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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의 부처 한 쌍

조현 /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우리나라 유적 가운데 전남 화순 운주사만큼 신비한 게 있을까. 단 하룻밤 사이에 천 개의 부처와 천 개의 탑이 세워졌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운주사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힐만한 신비유적이다. 운주사의 신화가 주는 매력에 끌려 운주사를 직접 찾았을 때의 경이로움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었다.
운주사는 노령산맥의 한줄기인 무등산이 국사봉과 화악산으로 뻗어 내려온 천불산 다탑봉의 비산비야(非山非野)에 자리 잡았다.
일주문을 지나 시원한 잔디밭 위 여기저기에 탑들이 솟아있다. 건축물들 없이 널찍한 평야의 여백이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게 한 때문일까. 행인의 마음을 시공 넘어 아득한 옛 시대로 옮겨놓는다.
처음 마주한 탑은 9층 석탑이다. 이 탑은 돛대탑으로도 불린다. 웬 돛대일까. 현재 운주사의 한자는 雲住寺로 쓰인다.

‘구름이 머무는 곳’이다. 하지만 원래 이름이 運舟寺(운행하는 배)였다는 설도 전하고 있다. 운주사와 천불천탑 조성 전설은 <도선국사실록>에 실려있다. 우리나라 풍수사상의 시조로 알려진 도선국사가 한반도의 형세를 ‘움직이는 배’로 보고, 한반도 동쪽엔 산이 많은 데 서쪽은 지형이 낮아 배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배가 좌초될까 염려스럽고, 또 한반도의 기운이 모두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곳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도선의 풍수사상인 비보(裨補)는 산천에서 가장 빼어난 곳만 찾아 절을 짓는 게 아니라 산천에서 뭔가 기울고 문제가 생긴 지역에 가서 저울추를 잡아주듯이 문제점을 해결해주어 어느 한 지점만이 아니라 전체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비보사상에 따라 한반도란 배가 잘 운행되도록 방향키를 잘 잡아주기 위해 세운 게 천불천탑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은진미륵을 조성했던 혜명 스님이 천불천탑을 조성했다고도 하고,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던 천민과 노비들이 이 골짜기로 숨어들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면서 그런 서원을 담아 자신들을 닮은 투박한 부처들을 조성했다고도 한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 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고 돼 있다. 그러니 지금은 석탑 12기와 석불 70기만 남아있지만 5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천불천탑이 그대로 보존돼 왔다는 얘기다.

운주사 경내로 들어서니 바위 단애 아래 돌부처들이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 절벽 위쪽엔 또 돌탑이 서 있다. 인위적으로 배치해놓은 여느 사찰들의 돌부처나 돌탑들과 달리 천연의 자연과 어우러진 그 모습 그대로가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다. 그 뿐이 아니다. 기계로 깎은 것처럼 정교한 불상들과 달리 자연석 그대로의 투박함을 살리고, 자연인 그대로 인물들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
산기슭을 타고 올라가 보면 칠성바위가 있다. 하늘의 북두칠성을 땅에 내려놓았다. 하늘에 있어야 할 북두칠성이 땅에 있다는 것, 더구나 밤길에 길 잃은 나그네들의 좌표가 되어주었던 북두칠성이 운주사에 와있다.
운주사의 백미는 칠성바위 위쪽의 와불이다. 무려 백톤의 누운 바위에 부처부부가 새겨져있다. 현대의 장비로도 옮기기 어려운 무게를 당시 어떻게 이 산중에 올려놓을 수 있었을까. 신비한 일이다.
전설로는 도선국사가 하늘의 도공들을 동원해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조성하고 있던 중 동자승이 장난으로 ‘꼬끼오!’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날이 밝은 줄로 안 도공들이 미처 마지막 부처를 세우기 전에 하늘나라로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현실적 삶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새 세상이 열린다고 했다.

왜 천불천탑은 이름난 명산에 세워지지 않고 이렇게 아무도 모르던 비산비야의 산골에 세워진 것일까. 또 마지막 부처는 왜 혼자가 아니고 짝일까.
우리들은 대부분 고통이나 문제를 싫어하고 회피하며 오직 낙원만을 갈구한다. 그러면서 고통 받고, 낙오한 이들의 손을 잡고 가길 꺼린다. 혼자만 앞서 달려가기 급급하다.
그렇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남을 짓밟고 가는 것이 세상의 논리다. 그런 경쟁에서 가장 앞서간 첫 번째 인물로 인터넷 혁명을 주도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나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처럼 경쟁의 최후 골인점에 1등으로 도착한 이들이 골인 소회를 밝히면서 돈이나 경쟁에서의 승리가 결코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며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52살이던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 부인 멜린다 게이츠와 함께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자선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자선 재단은 전염병 퇴치와 빈곤층 지원 교육 프로그램 등을 돕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의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다. 빌 게이츠는 한 해 30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이 재단에 쏟아 붓고 있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한 술 더 떠 자신이 소유한 재산의 85%에 달하는 무려 370억 달러를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에 기부했다.
빌 게이츠가 지난 2월 4일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열린 미국 기술오락디자인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던 중 갑자기 유리병 하나를 꺼내들고 말했다.

“말라리아는 모기에 의해 전파됩니다. 여기 모기 몇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이 모기들을 여기에 풀어놓겠습니다. 항상 가난한 사람들만 말라리아에 감염되라는 법이 있습니까. 우리들도 말라리아를 경험해 봅시다.”
그러자 정보기술 업체 대표들과 할리우드 유명 스타와 정치인 등 참석자들이 기겁을 했고, 일부는 어처구니 없어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잠시 뒤 빌 게이츠는 “이 모기떼는 말라리아 병균이 없는 깨끗한 모기들”이라며 청중을 안심시켰고, 그제서야 청중들을 박수로 환호했다.
하지만 선진국의 부자들은 배가 터지도록 먹어 늘 비만을 걱정해야하는 같은 시간에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을 외면하면서 자기들은 전쟁이나 부추겨 무기나 팔아 이득을 챙기고 발전과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오염물질만 양산한다면 그 업보가 고스란히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은 청중들은 몇이나 되었을까. 비록 당장은 말라리아를 피했을지 모르지만.
석가모니는 왕위를 물려받을 왕자였고, 건강한 몸에 학문과 무예에 출중해 이미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었다. 그러나 세속의 행복은 경쟁에 뒤처지고, 아래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다른 이들의 불행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함께 행복할 길을 찾아 자신의 권좌와 부를 버리고 비구(걸인)의 길을 나섰다. 홀로가 아니라 더불어 행복하고자 했던 부처님의 뜻이 운주사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