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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지난 호에 이어서>


제가 처음 타이완에 왔을 때 가장 곤란을 느꼈던 것이 바로 경찰기관과 안전부서와의 접촉이었습니다. 저는 외지인인데다 젊었기 때문에 출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정부의 신뢰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타이완은 정보수집 임무를 띠고 중국 본토에서 다수의 승려를 침투시켰다는 소식이 만연했고, 이것은 타이완에 있는 우리에게 설상가상으로 생활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타이완의 치안기관은 중국 본토에서 방송하는 내용을 확인도 않고 무조건 그들의 방송대로 일처리를 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 전파한 내용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일을 처리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본토에서 정보를 수집하라고 승려 몇 명을 보냈다’ 말하니 타이완은 대륙에서 건너온 우리 승려들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고 위험인물로 낙인찍었습니다. 대륙에서 온 출가자의 괴로움은 끝이 없었고, 이로 인해 저는 23일간 감옥신세를 지기도 했었습니다.


민국 42년(1953), 제가 이란에 있을 때의 기억입니다. 매주 한밤중이면 관할 경찰이 불심검문을 한다며 깨웠습니다. 한밤중에 저 한 사람만 심문하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70세 이상 된 노인 두 분도 계셨습니다.
한 분은 재가자 노 보살님이었고, 또 한 분은 노 비구니 스님이었습니다. 뇌음사는 그들 소유의 사원이고 저는 다만 이곳에 방부를 들이고 머무는 것뿐인데, 이렇게 계속해서 그들을 놀라게 하니 저는 정말 면목도 없거니와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번은 정鄭씨 성을 가진 관할 경찰이 뇌음사 염불회의 신축 강당을 빌려 시험 장소로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안 됩니다. 사찰은 모든 사람에게 예불을 드리라고 빌려주는 곳이지, 경찰이 시험을 치르라고 제공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고 거절했습니다.
저의 동의를 얻지 못한 그는 할 수 없이 제 말을 그대로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 장소 빌리는 문제를 협의하고자 그들의 국장이 직접 뇌음사로 찾아왔습니다.


저는 국장이 직접 온 것을 보고 어투를 달리해 말했습니다.


“국장님! 장소를 빌리는 것은 당연히 가능합니다. 다만 앞서 국장님 관할의 어느 경찰이 늘 우리를 귀찮게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인연을 얻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상부상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데, 그는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와 귀찮게 하였으니 우리 사찰 사람들도 선의를 베풀기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빌려주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국장님께서 직접 오셔서 빌리시겠다니 빌려드리겠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일주일도 안 되어서 그 경찰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이때부터 이란 뇌음사의 홍법 활동은 안전부서의 인정을 얻어 일본이 만든 슬라이드 상영하기·청년 집회 활동·합창반·아동반·학생회 등 젊은이에게 불법을 널리 알리는 기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버드나무 가지 하나를 꽂았을 따름인데, 가지가 자라 어느새 이만큼 그들을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그 후 국장님도 불교를 신봉하게 되었고, 국세국장 몇 분에게 영향을 주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당시 이란 경찰국장인 사은당謝銀黨 선생 역시 우리 신도가 되었습니다. 저와 그가 함께 펼친 ‘애심마마愛心媽媽’ 운동이 타이완 전체로 퍼지면서 타이완 사회에 일조한 적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은당 국장은 경정서警政署 최고자리인 경정서장까지 올랐고, 경찰계에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직위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일찍이 4, 50년 전의 경찰은 저와도 인연이 많을 것입니다. 경찰대학, 경찰학교 모두 제게 강연을 해 달라고 찾아온 적이 있어 경찰과 여러 차례 교류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출가자 또한 경찰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죄를 짓지 말라 권하지만 여러분들은 죄를 지은 뒤에 처리합니다. 그러니 제가 앞에서 우환을 미연에 방지한다고 할 수 있는데, 만일 제가 일을 잘 못하면 여러분들이 뒤에서 비교적 힘들게 일해야겠지요. 그러므로 경찰 여러분과 우리 종교가 협력하여 함께 사회의 안전을 보호해야 합니다. 종교를 불온한 것으로 보는 것은 사회에 이롭지 못합니다.”


‘관리학’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중을 알고 시대의 흐름을 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위 ‘사장은 안 무서워해도, 상급자는 무서워한다’고 하듯, 당시 관할 경찰의 요구에 대한 저의 거절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였습니다. 그러나 최고 직위의 경찰대장에 대해서는 권력이 큰 만큼 함부로 밉보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의 경중을 따져볼 줄도, 이해득실을 따져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당시 경중을 이해하고 시대흐름을 알았기에 기회가 도래하자 당연히 저의 의견을 표현했고, 공정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