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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어야 건강하다

문상돈
한의학 박사
원광대학교 한의대 외래교수
햇살고운한의원 대표 원장

구강, 인두, 식도, 위, 소장, 대장, 항문.


상기한 순서를 압축하면 입에서 항문까지, 즉 음식이 들고나는 과정을 해부학적인 순서대로적어 놓은 것이며 이것을 의학용어로 소화관 또는 GI트랙(Gastrointestinal Tract)이라고 한다.


인간의 소화 기관은 히드라같이 단순한 소화관에서 5억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복잡하고 효율적인 소화를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소화기 계통은 음식물을 섭취한 후 이것을 배설할 때까지의 관 계통과 그 경과 중에 음식물 속의 영양분을 소화 흡수하는데 필요한 물질을 분비하는 샘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소화관이라고 하며, 후자는 소화샘이라고 한다. 소화관은 구강-인두-식도-위-소장-대장-항문으로 이루어지고, 소화샘는 침샘, 간, 췌장이 중요한 기관이다.


그 중에서 구강과 침샘은 소화관과 소화샘의 가장 첫 관문에 해당하고 소화 작용이 진행되는 가장 기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물어보면 열이면 여덟이나 아홉이 제대로 씹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식사할 때 음식을 몇 번이나 씹어 삼키느냐고 물어보면 두 세 번이면 벌써 입안에 음식이 없고 넘어가버렸다고 말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독자 여러분도 평상시 습관대로 음식을 섭취하면서 과연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몇 번이나 씹고 삼키는지 관찰한다면 아마 씹는 횟수가 많아야 5번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입에 들어온 음식물을 씹는 행위, 즉 저작(詛嚼)은 인체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첫째, 덩어리가 큰 음식이나 딱딱한 음식을 잘게 분쇄(粉碎)함으로써 소화하기 용이하게 만들어준다.


둘째, 음식을 씹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침샘에서 타액이 분비되는데, 이 타액에는 아밀라아제 같은 소화효소가 섞여있어 음식이 위장 내에서 소화 분해 흡수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염증을 개선시키고 인체를 정화할 수 있는 해독성분이 들어있는가 하면 항암성분, 심지어 항노화 물질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셋째, 씹는 행위를 통하여 치아와 잇몸에 적당한 자극을 주고 턱과 목 주변의 근육을 활성화시킬 수 있으며 또 뇌를 자극하여 머리를 맑게 하는 효과가 있다. 


저작뿐만 아니라 침, 즉 타액만 따져보아도 명약 중에 이렇게 좋은 명약이 없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고치법(叩齒法)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인위적으로 침을 생성시켜 건강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삼았던 것이다. 고치법이란 윗니와 아랫니를 딱딱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위아래로 부딪히는 방법인데, 주로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섭취하기 전에 시행한다. 고치법을 하면 횟수가 늘수록 차츰 입 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하는데, 고인 침을 뱉지 말고 천천히 삼키면 된다. 매일 아침마다 200~300회 정도 반복하게 되면 날이 갈수록 속이 편해지고 치아와 잇몸도 튼튼해지며 머리까지 맑아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면(麵)음식은 대개 표면이 부드러워 그냥 후루룩 삼키기 알맞은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많이 씹지 않게 되고 저작횟수가 적으므로 당연히 타액 분비가 줄어 소화 장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특징이 있다. 소화기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특히 라면 쫄면 등 면음식을 먹지 말라는 이유도 여기에 해당한다.


평상시 소화가 안돼서 고생하는 사람이라면 바쁘고 시간 없다는 핑계로 급하게 식사를 마치기보다는 다소 부자연스럽고 답답하더라도 당장 오늘부터 음식을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는 여유를 가진다면 불과 1주일 내에 소화가 잘 되어 더부룩하고 벙벙했던 속이 편해질 것이며 가늘고 상쾌하지 못했던 대변이 굵은 황금색으로 변하는 것을 자기의 눈으로 직적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어려운 이 시기에 굳이 돈 들여 건강을 관리하기보다 내 몸 안에 있는 구강이라는 명기(名器)와 침이라는 명약(名藥)을 공짜로 이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