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불교입문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나란다대학의 교수였던 나로파는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아주 추한 여인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나로파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나란다 대학의 교수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 대답에 응해 노래하면서 춤추기 시작했다. 나로파는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불교의 가르침이 뜻하는 바를 아느냐고 물었다. 나로파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녀는 이제 울부짖으면서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로파는 자신이 이해한 모든 것이 이론적이거나 개념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직관적인 측면은 철저히 결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이 추한 노파는 그의 마음의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측면을 대변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티베트불교입문>은　학승이었던 나로파가 본격적인 수행의 길로 접어든 계기에 대한 일화를 들고 있다.
나로파는 겔룩파와 카규파, 닝마파, 샤카파 등 티베트불교 4개 종파가운데 하나인 카규파의 위대한 스승이다. 카규파의 법맥은 틸로파(989∼1069)-나로파(1016∼1100)-마르파(1012∼1097)-마르파(1012∼1097)-밀라레파(1025∼1135)-감뽀파(1079∼1153)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들은 종파를 넘어서 티베트불교의 수행의 위대한 태양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특히 나로파가 완성한 나로6법은 뜸모, 환신(幻身), 꿈, 광명, 중음, 포와(의식 전이) 등 티베트불교의 핵심인 6가지 수행을 담고 있다.
3년 전 북인도 히말라야 잔스카르에서 그가 수행했던 동굴을 찾아간 적이 있다. 위대한 고승 수행처의 상당수가 인적이 다다르기 어려운 위치에 있어 험한 순례를 각오한 터였지만, 그가 머문 곳은 단연 압권이었다. 나로파 동굴은 강을 건너고 산길을 따라 몇시간을 달려 험준한 바위 산 아래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외지고 험준한 곳에선 동자승 10여명을 비롯한 20여명의 티베트승려들이 살고 있었다. 맑은 산 기운 아래 머물면서 바위 위에 앉아 명상을 하는 동자승들의 모습을 보니, 천상에 머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로파의 예화에 나온 ‘추한 여인’은 나로파를 깨우쳐 주기 위해 변장한 불보살이거나 ‘위대한 선사(禪師)’로 볼 수 있다. 선(禪)의 특징은 단계를 거치지 않고, 언하(言下)에 깨닫게 하고, 단계를 거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거기엔 논리와 합리나 이론이 달라붙을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그렇기에 중생의 손을 잡고 고구정녕하게 이끌고 가는 맛은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근기에 따른 구체적 가르침이 절실한 중생들에게 불친절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와달리 티베트불교는 아주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진리의 세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불교를 수행하거나 공부하면서도 ‘왜 부처님은 세상을 고통스럽다고 했을까’, ‘우리의 고통이 욕망에서 비롯됐다면 욕망이나 욕구를 다 버려야만 하는 것일까’등에 대해 궁금증을 갖기 마련이다.
<티베트불교입문>은 티베트 불교의 안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런 삶의 민감한 문제에 대해 답해주는 탁월한 지침서로 추천할 만하다.
지은이 탈렉 캅괸 린포체는 1955년 티베트 동부에서 태어나, 티베트불교 카규파 수행을 한 뒤 25살이던 1980년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멜버른에 카귀 이밤 불교학교를 설립해 수행법을 전하고 있다. 서양인에게 티베트 불교를 전하는 교사답게 그의 가르침은 명쾌하기 그지없다.
그는 ‘삶이 고통’이라고 한 붓다의 사성제(4가지 진리)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어낸다.
“이 말은 붓다가 삶의 행복이나 만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에는 행복도 있고 슬픔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영원하지 않으며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만이나 고통이 모든 곳에 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참다운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행복을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불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고통이 지나친 욕구에서 비롯된 갈망과 탐욕, 집착이라면 모든 욕구를 버려야 하느냐’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을 이어간다.
‘붓다는 갈망과 탐욕 등을 낳는 지나친 욕구를 경계해야 한다고, 그것은 부족감과 불만을 부추겨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가르쳤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강박적 욕구이다. 강박적 욕구가 있을 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실망하고 화가 난다. 거기에는 항상 혐오감과 적개심 같은 것들이 뒤따른다. 또한 욕구 충족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래서 탐욕이나 갈망이 있는 곳에 폭력과 기민이 끼어든다. 붓다는 그런 극단적인 형태의 욕구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욕구가 다 사라지는 것을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욕구는 얼마든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까지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활용하는 티베트불교 다운 긍정적 테크닉이 욕구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도 그렇다. 우리는 희노애락애오욕 등 온갖 감정을 없애야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해 명상을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과 싸우는 방식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마하무드라 명상에서는 사고와 감정을 거부하지않고 그것들을 인식하면서 거기에 순응한다. 또한 번뇌라고 하는 것도 우리에게 내재하는 본연의 존재 상태에서 비롯되었다가 본연의 존재 상태로 흩어져 돌아감을 알면, 우리는 자기를 신뢰할 수 있게 되고 부정적인 사고와 감정들도 힘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글자 그대로 자신과 더불어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삼매의 요가를 성취하는 법이다.”
저자는 우리가 삶 속에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을 얻는 불교적 방식도 쉽게 설명해준다.
“우리의 문제는 대부분 자신을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다. 우리는 자기 인식이 너무나 부족하고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없다. 그것이 무지고 무명이다. 참다운 행복은 내부에서, 자신에 대한 더 높은 이해에서 찾아온다
. 내면적 갈등과 투쟁이 줄어들고 모든 것이 좀더 조화를 이룰 때 평온을 느낀다. 외부에서 항상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문제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인생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면적 조화에 의해 그 일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우리가 티베트불교에서 가장 궁금한 것 가운데 하나가 ‘환생’이다.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재탄생의 이론은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가설이다. 굳이 어떤 종류의 신학에서 억지로 해답을 구하지 않아도 업의 이론은 이 세상에 만연한 고통과 불평등을-정신적,육체적 장애나 비참한 생활 환경 등을-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불교와 힌두교는 ‘악의 문제’를 기독교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특히 불교에 있어서, 그것은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다. 붓다는 재탄생 이론을 독단적인 교리로서가 아니라 도덕적인 수단으로써 제시했다. 그는 <중 니카야>에서, 재탄생을 믿으면 즐겁고 만족스러운 미래의 삶을 확신하고 도덕적으로 살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설령 재탄생이 없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써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도덕적인 삶을 영위함으로써 우리는 이승에서 의미를 찾고,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환생이라는 것도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붓다의 배려에서 나온 이론일 수 있다는 것이다. 티베트 불교 뿐 아니라 불교 전반에 대해서 안개를 걷어내주는 책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