 엉긴 핏줄기가 아기의 입으로 흘러 들어가느니라.
태아에 대한 이러한 관심과 인식이 태교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할 것이다. 하지만 태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경전에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부처님의 생애에 관한 기록 중,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 부인이 회임하였을 동안의 행동과 몸가짐에 관한 언급이 조금 나오고, 『디가 니까야』(Digha-Nikaya) 가운데 비바시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그 어머니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그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경전에는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깃들면, 천신의 아들 네 명이“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어떤 자도 보살과 보살의 어머니를 해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칼을 들고 수호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아이를 가진 임신부는 무엇보다도 절대‘안정’과‘평안’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태아의 엄마가 불안해하거나 놀라거나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또는 부부간의 불화나 다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태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동참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보살의 어머니는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사음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술을 먹지 않는 등 오계를 잘 지킨다는 내용이 나온다. 태아의 어머니는 모든 죄악을 멀리하고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바르고 깨끗해야 한다. 임신부가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면 기형아를 낳을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니 유념해야 할 일이다.
셋째, 보살의 어머니는 회임 중 남자들에 대해 여러 가지 애욕을 동반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마음이 더럽혀진 어떤 남자도 보살의 어머니는 범할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임신 초기의 유산이나 임신 중기 및 말기의 조산은 부부의 성관계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임신 후 첫 3개월과 임신 말기에는 성생활을 금하는 것이 원칙이다. 유산이나 조산의 경험이 있는 임신부는 임신 기간 중 성관계를 일절 삼가는 것이 좋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 나라 민간전승의 태교에서도 대개 임신 후에는 부부가 다른 방을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특히 남성들의 자제와 협조가 필요하다고 본다.
넷째,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어있을 때 보살의 어머니는 다섯 가지 즐거움을 얻게 되니 그것을 소유하고 구비하여 즐긴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 는 다섯 가지 즐거움이란, 사물을 보는 눈의 시각, 소리를 듣는 귀의 청각, 맛을 느끼는 혀의 미각, 냄새를 맡는 코의 후각, 감촉을 느끼는 신체(피부)의 촉각과 관련한 즐거움이다. 태아도 뇌세포의 조직화가 시작되는 24~26주 이후부터 이러한 다섯 가지 감각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의 네 가지는 태아가 직접 느끼고, 촉각만은 간접적으로 경험한다고 한다. 시각과 청각은 임신 6개월째에, 미각과 후각은 7개월째에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임신부는 눈으로는 가급적 아름다운 풍경이나 그림, 나무와 꽃 등을 가까이하고 집안 청소도 깨끗이 하여 정갈하고 정돈된 생활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태아는 직접 보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느낌을 항상 공유하고 그 느낌에 길들여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태아와 어머니의 청각을 자극하는 데에는 좋은 음악이 효과적이다. 음악은 뇌를 활성화시키며 특히 알파파를 증가시킨다. 알파파는 엔돌핀 분비를 촉진시켜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음악은 임신부가 좋아하는 곡 중에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밝고 상쾌하고 조용하고 평온한 음악이 좋다. 일반적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발디, 헨델, 하이든, 슈만 등의 음악이 추천되기도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대개 엄마의 심장박동 리듬과 비슷해 태아를 편안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아가 음악뿐만 아니라 아기에게는 따뜻하고 정겨운 엄마의 목소리, 엄마 아빠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소리도 필요할 것이다. 아기와의 대화도 자꾸 시도해 봄직하다.
다섯째,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어있을 때, 보살의 어머니는 어떠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고 즐거움을 갖추고 그 몸이 지치지 않으며 태아의 크고 작은 감관이 모두 잘 갖추어 있는지를 살핀다는 내용이 나온다. 엄마의 건강은 태아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임신부는 항상 건강에 유의하여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을 하고 몸을 무리하지 않도록 하며 균형 잡힌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
여섯째, 어머니가 너무 많이 먹으면 태아가 불안하고 너무 적게 먹어도 불안하며 기름기가 없는 것을 먹어도 불안하고 … 음식이 고르지 못해도 태아가 불안하다는 내용이 나온다〔佛說胞胎經〕. 또한 어머니가 더운 음식을 먹으면 태중은 더운 지옥과 같고 찬 음식을 먹으면 차가운 지옥과 같아서 태아는 온종일 괴로워하며 어둠 속에 있다는 내용도 발견된다〔長壽滅罪經〕. 임신부는 종종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남편 되는 사람은 퇴근길에 아내가 원하는 음식을 가끔 구해가면 좋을 것이다. 그것은 임신부의 건강에도 좋고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도 키워서 결국은 태아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량음료라든가 통조림, 인스턴트식품 등은 피하는 것이 좋고 맵거나 짜거나 뜨겁거나 찬, 자극적인 음식을 피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불소행찬』(佛所行讚)에서는 부처님을 회임한 마야부인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幻
임신부는 모든 근심 걱정을 버리고 번뇌망상을 없애며 진실 되고 밝은 생각을 해야 한다. 태아는 시끄럽고 불쾌하고 짜증 섞인 소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조용하고 공기도 맑은 숲을 최대한 가까이 하도록 노력한다. 또한『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 의하면, 마야부인은 모든 사람과 일체 중생에게 항상 큰 자비심을 갖고 즐겨 보시를 행하였고, 『시설론(施說論)』에 따르면 피로하거나 권태감을 느끼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이들 경전에는 태아가 보살이기에 어머니의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끼쳤다는 내용도 있지만, 임신부는 어쨌든 항상 어질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보살피고 돌보아야 한다. 그래야 어질고 자비로운 성품을 지닌 아이가 태어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점들에 유념하면서 태교를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사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가질 때, 즉 아이 입태 시의 부모의 마음가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도솔천에 호명보살로 계실 때, 시기, 대륙, 지방, 가계, 어머니의 다섯 가지를 관찰하여 선택한 후에 마침내 마야부인의 태에 드셨다고 하지 않는가. 부모의 근본성품도 중요하겠지만 아이를 가질 때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은, 수많은 영가와 업식(業識) 가운데서 수태 순간의 마음상태에 따라 거기에 걸맞는 영가가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시어머니가 길일을 받아 놓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어디 가서 몇 시에 기도하면서 합궁하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아이는 성적 쾌락의 산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도와 정성을 들여 맑은 정신으로 아이를 수태시켜야 한다.『 니다나까타(Nidana-Katha 인연담)』에 따르면, 마야부인은 부처님을 수태하기 7일 전부터 술이나 잡다한 음료수를 피하고 꽃과 향유 등으로 몸을 꾸미고 축제를 즐겼으며, 7일째 되는 날 아침에는 정계(淨戒)를 지녀, 향수로 목욕을 하고 40만의 금을 기꺼이 보시하며 몸을 단정히 하고 훌륭한 식사를 하는 등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불교적 태교법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민간 태교법에 대해서도 귀 기울여야 한다. 그 대표적인『칠태도(七胎道)』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첫째, 술을 먹지 말고 위험한 곳을 피하는 등의 다섯 가지 금기사항을 지킨다. 둘째, 말을 많이 하거나 웃거나 놀라거나 겁먹거나 울지 않는다. 셋째, 마루와 문턱 등의 태살(胎殺)의 장소를 피한다. 넷째, 나쁜 말과 나쁜 일을 피하고 좋은 말만 들으며, 선현의 명구를 외우고 시나 붓글씨를 쓰며 훌륭한 음악을 듣는다. 다섯째, 몸가짐을 바로하고 안전하게 한다. 여섯째, 품격 있고 상서로운 물건이나 향, 매화나 난초의 향을 맡고 맑은 솔바람 소리를 듣는다. 일곱째, 임신 중에는 가급적 금욕한다.
요컨대 임신부는 무엇보다도 태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 태교에 관한 좋은 책들을 구입해 읽고 실천해야 함은 물론이다. 남편을 비롯한 모든 가족이 태교의 주체이자 동반자라는 사실도 명심하자.
임신부는 무엇보다도 태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 태교에 관한 좋은 책들을 구입해 읽고 실천해야 함은 물론이다. 남편을 비롯한 모든 가족이 태교의 주체이자 동반자라는 사실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