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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살생계와 묻지마 살인

김종기
불교플러스 취재부장

며칠 전, 사람들의 가슴에 깊고 진한 사랑을 심어주고 떠난 김수환 추기경과 영월 어느 야산에서 뼛조각으로 발견된 죽음을 생각한다. 한 생을 마감하며 죽는 순간 모든 것들에 감사해 하면서 죽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두려움에 떨며 사람을 증오하면서 죽어가는 사람도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어느 누구도 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죽음을 지켜보는 중심에서 있는 형편이다 보니 관찰 아닌 관찰을 할 때가 있다. 3년 전부터 시작한 임종간호 때문에 여러 죽음을 지켜볼 수 있었다. 병실에서, 집과 영안실에서, 다양하게 죽음을 만난다. 그 죽음에는 나이 들어 자연스럽게 임종의 시간에 가까이 온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암이나 다른 이유에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게 된 이들의 모습도 있다.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판이한 모습들에 새삼 놀라곤 한다. 나이 들어 걱정 없는 죽음, 복잡한 관계 속에서 나타난 죽음, 안타까운 죽음, 사고사 등등 죽는 이유도 가지각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죽는 사람들에게서 모든 것을 덮고 빼앗아 간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모든 것이 정리되어 진다. 죽는 사람을 보고 있자면, 그 사람이 살아생전에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도 어떤 사람들은 집착과 고통에 몸부림치기도 한다.

수십 차례 임종을 지켜보고 나니 살아있는 것만 으로도 나 자신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봉사를 시작할 무렵, 나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내 스스로 어렵다고 생각했고, 주위사람들 역시도 어려움에 처한 나를 걱정해 주었다. 봉사를 해나가면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죽음을 앞에 둔 환자들을 보면서, 현재의 내 모습이 어렵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이곤 했다.

요즘, 사람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사람과 사람이 상호 신뢰하고 사랑하며 서로 의지하는 행복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바탕에는 최근‘묻지마 살인’이 주요 원인이다.
자신의 기분에 의해,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작은 탐욕으로 인해 살인이 너무나 쉽게 저지러지고 있다. 하루에도 몇 차례 반복되는 살인과 탐욕으로 인한 강도, 성범죄들로 인해 사회 전체가 국민 모두가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의 작은 성취를 위해, 소중한 타인의 생명을 너무나 손쉽게 없애고 있는 것이다.

초기 불교경전인 <숫타니파아타>에서 부처님은 산 생명을 죽이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부처님께서는 생명의 존엄성을 그 무엇보다도 강조하여 말씀하셨고 또 실천으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 시자 아난과의 대화에서도 생명에 대해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을 주신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사람들은 우리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서도, 너무나 쉽게 자신의 소중함을 가꾸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인연이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은 마치 하늘에서 겨자씨를 떨어뜨려 땅위에 서 있는 바늘에 꼽히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없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없다. 그 선조의 선조들 중에 한 명만 인연이 조금이라도 잘못되었더라도 나는, 우리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귀한 인연으로 태어난 우리이기에 적극적으로 행복을 가꾸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생명은 단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인생 역시 고귀하고 소중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남의 생명도 내 생명 이상으로 소중하고 고귀하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는 본래 부처의 지혜와 자비를 갖추고 있는 굉장한 생명이라고 했다. 이 고귀한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참다운 불성을 찾아 참 생명의 세계,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인연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있기에 네가 있고, 네가 있기에 내가 있는 것이다. 내 생명이 소중하기에 네 생명 역시 소중하다. 이 세계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고 보는 청정한 마음이 부처님의 지혜이며,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따뜻한 마음이 부처님의 자비인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는 인간계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게 고루 베풀어지고 있다. 부처님께서 살생하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은 단순한 타율적인 도덕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보호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부처님의 자비심을 찾아볼 수가 없다.

며칠째, 우리 주위는‘묻지마 살인’으로 온통 시끄러웠다. 힘없는 여성들을 주로 성폭행하고 죽였다는 강호순의 살인행각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경악하고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안타까워하고 있다.
특히 살인을 저지른 범인들은 하나같이‘단지 세상이 싫고, 죽이고 싶어서’라는 말이 공통이다. 범인들은 범행 동기나 대상도 가리지 않는다. 살인을 했다는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살인자들을 보고 사람들은 분노하면서도 두려움에 시달린다. 이제 그들에게 잘못만 지적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서 제 2의, 제 3의 강호순이 나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 세상이 싫어, 사람이 죽이고 싶어’라는 충동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 불자들이 우선 불살생계를 실천해야 한다. 불살생을 혼자 지키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불살생계를 지키도록 앞장서서 계몽하고 선도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추락되어 있는 생명 존엄의 사상을 우리 불자들의 손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 일이 무고한 살인자의 손길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길이기 때문이다. 불살생계를 널리 알리는데 먼저 노력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