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경 / 구룡유치원 교사
“어머니 안녕하세요~! 친구야 안녕! 엄마께 인사드리고 가자~”
대학교 학창 시절 강의 시간이 조금 늦으면 가끔씩 보였던 샛노란 유치원 차량.
‘우리 동네에도 유치원이 있구나…. 차량이 큰 것을 보니 조금 큰 유치원인가? 구룡유치원? 이름이 조금 이상하네….’
유아교육과를 다니던 나로서는 당연히 유치원 차량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상냥한 미소와 밝은 표정을 가진 선생님과 신나고 행복한 모습을 보이던 아이들. 그것이 구룡유치원과의 첫 만남이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전선에 들어선 나는 하나 둘씩 올라오던 채용 공고들을 유심히 보던 중 반가운 이름의 유치원을 볼 수 있었다. 바로 학교 다닐 때 차량만으로는 자주 만났던 구룡유치원. 그 당시 나는 양재동에 살고 있지 않았으나 새로운 지역보다는 나을 듯 하고 구룡유치원에 대한 친근감이 들어서 지원해 보기로 하였다. 자기소개서, 이력서는 물론이고 성적증명서 까지….
‘대기업도 아니고 뭘 이렇게 많이 제출해야해 그것도 자필로?’
타 유치원과는 다른 지원 방법이 약간의 부담감이 들기는 하였지만 유치원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 때부터 구룡유치원 취업에 대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유치원과 어울리게 예쁜 동물 캐릭터와 알록달록 색을 넣은 이력서도 직접 만들고, 글씨체에는 다소 자신이 없었기에 연습장 한 가득 글씨 연습도 하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작성하였다. 며칠을 준비한 끝에 지원을 마쳤고 1차 서류 통과 합격 및 면접일 등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면접 당일이 왔다.
쌀쌀한 12월 중순의 일요일, 그날은 유독 바람이 많이 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보긴 하였지만 구룡사를 찾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양재동에 살았을 때는 ‘저쪽 어딘가에 있겠지’ 하고 생각만 했었지 자세한 길을 알아두지 않았었다. 그래서 여기 저기 골목길을 헤매다가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겨우 도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절이라면 당연히 약간의 숲과 어우러져 앞마당이 있고, 한옥으로 되었을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 했을 것이다. 나 역시 부모님을 따라 많은 절을 다녀본 터라 그런 일반화된 절들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 만난 구룡사는 콘크리트 바닥의 주차장, 주택가 한 가운데 높게 솟은 현대식 건물이었다.
‘이게 정말 절인가? 이런 절도 있네?’ 
신기한 절의 모습에 잠시 주변과 건물을 구경하였다.
‘하긴 이런 곳에 산골 절처럼 되어 있었어도 이상했을거야 ’
계속 보니 주변의 경치와는 잘 어우러진 듯하였다. 그런 생각도 잠시. 찾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던 나는 서둘러서 면접장인 문화 회관으로 들어갔다.
면접장에는 이미 많은 입사지원자들이 앉아 있었다. 면접은 필기, 실기, 최종 면접으로 이루어졌는데 필기에서는 유아교육과 관련된 이론과 여러 가지 상황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에 대해서 묻는 질문이었고, 실기는 면접관님들 앞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모의 수업을 해 보는 것이다. 가장 부담감이 컸던 것은 최종면접이었다. 커다란 면접실에서 주지스님과, 성화스님, 그리고 구룡사 재단 유치원 및 어린이집의 원장님 세 분까지 총 다섯 분이 함께 면접을 보셨다. 한 번에 6명 정도가 함께 들어가 단체 면접을 보아서 그런지 더욱 긴장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어 위축되지 않을까 속으로는 ‘나는 할 수 있어. 여기서 내가 제일 잘하고 있어. 긴장하지말자.’라고 수도 없이 생각하며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런 긍정적인 생각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원장님들과 스님들께서 편안하게 대해 주셔서 그런 건지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막힘없이 술술 잘 나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점점 편해짐을 느꼈다. 다른 사람이 질문을 받을 때도 면접관님들을 쳐다보며 계속 미소 지었는데 그 중 가장 인자하게 웃어주시던 분이 구룡유치원 원장님이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나를 합격 시켜 주시려고 밝게 웃으셨나 보다. 대기업 면접보다 힘든 일정이 끝나고 며칠 후에 나는 최종합격이라는 감격스러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취업하기 몇 달 전 집이 강원도로 이사 가는 바람에 서울에 연고지가 없던 나에게 구룡사에서 기숙사까지 제공해 주셨다. 지방에서 온 교사들에 대한 재단 측의 배려이다. 그렇게 생애 처음 나의 첫 직장을 갖게 되었고,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으로 바뀌고 구룡유치원이라는 새로운 울타리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두근두근 처음 아이들을 맞이하던 날! 처음으로 우리 반이 생기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설레는 마음은 아이들이나 나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처음부터 반갑게 맞이 해주던 미운 7살! 아니 나에게는 사랑스럽고 예쁜 7살이었던 지혜반 친구들. 3년을 다닌 친구들도 있어서 구룡유치원에서는 나에게 선배님이나 다름없던 아이들이 나에게 알려주는 점도 많았고, 나도 그런 아이들을 위해 초임이라는 열정을 쏟아 부어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물론 실수하는 부분도 많았고,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내 옆을 지켜 주던 지혜반 친구들 덕분에 힘을 내서 열심히 생활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서로 서로 도와가며 공생관계로 1년을 보내고 나의 첫 제자들을 졸업시켰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동료 및 직장 상사, 즉 일보다는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들 한다. 특히나 여자들끼리 있는 집단은 더더욱 심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로 신경 써 본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 유치원은 교사 인원이 10명 정도로 많은 편이 아니다. 그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때론 단점이 될 수 있지만 정을 중요시 하는 나에게는 장점으로 작용할 때가 더욱 많은 듯하다. 초임 때도 늘 신경 써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는 선배들과 원장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부장교사의 역할이 주어 졌을 때에도 늘 다른 교사들이 잘 따라 주어 서로 믿고 의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료들의 관계만 중요시 하면 일이 진행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구룡 교사들은 놀 때는 신나게 놀고 일할 때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이었다. 컴퓨터, 아이디어, 사회, 미술, 작문 등 각자 잘하는 분야가 따로 있어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었고, 아이들의 교육적인 부분은 아끼시지 않으신 원장님 덕분에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던 교육들을 직접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특히나 아이들이 듣고, 보는 것 보다는 직접 체험하는 것을 중요시 여겨서 많은 체험활동을 하였다. 체험활동에 가서도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다가 몸살이 나기도 하고 녹초가 되어 퇴근하기도 하고, 몸에서 고기를 원해 다함께 삼겹살로 원기를 보충한 적도 많이 있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함께 놀아주는 선생님이 이 세상 무엇보다 값진 최고의 선물이었을 듯하다. 또한 재미있는 행사들도 많았는데 매번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교사들이 더욱 즐거움을 느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로는 다 함께 파티복장으로 와서 패션쇼, 댄스, 페이스페인팅, 영화관람, 마술쇼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한 어린이 날이었다. 그날은 교사들도 신시뮤지컬컴퍼니에서 공주 및 파티복장을 빌려서 입었는데 공주님이 된 선생님 모습에 아이들도 너무 좋아하였고, 교사들에게도 어른이 되어 하기 힘든 경험을 한 소중한 날이었다.
이렇듯 소중한 경험과 함께 유치원에서 일하다 보면 참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하루에 한 번도 크게 웃기가 힘들다는 요즘사람들에 비해 나는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에 하루에도 몇 번씩 박장대소를 하고 웃을 때가 많다. 한번은 요리활동에 빵칼을 준비물로 가지고 와야 하는데 한 친구가 서글프게 우는 것이다. 그래서 “왜 우니?”라고 물어보니 빵칼을 들고 이렇게 이야기 했다. “선생님 칼은 가지고 왔는데 빵을 안가지고 왔어요”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어서 그런지 교사들도 말투나 생김새 순수함 등이 아이들과 닮아가는 듯하다.
구룡유치원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룡사 부설유치원이다 보니 불교적인 성향이 강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너희 유치원은 불교니까 고기가 안 나오겠네?”
“애들은 매일 와서 절하니?”
“너도 거기서 일하면 절에 가야겠네?”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는다. 하지만 우리 구룡유치원은 설립자이신 회주스님의 발원대로 불교에 대한 교육은 직접적으로 시키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스님을 뵈면 합장하고 인사를 하고, 스님과 악수하며 궁금한 질문들을 하여 좋은 기억들이 떠오르도록 한다.
그러나 늘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작년에는 유독 몸이 안 좋았던 것 같다. 원래는 감기도 잘 안 걸렸는데 신기하게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아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유치원을 결근하고 기숙사에서 혼자 쉰 적이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타지 생활 할 때 가장 서러울 때가 혼자 아플 때다. 이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을 때 조리사님께서 점심시간에 맞춰서 흰 죽을 갖다 주시고, 원장님께서 병원까지 직접 데려다 주셨다.
‘감동이란 단어를 이럴 때 쓰는거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가족, 친척도 아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다니….
이 뿐만 아니라 한 학부모님께서는 내가 위염으로 고생 한다는 소리를 들으시고 위에 좋다는 양배추에 된장을 넣어 양배추쌈장까지 만들어 주셨다.
“선생님 위가 안 좋으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친정 엄마가 해 주시던 것이 생각나서 흉내 내어 봅니다. 맛은 없겠지만 약이라고 생각하시고 드세요”
이런 쪽지를 받고 눈물이 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교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교사 한수경이 아닌 사람 한수경을 생각해 주시던 학부모님. 몸은 아팠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그날의 감동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물론 이렇게 즐겁고 감동적인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달콤함이 있으면 쓴 맛도 있기 마련이다. 내가 가장 긴장했던 사건은 우리 반 아이가 눈썰매장에서 크게 다친 일이다. 다른 친구와 부딪혀 넘어지는 바람에 이마 부분이 찢어졌다. 당시 상황에서는 크게 놀라서 바로 의료실에 가서 응급 처치를 하고 서울 성형외과로 데려온 후 상처 부위를 꿰매고 몇 달간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도 약간의 상처가 남아있다. 그 상처를 볼 때마다 그 날의 일이 떠올라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어찌되었던 교사는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데 나는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예쁜 여자 아이인데 얼굴에 상처가 나서 무척이나 속상했다. 내 마음이 이런데 부모님은 얼마나 속상 했을지 감히 내가 가늠 하진 못할 듯하다. 그 후로는 아이들의 안전에 더욱 신경 쓰게 되었다.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것을 한 번도 후회 해 본 적이 없다. 또한 전국의 많은 유치원 중에 구룡유치원에서 일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으며, 그 중에서도 삭막한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정으로 인해 살맛나는 세상이라는 것을 여기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 선재반 친구들을 졸업시키며 나도 재충전을 위해 정들었던 구룡유치원을 떠나려고 한다. 원래 몸이 좋지 않았던 터라 이런 마음으로 계속 일하게 될 경우 나에게도 유치원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히 떠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 헤어짐이 있으면 또 다른 만남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유치원교사를 다시 하게 된다면 다시 구룡에서 시작하고 싶다. 이렇게 교사를 생각해 주시는 원장님도 없을뿐더러,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늘 가족 같은 분위기의 유치원은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보지 못할 것이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구룡유치원을 통하여 얻은 것이 참 많다. 인자하고 엄마처럼 챙겨주셨던 원장님, 서로를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영원한 동료라고 생각하는 소위 죽이 잘 맞았던 동료 교사들. 타 유치원에 비해 말도 잘 듣고 착한 제자들…. 내가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꼭 구룡유치원과 같은 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다.
몸은 떠나지만 날마다 만나는 행복한 세상 구룡유치원에서의 추억, 감동 등 모든 것을 마음 속 깊이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