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작년부터 필자는 화엄경을 ‘믿음-이론-실천-체험[信-解-行-證]’의 네 단락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지난 2월호부터는 ‘실천[行]’에 해당하는 「이세간품 제38」의 설명으로 접어들어, ‘총론’적인 설명을 마쳤다. 이제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에 걸쳐 ‘각론’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지난달 총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세간품 제38」에서는 보혜보살이 200가지 질문을 던졌고, 그 각각의 질문에 대해 보현보살이 10개 씩 총 2,000가지로 대답을 하고 있다. 화엄경이 상당히 방대하고 복잡하기는 하지만, ‘질문-대답’을 짝지어 독서하면 그래도 이해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총 2,000가지 ‘질문-대답’을 크게 6단락으로 구별하여 읽는 전통 방법이 있으니, 향후 6개월간은 그 방법으로 경전의 본문을 소개할 예정이다.
6단락은 ①10신 수행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대답, ②10주 수행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대답, ③10행 수행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대답, ④10회향 수행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대답, ⑤10지 수행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대답, ⑥인원과만因圓果滿 수행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대답이다. 이렇게 6단락으로 나누는 방식은, 당나라 화엄의 대가 청량 국사께서도 즐겨 사용한 방법이고, 조선시대 이후 우리나라 강원에서도 활용하는 독서 방법이다. 3월호에서는 ①10신 수행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대답에 주목해 보기로 한다.
2.
먼저 질문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운허 스님의 주관으로 설립된 동국역경원에서 <한글대장경>을 간행한 일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다. <한글대장경> 총서 속에 80권 화엄경이 상책(1966년 간행)과 하책(1968년 간행), 이렇게 두 책으로 번역되었다. 번역자는 운허 스님이다. ①10신 수행을 어떻게 할까에 대해 보혜보살이 아래와 같이 질문한다.
그때 보혜보살은 대중이 모두 모인 줄을 알고 보현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시여, 바라건대 말씀하소서. ①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의지며, ②무엇이 신기한 생각이며, ③무엇이 행이며, ④무엇이 선지식이며, ⑤무엇이 부지런히 정진함이며, ⑥무엇이 마음에 편안함이며, ⑦무엇이 중생을 성취함이며, ⑧무엇이 계행이며, ⑨무엇이 스스로 수기 받을 줄을 아는 것이며, ⑩무엇이 보살에 들어감이며, ⑪무엇이 여래에 들어감이며, ⑫무엇이 중생의 마음에 들어감이며, ⑬무엇이 세계에 들어감이며, ⑭무엇이 겁에 들어감이며, ⑮무엇이 삼세를 말함이며, ⑯무엇이 삼세에 들어감이며, ⑰무엇이 고달프지 않은 마음을 냄이며, ⑱무엇이 차별한 지혜며, ⑲무엇이 다라니며, ⑳무엇이 부처를 연설함이오니까?”
이렇게 모두 20가지 질문을 던진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원형 숫자를 붙여보았다. 이하에는 그 숫자로 설명을 진행하기로 한다. 이 20가지 질문을 전통적으로 경학 연구자들은 세 단락으로 나누어서 독서해왔다. ①∼⑨는 <자신을 위하는 수행의 완성을 밝히는 대목>, ⑩∼⑰는 <남을 위하는 수행의 완성을 밝히는 대목>, ⑱∼⑳는 <자리와 이타를 종합적으로 완성하는 대목>, 이렇게 말이다. 이것은 화엄 경학자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를 필자가 풀어서 쓴 것이다. 원문은 첫째는 ‘자분행만自分行滿’을 밝히는[明] 대목, 둘째는 ‘승진행원勝進行圓’을 밝히는 대목, 셋째는 ‘이행구경二行究竟’을 밝히는 대목이다.
3.
짧은 지면에 모두를 소개할 수는 없어서, 우선 첫째의 질문 즉, ①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의지인가에 대해, 보현보살이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중심 용어Keyword는 ‘의지[依]’이다. 보살이 보살행을 실천하려 할 때에 근거해야 할 ‘의지처’가 무엇이냐는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보현보살은 다음과 같이 열 가지로 대답하고 있다. 운허 스님 번역을 인용한다.
이때 보현보살이 보혜보살과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의지가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①이른바 보리심으로 의지를 삼나니 항상 잊지 않는 연고며, ②선지식으로 의지를 삼나니 화합하여 한결같은 연고며, ③선근으로 의지를 삼나니 닦아 모아 증장하는 연고며, ④바라밀로 의지를 삼나니 구족하게 수행하는 연고며, ⑤온갖 법으로 의지를 삼나니 필경에 벗어나는 연고며, ⑥큰 서원으로 의지를 삼나니 보리를 증장케 하는 연고며, ⑦여러 행으로 의지를 삼나니 다 성취하는 연고며, ⑧모든 보살로 의지를 삼나니 지혜가 같은 연고며, ⑨부처님께 공양함으로 의지를 삼나니 믿는 마음이 청정한 연고며, ⑩일체 여래로 의지를 삼나니 자애로운 아버지의 가르침과 같이 끊이지 않는 연고로,
㉱이것이 열입니다.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의지할 곳이 됩니다.
4.
독자들께서 좀 어렵고 지루하겠지만, 그래도 경을 읽기 위해서는 ‘공식’을 알아두셔야 하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이야기를 해보겠다. 필자가 ‘공식’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과목치기[分科]’이다. 경전의 본문을 단락 지어서 읽는 것을 ‘공식’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화엄의 경학가들은 위의 본문을 다섯 과목(㉮에서 ㉲까지)으로 구단 짓는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표방하는 부분, ㉯둘째는 개수를 묻는 부분, ㉰셋째는 내용을 열거하여 해석하는 부분, ㉱넷째는 개수를 결론 짓는 부분, ㉲다섯째는 수행으로 인해 얻는 뛰어난 이익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보현보살의 대답은 이상의 다섯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공식’이라는 단어를 차용한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억지로 줄을 바꾸어 ㉮에서 ㉲까지 기호를 붙여보았다. 핵심은 셋째 단락(㉰)과 다섯째 단락(㉲)이다. 간단하게 구조적으로 설명하면, ㉰의 실천 수행을 통해서, ㉲라는 결과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다음은 열 가지 ‘의지[依]’ 중에서 첫째 문장 즉 “①이른바 보리심으로 의지를 삼나니, 항상 잊지 않는 연고며”를 분석적으로 독서해보기로 한다. 문장이 도치되어 있다. 주장[宗]이 앞에 나와 있고, 그렇게 주장을 할 수 있는 이유 대기[因]가 뒤에 서술되어 있다. 종-인-유(宗因喩)의 논증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보리심에 의지하라”는 주장이고, 그 주장의 근거는 “항상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전제에 해당하는 비유譬喩는 생략되어 있다. 그러니까, 10신을 닦는 수행을 할 때에 반드시 ‘보리심’에 의지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앞으로 무수한 수행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또는 보살이 수많은 수행을 해야 하는데, 그 모든 과정에서 항상 보리심에 의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의 문장 하나만 더 설명해드리기로 한다. “②선지식으로 의지를 삼나니, 화합하여 한결같은 연고”이기 때문이다. 10신의 수행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지식으로 의지처를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화합하여 한결같음” 때문이다. 한자의 원문 “화합일여化合一如”를 함께 보면 좀 더 이해가 쉽다. 선지식은 ‘화합’을 제일 덕목으로 한다. 그것도 언제나 변함없이 말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화합하는 그런 대중에 의지해야만,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한 줄 한 줄, 경을 읽어가야 한다. 그래서 전통강원에서는 이렇게 경전을 보는 것을 ‘이력을 본다’고 했다. ‘이력’은 한문으로 ‘履歷’으로 쓰는데, 봄바람에 보리밭 밟듯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렇게 촘촘히 빼지 말고 밟아가는 것이다. ‘개 머루 먹듯 읽기’는 안 된다. 나머지 ③ 이하도 그렇게 읽기를 권한다.
5.
끝으로, ①∼⑨는 <자신을 위하는 수행의 완성을 밝히는 대목>, ⑩∼⑰는 <남을 위하는 수행의 완성을 밝히는 대목>, ⑱∼⑳는 <자리와 이타를 종합적으로 완성하는 대목>, 이렇게 크게 쪼개 읽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대승 수행의 묘미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 그리고 ‘자타원융自他圓融’, 이런 3단계 구조에 묘미가 있다.
초기 경전이던 대승 경전이던, 구전되어지던 것을 후세의 경전 작가가 문자로 기록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문자로 기록된 경전을 읽을 때에는 <경전 작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했는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경전 작가의 이야기 구성 스타일 너머 있는, 즉 작가가 전하려 하는 원래의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경안經眼이다. 글이나 표현을 분석적으로 이해한 뒤에서는, 반드시 그 너머에 있는 진실에 주목해야 한다.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우선 과목치기를 하고, 한 자, 한 줄, 꼼꼼하게 읽어가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경학을 연구한 스승, 즉 강사講師 스님에게 전통으로 내려오는 경학經學의 가법家法과 가풍家風을 익혀야 한다. 젊어서부터 독서가 몸에 배지 않고는 힘든 일이다. 더구나 외국의 고전 언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 길이 옛 성현의 뜻을 이해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