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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꿈을 풀어보다

송광사 카페 ‘다송원’에서 솔뫼서 가슴 창을 열고

봄꿈을 풀어보다


이서연


시인


사는 것이 뚜렷하게 보여서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래에 대해 계획도 준비도 없이 막연하게 희망을 갖는 것도 성숙한 모습이 아니지만, 무작정 불확실하다는 생각에 미리 의기소침하며 살아갈 것도 없다. 조금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아프면 아픈대로 세월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지내다보면 다시 가야 할 길, 믿어야 할 것, 얻어야 할 것이 뭔지도 감을 잡아 간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은 그런 시간에 쏟아부어야 하는 것은 진심의 사랑이다.
사랑을 쏟지 않고 벗을 수 있는 업이 있고, 얻을 수 있는 가피가 있을까…. 열심히 사는 것 의미 속에는 진심의 사랑이 얼마나 가득한가에 인품의 질이 있다고 본다.


무엇을 향해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지 내면의 속살을 들여다보던 이들이 출가를 결심하는 것을 볼 때 잠시 나도 ‘나’라는 시간을 멈추어 놓고 바라본다. 누가 발로 차는 것도 아닌데 가슴 복판에서 회오리가 치는 듯 복잡한 순간, 아주 잠시만 ‘나’를 내려놓는 습관이 있다. 몸은 출가하지 않아도 마음이 내면을 향해 출가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사는 것은 불확실한 길을 살얼음 딛듯 가는 길이다. 확실한 존재가 무너지는 체험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수 있다. 그래서 순간순간 바람 한 겹에도 번뇌의 껍질이 부스러지는 마음을 다독다독 챙겨가는 일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봄이 들어오는 시간, 내면의 자신을 맞이하고자 조계산 송광사로 들어가면 마음챙김의 길을 몸으로 보여 주는 수행자들의 눈빛을 만나게 된다. 편백나무 숲에선 내 영혼의 노래가 들리는 듯, 바람 한 줄기에도 마음을 기대게 된다. 계곡의 물빛도, 산빛도, 나뭇잎들도 바람이 지나가는 순간마다 달라진다. 세상을 향해 다시 눈을 뜨고, 잎을 피우는 자연의 이치 앞에서 아직도 사는 뜻을 다 모르고 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봄은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며 힘을 내라 한다.


빛나는 눈짓하나 얻으러 왔나이다
아득한 회한 벗고 갈 길 찾아 왔나이다
나답게 나를 깨고 나갈 길 한 말씀만 주소서
-‘송광사 일주문에 들어서며’-


봄을 알리는 종소리같은 계곡 물소리를 따라 일주문을 들어서면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입적하시기 전에 자신의 불멸을 입증하고자 꽂았다는 고목(고향수)이 마치 솟대처럼 서 있다. 지눌 스님이 다시 송광사를 예방하실 때 소생하신다는 전설이 이제는 더 이상 전설이 아니라 현세의 법문처럼 빨리 확인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고목 옆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어려운 영혼을 씻어주는 세월각과 척주당이 있다. 어찌 영혼만 씻어야 하겠는가. 불교개혁을 위한 결사운동과 이를 실천하는 참선수행의 전통을 이어온 거룩한 수행자들의 승보종찰인데 그 누구인들 마음 씻고 들어가야 할 도량 아니겠나 싶다.
송광사는 누구나 부처나 보살이 될 수 있는 깨우침을 전하는 근본대승도량이자 참선수행을 목표로 하는 많은 수행자들의 수행처답게 곳곳의 수행공간마다 “작고 소박한 것에 만족하며 행복해하자.”는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소박한 분위기를 풍요롭게 보게 된다.
삼청교와 우화각, 도계루는 송광사 도량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자 세속에서 짊어온 심신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다. 삼청교는
계곡의 물을 건너는 다리 역할을 함과 동시에 우화각 건물을 바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기능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독특하고 아름답다. 물소리에 좀 깨끗해진 듯한 마음으로 안쪽 도량으로 발을 옮겨 보니 승보전 옆에 1724년 남원에서 태풍에 쓰러진 싸리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구시가 눈에 들어왔다. 국가 제사 때 많은 대중을 위해 밥을 담아 두기 위해 쓰였다는 비사리구시에 쌀 7가마(4천 명분)의 밥이 들어갔다니 당시의 법회 규모가 짐작된다. 그렇게 닦으며 빌어온 복이 남아 지금 이만큼이라도 사는 것일까, 어수선한 시국을 향해 향불 하나 올리고 고요로 무장된 도량을 조용히 돌며, 두텁게 심장을 감싸고 있는 번뇌를 씻어 보았다.
행복은 늘 단순하고 간소한 데 있다. 공양간이 그 가르침을 준다. 음식으로 인연의 이치를 가르치는 곳답게 도구 하나도 귀한 풍경이 되는 공양간에서 스님들의 별식인 국수를 먹었다.
도량의 전각들 중에는 1842년 화재와 6.25를 겪으며 소실된 것들이 많아서 중건한 것이 많지만 도계루 옆 해우소는 또다른 분위기의 수행처다. 몸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몸 밖으로 나가는 것도 수행의 일환이라는 가르침이 느껴진다. 진리가 어찌 법문 속에만 존재하겠는가. 숨 쉬는 내 호흡에 들어오고 나가는 천지의 기운을 읽을 수 있다면 억겁의 인연으로 오늘의 내가 존재된 이유도 헤아릴 수 있는 것 아닐까. 삶 자체에 흐르는 진리를 알아차림이 중요한 것임을 먹고 비우는 곳곳에서 거듭거듭 깨닫게 된다.
고찰만 갖고 있는 담과 건축물 사이사이에 새겨진 세월이라는 이름이 남긴 흔적들을 만나면 오래된 편안함, 즉 여여함을 얻게 된다. 이 또한 산사가 주는 말없는 법문이다. 따라서 송광사 도량은 천천히 구석구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겹겹의 꽃잎을 들춰보는 것처럼 도량 속속을 돌아보는 사이에 속으로 들리는 법문과 저절로 스미는 불향佛香을 곱게 간직하게 된다. 나한전 앞의 하사당下舍堂은 조선 세조7년(1461)에 지어진 요사채라고 하는데 부엌 상부 지붕에 구멍이 있고, 그 위에 다시 솟을지붕이 있어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이런 독특하고 희귀한 구조 양식의 건축을 만나는 것도 고찰에서 얻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송광사에는 청량각 가기 전에 ‘길상다원’과 청량각 지나 불일서적이 있는 곳에 ‘다송원’이라는 찻집이 있다. 모두 봄빛처럼 다정한 분위기로 길손의 마음을 잡는 곳이다. ‘다송원’은 정갈한 분위기도 좋지만 사람을 대접하는 보살의 마음이 더 따뜻하다. 함께 간 사람이 있어도 혼자 차를 마셔야
할 때가 있다. 마음 붙들 수 없는 이의 발길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 성격이라 홀로 차를 주문할 때면 그 시간을 충분히 채우기 위해 오히려 속마음이 복잡할 때가 있다. ‘다송원’의 문을 열 때가 그러했다. 모과차 한 잔을 주문했는데 자애로운 보살의 마음이 가득 담긴 팥죽도 나왔다. 털어낼 화기火氣를 빼고, 화창하고 온화한 기운和氣를 채우는데 팥죽만큼 의미있는 음식이 있겠는가. 비운 마음에 더 가득 채워지는 법정스님 같은 법문이 그 팥죽에 담겨 있는 듯 했다.


먹물 입은 이들의 숨소리가
봄꽃을 틔우는 조계산 도량에서
누구의 ‘나’가 아닌
‘나’의 ‘나’가 되어 차를 마신다


산빛이 달라지는 계절의 길목에 앉아
입장료없이 들어오는 봄바람과
바람에 태연하게 딸려 온 봄빛
봄빛에 간지럽다 하는 물소리도 마신다


스스로 시간이라는 틀에 묶여
보이지도 않는 경계에 갇혀
저 홀로 아우성치며 사는 동안
‘나’는 ‘나’의 모습인가


한 생각 치우는 사이
더 욕심낼 수 없는 ‘무소유’ 법문이
다송원 보살이 주는 팥죽에 담겨 온다
우담바라가 봄맛으로 피어


 


조계산은 화려한 기암괴석도, 알려진 폭포도 없는 소박한 산이지만 단정하고 속살이 두툼한 보살형의 명산이다. 순후함의 이미지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이 산에서 금닭에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의 터가 송광사라고 한다. 번식력이 좋은 닭처럼 목우자(보조국사)의 뜻을 받들어 진리와 지혜를 닦는 수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량에서 산빛의 생기를 한 줌 담아 가려니 가슴에 먼저 맑은 봄물이 스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