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사 <피아니스트의 찻집>에서
이서연
시인
누구에게나 인생은 처음이라 매일 아침 눈을 뜨고 하루를 살아내는 일은 늘 서툴 수밖에 없다. 인생 마지막을 닫는 순간까지 사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 있을까. 마지막 호흡 후 다시 한 호흡을 할 수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연습 없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처럼, 마치 여러 번 살아본 사람처럼 살아내는데 의연하지 않고는 시행착오로 낭비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전생이 있었다 한들 기억에 있는 전생은 있지 않고, 기억에 무엇인가 있다 한들 그것이 지금 인생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업의 작용만이 명확하니 지금의 내 모습에 집중하고 늘 처음 겪는 하루의 시작을 귀하게 여김이 필요하다.   
평범한 하루에 보석 같은 시간이 명확하게 새겨지는 날이 있다. ‘평범’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는 의미가 그 안에 살짝 내포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어느 것보다 ‘평범’이 ‘소중한 의미’의 또 다른 표현이 되고 있다. 항상 처음인 하루의 시작에 영화 같은 일이 있었으면 할 때 정말 영화처럼 뜻하지 않은 인연과 만나 수채화 같은 추억을 남겼다.
아산만과 삽교천을 잇는 자리에 공세리 언덕이 있다. 초기 선교사들이 포구에 상륙하여 전교하고자 1894년에 교회를 설립한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 공세리 뒷산에 늘 봄날같은 쉼터를 제공해 주는 아름다운 절이 있다. 피아노 치는 스님의 절 고성사다.
보통은 절에 갈 때 고민은 내려놓고 맑은 신심으로 부처님의 가피를 축원하지만 거꾸로 이 절을 찾아갈 땐 일부러라도 고민을 들고 갈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억지로 그 고민을 풀려고 부처님께 매달릴 필요는 없다. 그냥 피아노를 치던 스님이 차 한 잔 내어주시면 그 차만 마시면 된다. 그 차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스님은 피아노를 연주하신다.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아드린드를 위한 발라드’와 앙드레 가뇽의 ‘바다 위의 피아노’같은 곡을 사찰에서 스님의 연주로 들을 수 있는 곳이니 아무리 무거운 고민도 그 연주가 흐르는 사이에 풀린다. 사바세계 중생은 그 어느 곳에 있어도 온몸이 불구덩이게 놓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마음의 불부터 끄지 않고 어떻게 그 불구덩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이런 혼탁한 세상을 살아내느라 모진 풍파를 견뎌가는 중생들을 위해 피아노 선율에 부처님의 가피를 담아 선사하는 고경 스님이 고성사 주지다.
피아니스트이자 시인인 고경 스님은 앳되 보이지만 법랍이 30년이 훌쩍 넘으신 분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잃지 않으려고 18세 꽃다운 나이에 고성사를 창건하신 보명 스님의 제자로 입산 후, 오로지 치열한 구도의 정신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피아노를 치는 모습에서, 그리고 처음 만나도 어제 헤어진 친구처럼 대하는 도경 스님의 모습에서 처절했던 과거의 그림자를 느낄 수 없다. 혹독한 수행의 과정마저도 봄꽃처럼 화사한 분위기로 승화시켜 버린 모습이다. 그 어떤 시련 속에서도 고결한 본래의 면목 하나 지키려고 노력한 정갈함이 그대로 피아노의 선율에 담겨 흐른다. 맑을수록 먼지 하나도 탁하게 보일 수 있다. 자신의 관리에 철저할수록 고독의 깊이가 큰 법. 그러나 고경 스님의 눈망울은 이미 상처로 인한 흉터마저 빛날 정도로 맑다. 그 눈망울에서 스님이 고이 간직한 영혼이 어떤 모습인지를 느낄 수 있다. 그 영혼으로 지금 보이지 않는 마음 때문에 세상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적 쉼터가 되어 주시고자 원력을 펼치고 있다. 
삶은 추상명사 같은 것
지금 가는 길이 삶인가요? 
“커다란 숲속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보세요”
꿈은 꿈을 갖게 해요
꿈을 이룬 길이 부처일까요?
“언제나 꿈을 꾸는 사람에겐
미소 지을 일만 생기는 법이죠”
  
길을 묻는 이가 오면
길을 알려 주시나요?
“눈을 의식하지 말고
그냥 내 길을 가라고 해요”
               -고경에게 길을 묻다-
 
어떻게 시작된 일인지 부식간에 젊은이들의 호흡이 맑지 못한 시절이 길어지면서 긴 한숨을 쉬다가 스스로 웅덩이를 판 운명 앞에 쩔쩔매고 있다. 세상을 탓하는 시간에도, 누구를 원망하는 세월에도 인생은 마지막 한순간을 향해 흐를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세상에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허무한 시간을 소비하다 지쳐가고 있다. 고성사는 매주 일요일 법회가 있다. 단 한 명의 신도가 오더라도 스님은 목탁을 치며 정성을 다한다. 부처님을 만나는 시간이 정해질 수 없듯이 스님은 숨마디가 끊어지도록 고뇌를 해결 못 하는 이들을 위해 문을 항상 열어놓고 있다. 특히 SNS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서슴없이 스님을 찾아온다. 스님은 처음 오는 사람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맞이하고 차를 내어주고 눈빛으로 마음을 읽어 내린다. 그리고 근기설법을 한 부처님처럼 찾아온 이의 삶의 결을 닦아주듯 피아노 앞에 앉아 중생을 향한, 중생을 위한 부처의 연주를 한다. 연주가 흐르는 동안 중생들은 불행에 굴복하듯 지쳐가면서 스스로 자신을 내팽개쳤던 것을 떠올린다. 자신을 포기하면 산다는 자체에 의욕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만은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전생의 업이야 알 수 없지만 현생에선 시나브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스님의 연주는 그런 이에게 조금씩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숨겨 둔 부처님을 만나게 하는 힘이 있다. 얼음 속에서도 계곡의 물은 흐르듯 만물은 봄 앞에 스르르 제 기운을 얻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마를 때까지 스님의 연주가 이어지는 사이에 저절로 마음에서 마음의 빗장을 여는 이들이 생긴다.
창마다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마치 기억의 흔적이라도 묻은 듯 오래된 풍금이 눈에 띈다. 책장에는 스님의 시집과 에세이집 그리고 스님이 정성껏 만든 꽃차들과 직접 담근 고추장 된장이 전시되어 있다. 스님의 피아노 싱글 앨범도 있다. 불교음악을 연구해 작곡하고 직접 콘서트와 산사음악회를 기획, 개최하면서 가장 고경이 다운, 아니 고경 수행자의 향기가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을 향해 나가야 할지 길을 잃은 현대인들 가슴엔 바람이 다 치우지 못한 번뇌로 쾌쾌하다. 그 탁한 기운을 떨어내는데 스님의 뉴에이지 음악은 기가 막힌 치유제가 되고 있다. 마침 스님이 작곡한 뉴에이지 풍의 ‘오월의 호수’곡을 연주하신다. 은은한 ‘쉼’을 주는 연주가 봄향기로 퍼진다.
나는 봄이다
허공의 향기를 긋는 봄이다
혹여 나를 보는 이가 있다면
그건 봄을 보는 그대일 것이다
그대가 사랑하는 시간에
꽃비가 건반을 두드린다
얼마나 나를 울릴 가슴이려고
아, 오월이 호수에서 피어나는가
 
나는 봄이다
오월의 호수에 흐르는 그대의 봄이다
          -고경의 ‘오월의 호수’를 들으며-
 
고성사의 봄은 마음의 겨울을 이겨내고 싶어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로 열리고 있다. 그들이 고경 스님에게 얻은 봄향기로 세상에 봄을 전하는 전령들이 되리라 본다. 아름다운 스님의 연주를 들으며 차를 마시는 시간이 영화같은 추억으로 새겨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