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1.
‘불자佛子’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출가 불자이고 하나는 재가 불자이다. 출가이던 또는 재가이던 ‘불자’라면 꼭 실천해야 할 믿음과 실천이 있다. 이 믿음과 실천을 한자말로 ‘신행信行’이라 한다. 이런 신행 생활에는 설법說法에 참여하여 자신이 제대로 수행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점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동시에 대중 결계 및 재(齋 혹은 포살)에 동참하여 계율을 점검하고 참회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런 불교 신행 활동을 통하여 각 종단마다 자신들이 내세운 종지宗旨와 종풍宗風에 상응하는 ‘이념’과 ‘생활규범’을 검점해야 한다고 했다. 아래에서는 ‘불자’의 신행 활동의 측면에서, 위에서 말한 ‘이념’과 ‘생활규범’을 점검하는 체계를 특히 ‘신행’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출가 불자’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출가 불자’의 신행 지도는 기본적으로 ‘성중聖衆’들에게서부터 나온다. ‘성중’이란 성스런 대중이라는 뜻이다. ‘성중’이 없이 그저 세속적인 이유만으로 종단을 ‘차렸을’ 경우는 수행 방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나아가 종단의 운영에서도 여러 모로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수행이 잘 된 ‘성중’이 많아야 그분을 중심으로 한 결계結界 대중들의 수행이 높아지고, 또 이런 결계 대중이 많아야 ‘재가 불자’들을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다.
이런 인식 하에 조계종에서는 2008년부터 대중결계와 포살을 모든 ‘출가 불자’들에게 확산했다. 물론 이런 제도가 있기 이전에도 태고와 조계 양대 종단에서는 전통적으로 분방分榜하여 삼동결재와 안거 등을 해왔다.
이럴 경우는 그 중심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인가나 전강 전수 등을 통하여 사자상승師資相承의 ‘맥脈’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은 수행 종단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전통이다. 자비스러운 ‘성중’을 중심으로 ‘승단’이 꾸려져야 한다. 위와 같이 ‘맥’을 이어가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정한 지역 내에 있는 ‘출가 불자’들은 소위 결계結界 대중이 되어 수행을 지속해 가고 있다. 그리고 ‘출가 불자’들은 자신의 수행의 여가를 활용하거나 때로는 자신의 수행을 양보해가면서 ‘재가 불자’들을 지도해왔다. 이리하여 하나의 ‘교단’을 형성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재가 불자’의 신행 생활이 주제이므로 ‘출가 불자’의 교육 현실 및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로 미룬다.
3.
이상에서는 간단하게 ‘출가 불자’의 신행에 대해에 살펴보았다. 자, 그러면 ‘재가 불자’는 세속에서 생활하면서 어떻게 신행 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도 역시 한국불교의 전승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전승의 이념은 ‘법성’ 사상이고, 형태는 재齋를 올리는 것이었다. 재래적으로 ‘재가 불자’들이 절에 가는 경우는 재齋를 올리러 간다. 음력 초하루와 보름, 지장재일, 관음재일, 약사재일, 산신재일, 그리고 장례와 천도를 비롯한 사자의례死者儀禮 등에 절에 간다. 생축生祝으로 절에 가는 경우도 있다. 이 재에 사용되는 각종 의식문을 자세하게 검토해보면, 그 내면에는 법성 사상이 깔려 있다. 이 법성 사상이 때로는 화엄의 옷을 입고, 때로는 미타 정토의 옷을 입고, 때로는 남종선의 옷을 입고 여러 모습으로 의식에 표출된다. 많이 사용되는 <관음시식>의 일부를 통해 이를 되짚어보기로 한다.
먼저 ‘거불성擧佛聲’으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양대보살과 인로왕보살을 청해 모신다. 그리고 해당하는 영가의 영혼과 법계의 영혼을 청혼請魂한다. 다음에는 이 영가들을 대상으로 착어성著語聲으로 “영원담적靈源湛寂, 무고무금無古無今, 묘체원명妙體圓明, 하생하사何生何死 …….”라고 천천히 낮은 소리로 법문을 한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이 자리에 오신 영가시여! 당신의 본래면목은 맑고 고요하여, 오래 될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소이다. 그 오묘한 본바탕은 완전하게 밝은데 무슨 죽음이 있고 생겨남이 있으오리까? …….” 이렇게 선禪 법문을 한다. 법문 중에 최상의 법문으로 꼽히고 있다. 이렇게 돌아가신 분에게도 법문의 기회를 마련해 드리는데, 하물며 살아있는 재가들의 신행 생활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재가불자들은 반드시 절에 가서 법문을 들어야 한다. 그것도 정기적으로 말이다.
다시 <관음시식>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법문을 일러주었는데도 영가가 ‘자신의 본 마음’을 단박에 체험하지 못하면, 신통력이 매우 훌륭하다고 알려져 있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한 편 일러드린다. 또 『화엄경』의 핵심 게송 즉 4구게도 읽어드리고 각 종 진언眞言도 읽어드린다. 그런데도 못 깨치면, 이때에는 영가들을 불러 모셔 차례로 자리에 뫼시어 앉혀놓고 음식을 대접한다. 먼저 차를 대접하는 장면을 보자.
백초임중일미신 조주상권기천인
百草林中一味新 趙州常勸幾千人
온갖 풀 중 제일 맛 나는 새 차를 내어
조주 선사는 수 없는 이에게 권했네.
팽장석정강심수 원사망령헐고륜
烹將石鼎江心水 願使亡靈歇苦輪
돌 틈에서 솟는 청정수로 차를 달여 영가에 올리니
부디 이것 드시고 고통의 윤회를 벗어나시오.
차 한 잔을 대접하면서도, 이렇게 번뇌의 소멸을 법문한다. 이게 불교 제례의식의 특징이다. 유교식으로는 술을 대접하는데, 불교는 그와는 다르다. 이런 다음에도 계속 의식이 진행된다. 장엄염불을 통해 미타정토를 발원하게 하고, 나중에는 3보님 앞에 절을 올리고 ‘법성게’의 목탁 소리에 맞추어 소대燒臺로 향한다. 그러고는 영가에게 마지막으로 일러 준다. “여태까지 음식을 대접하고 독경을 했는데 허망한 인연을 잊으셨습니까? 허망한 생각만 떨어지면 영가님 자신의 본래 진여법성과 하나 되어 극락으로 가실겁니다. 그러나 아직도 망식을 여의지 못하셨다면 이 산승의 마지막 게송을 들으소서. ‘4대가 흩어지면 육체도 꿈결 같고, 6진의 그림자인 마음도 본래 공空하다. 그대가 만약 부처님과 조사님의 깨달은 자리를 알려거든, 해가 지면 달이 뜨는 소식을 아소서!’”
이렇게 계속 이어지면서 나중에는 위패와 전錢 다라니를 태우고, 마지막에는 “부디 잘 가시오!”라는 뜻으로 “복유진중伏惟珍重”이라고 작별 인사를 한다. 이렇게 해서 재가 모두 끝난다.
4.
이상에 보다시피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 사상, 미타 정토 사상, 남종선 사상 등등이 어우러져 영혼을 천도한다. 이와 더불어 영가 설법을 한다. <사시불공>의 경우도 근본 철학은 이와 같다. 오히려 법보화 3신身 신앙과 보현의 행원사상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유치’와 ‘청사’의 내용에는 「보현행원품」에서 인용한 구절이 많이 나온다.
이상이 ‘재가 불자’들이 절에 가서 하는 <관음시식>의 근간이다. 그런데 이 의식문이 모두 한문이고, 게다가 범패 성으로 소리를 끌었다 밀었다 눌렀다 꺾었다, 태징 찍고 목탁 치고 요령 흔들어 대면 알아들을 수 있는 ‘재가 불자’는 거의 없다. 소위 ‘분위기적’ 전달 효과는 있지만 ‘메시지’ 전달은 꽝이다. 물론 일구월심으로 간절하게 기도하면, 부처님의 자비와 신통력의 공덕이 영험하기 때문에 각종 전통적인 ‘재齋’나 ‘불공’을 통해서도 많은 중생들이 복전을 일구어 갈 수 있다. <관음시식>을 비롯한 절에서 지내는 각종 재에 참여하는 것도 법회와 절에서 진행되는 일반 법회와 마찬가지로 재가 불자들의 신행 생활의 하나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내용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종단에서도 이 점을 고려하여 한글화 노력을 하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