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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이 출현하게 된 ‘가까운 인연’-「보현삼매품 제3」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화엄경』을 읽어가는 데에 ‘과목 나누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누차 반복하고 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호부터 금년 6월 까지는 <거과권락생신분擧果勸樂生信分> 과목에 해당하는 총 6품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총 6품은 다시 셋으로 나누어지는데, (1)첫째는 『화엄경』이 출현하게 된 핵심 인연을 설하는 부분인 「세주묘엄품 제1」이 있고, (2)둘째는 보조적 인연을 설하는 부분인 「여래현상품 제2」와 「보현삼매품 제3」이 있다. 그리고 (3)셋째는 중생들에게 믿음을 내도록 설법하시는 본론 부분이니, 「세계성취품 제4」, 「화장세계품 제5」, 「비로자나품 제6」가 그것이다. 독자들께서는 3월호에서 다루는 「보현삼매품 제3」이 어디쯤에 해당하는지 기억해두시면 좋겠다. 


2.
그럼, 맥락을 잡아가기 위해 지난 2월호에서 다룬 내용을 간단하게 회상해보기로 한다. 위에서 보다시피 (2)의 보조적 인연을 설하는 부분이 둘인데,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보조 인연’을 설하는 부분이 「여래현상품」이고, 그것에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보조 인연’을 설하는 부분이 「보현삼매품 제3」이다.
지난 2월호에서 필자는 ‘인연’이라는 용어를 주목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렇다. 불교의 핵심 논리는 연인因緣이다. 이런 주장은 인도-중국-한국의 긴 세월, 많은 학승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해왔다. 매사를 인연 관계로 설명하고 해석하는 관계의 철학이다.
방대한 경전인 『화엄경』이 출현한 결과도 인연의 고리로 설명하려는 발상이다. 그런 발상에 입각하여 「여래현상품 제2」가 ‘보조 인연[緣]’ 노릇을 하여 『화엄경』이 결과적으로 설해졌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2품에서 쏟아진 40가지 질문이 ‘보조 인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물론 ‘보조 인연’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거리가 좀 떨어진 보조 인연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거리가 더 가까운 보조 인연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보현삼매품 제3」에 나오는 ‘삼매三昧의 힘’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가깝고 먼 ‘보조 인연’이 계기가 되어 『화엄경』이 설해졌다는 해석이다.


3.
3월호에서는 ‘삼매三昧의 힘’에 주목하면서 「보현삼매품 제3」을 요점적으로 읽어보기로 한다. 「보현삼매품 제3」은 모두 여섯 과목으로 나누어진다. ①삼매분三昧分, ②가지분加持分, ③기정분起定分, ④현상작증분現相作證分, ⑤모광찬덕분毛光讚德分, ⑥대중게청분大衆偈請分이 그것이다.
이하에서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화엄경』처럼 광대한 설법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삼매의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보현삼매품 제3」은 그 장면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면서 시작하는데, 경학經學의 대가들은 이 대목을 <삼매분>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여래의 앞에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사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삼매에 드시었다. 이 삼매는 이름이 ‘일체 제불 비로자나 여래장신一切諸佛毘盧遮那如來藏身’이니,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성품에 두루 들어가 법계에서 모든 영상靈像을 능히 보이며, 넓고 크고 걸림이 없어 허공과 같고 법계의 소용돌이에 따라 들어가지 않는 데 없으며, 온갖 삼매의 법을 내기도 하고 시방의 법계를 널리 포함하기도 하며, 3세의 모든 부처님들의 지혜 광명바다가 모두 여기에서 나오고 시방에 나란히 벌여 있는 바다들을 능히 나타내기도 하며, 온갖 부처님의 힘과 해탈과 모든 보살의 지혜를 모두 머금어 간직하고 온갖 국토의 티끌로 하여금 그지없는 법계를 용납하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공덕바다를 성취하게 하고 여래의 크신 원력바다를 나타내어 보이며, 모든 부처님의 법륜을 유통하고 보호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 「보현삼매품 제3」 -
 
4.
이렇게 <①삼매분>이 끝나자, 시방의 여러 부처님들이 보현보살에게 구업과 의업과 신업으로 가피를 주시는데 이를 <②가지분>이라 한다. 가지加持란 말뜻은 ‘힘 보태주다’이다. 보현보살에게 시방의 여러 부처님들이 힘을 실어주는 장면이다. 그렇게 힘을 실어주는 방법에는 입을 통해서 음성으로 격려하기도 하고, 마음으로 지혜의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손을 펴서 보현보살의 이마를 만져주기도 한다.
이렇게 3업業으로, 보현보살이 법을 설할 수 있도록 시방의 부처님들께서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현상적으로 보면 보현보살의 입에서 『화엄경』 법문이 나왔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시방에 항상 계시는 부처님들의 힘 때문에 『화엄경』이 나온 셈이다. 화엄학자들은 이렇게 『화엄경』을 읽고 해석한다.


5.
다음에는 삼매에서 일어하는 장면이 『화엄경』 본문에 등장한다. 이 대목을 <③기정분>이라 한다. 이렇게 보현보살이 삼매에서 일어나자 수많은 상서로운 일이 생긴다. 대표적인 상서 하나만 소개하면, “드넓은 세계의 무수한 보살들이 도솔천 궁전으로부터 내려와서, 탄생하고, 성불하고, 법 수레를 굴리고, 열반에 드시는 따위의 일들이 바다처럼 구름처럼 끝없이 생겼다.” 8상相으로 성도하시는 초기 경전의 내용을 계승하고 있다.
이렇게 보현보살께서 ‘삼매’에서 일어나니, 각종 상서로운 현상들이 나타난다. 이를 <④현상작증분>이라 한다. 그 장면을 『화엄경』 본문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때에 시방의 모든 세계해가 부처님의 위신력과 보현보살의 힘으로 모두 조금씩 흔들렸으니, 낱낱 세계가 여러 가지 보배로 장엄하였고, 또 묘한 음성으로 법문을 연설하기도 하며, 다시 온갖 여래의 대중이 모인 도량해 안에 열 가지 ‘큰 마니왕 구름’을 널리 내었다.”
‘큰 마니왕 구름’이란, 세상에서 가장 밝은 구슬이 마니주인데, 그 구슬 중 제일 훌륭해서 ‘왕’ 자를 붙였고, 끝없이 많기 때문에 ‘구름’ 자를 붙인 것이다.
이런 상서로운 현상을 나타낸 다음에는 모든 여래의 몸에 난 털구멍마다 광명이 솟아났고, 그 속에서 보현보살의 공덕을 찬탄하는 게송이 울려 퍼진다. 이를 <⑤모광찬덕분>이라 한다. 시방에 상주하시는 여러 부처님들의 몸속에서 찬탄이 울려 퍼지는 것이다. 모두 10수首의 게송이 등장하는 데, 여기서는 앞의 4수의 게송만 추린다. 이 중 넷째 게송 속에 쓰인 마지막 구절 “비로자나 부처님의 원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엄경』의 원천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보현보살 온 세계에 두루 계시어 普賢遍住於諸刹
연꽃 위에 앉으심을 대중이 보니 坐寶蓮華.所觀
온갖 신통 나타내지 않는 것이 없고一切神通靡不現
한량없는 삼매에 능히 들었고  無量三昧皆能入


보현보살 여러 가지 몸을 나타내어 普賢恒以種種身
온 법계에 두루 두루 가득하였고 法界周流悉充滿
모든 삼매 모든 신통 방편의 힘을  三昧神通方便力
원음으로 말씀하여 걸림이 없고   圓音廣說皆無.


온갖 세계 부처님들 계신 곳에   一切刹中諸佛所
가지가지 삼매로 신통 나투니   種種三昧現神通
그 신통이 낱낱이 두루 퍼지어   一一神通悉周遍
시방세계 모든 국토 남김이 없고  十方國土無遺者


온갖 세계 부처님의 계신 데처럼  如一切刹如來所
저 세계의 티끌 속도 모두 그러하네彼刹塵中悉亦然
나타내는 삼매와 신통한 일들  所現三昧神通事
비로자나 부처님의 원력이니라.  毘盧遮那之願力


6.
마침내는 대중들이 게송으로 보현보살에게 한 말씀을 청하는데, 이를 <⑥대중게청분>이라 한다. 여기에도 모두 열 게송이 나열되지만, 지면 관계상 마지막 게송 하나를 소개한다. 정중하게 설법을 청하는 장면이다.
이 자리에 한량없는 모든 대중들 此中無量大衆海
임의 앞에 공경하고 머물렀으니   悉在尊前恭敬住
청정하고 묘한 법륜 말씀하소서   爲轉.淨妙法輪
온 세계의 부처님들 기뻐하리라. 一切諸佛皆隨喜
삼매의 힘으로 인해서 법이 설해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각종 법회 현장에서 설법을 할 때에, 입정과 출정의 의례를 갖추는 것도 『화엄경』의 이런 교학 배경에 근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