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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과 명상, 그 절묘한 만남

이 뭐꼬? 이것뿐!


김명환
불광출판사 제작부장



『이 뭐꼬? 이것뿐!』
정가 18,000원
월호 스님 지음
150×215mm|312쪽
불광출판사 펴냄



모두의 마음 공부법, ‘다섯 가지 그릇 이론’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금강경』에서는 ‘모든 존재는 꿈과 같고, 허깨비 같으며,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갯불과 같으므로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토록 소중한 나의 몸과 마음은 물론, 보이고 느껴지는 내 눈앞의 현실과 세계 모두가 환상이라니,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이 말의 속뜻은 무엇인가? 바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든 존재에 우리가 믿는 ‘고정된 실체’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반 대중에 맞춤한 참선법을 활발히 전해온 행불선원 선원장 월호 스님은 그러한 이유로 나의 몸과 마음을 ‘아바타’에, 그리고 이 세계(우주)를 ‘메타버스(가상현실)’에 비유한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 펼쳐진 세계처럼, 우리는 가상현실 속을 배회하며 고통받는 하나의 아바타라는 것이다. 그럼 ‘진짜 나’는 무엇인가? 바로 고통스러운 현실(메타버스) 속에 존재하는 아바타를 관찰하는 자로서, 이미 크고 밝고 충만한 성품을 지닌 존재이다. 이로써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번뇌는 ‘진짜 나’의 것이 아니라 ‘아바타’의 몫이 된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에서 모피어스는 주인공 네오Neo에게 두 가지 알약 중 하나를 삼킬 것을 권한다. 파란색 약은 ‘매트릭스의 세계’에 그대로 머무는 약, 붉은색 약은 ‘진짜 세계’에서 눈을 뜨게 하는 약이다. 네오는 붉은색 알약을 삼키고 진짜 세계의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 완전한 존재로 추앙된다.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알약’을 우리 앞에 꺼내 놓는다. 이 세 약이 〈매트릭스〉의 두 약과 다른 점은 무엇을 선택하든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고, 같은 점은 이를 통해 우리도 마음에 걸림이 없는 (본래의) 완전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처방 ‘아바타 명상’은 근심 걱정을 벗어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번뇌에 고통스러워하는 몸과 마음에 닉네임을 붙여(아바타) 관찰하는 것이다. 이때 ‘진짜 나’는 관찰자가 되어 객관적인 시각으로 생로병사와 탐진치에 점철된 ‘아바타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객관화를 통하여 고통으로부터의 해탈로 나아가는 지혜를 얻게 된다.
두 번째 처방 ‘바라밀 명상’은 스스로를 결핍된 존재라 여기는 습관을 버리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이다.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달의 비유를 사용한다. 어느 날은 초승달로, 어느 날은 그믐달로 보이는 달이 본래 보름달인 것처럼 관찰자인 ‘진짜 나’는 잠시 무명의 그림자에 가려 있을 뿐 항상 크고 밝고 충만함을 깨닫는 것이다. 저자는 그 방법으로 최상의 진언인 ‘마하반야바라밀’을 입으로 염念하고 마음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세 번째 처방은 ‘행불 명상’이다. 이는 부처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연습함으로써 일생의 평화를 도모한다. 예컨대 달은 항상 보름달이므로 초승달이나 그믐달이 굳이 보름달이 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때그때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 그뿐, 부처가 따로 있어 부처의 행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행을 하는 자가 곧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여기’에서 평화로울 수 있다. 나아가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풀어 모두 해탈하도록 이끄는 것, 그것이 행불 명상이자 진정한 참선이다.


불교 명상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 책에서는 명상의 세 가지 처방을 일반의 대중화된 명상과 차별화하고 있다.
첫째, 일반 명상은 몸과 마음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해 그것의 실체 없음을 확인한다. 아바타 명상은 이에 더 나아가 실체 없는 몸과 마음을 아바타의 현상으로 분리해 대면 관찰함으로써 아바타가 겪는 고통과 번뇌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
둘째, 일반 명상은 몸 보기, 마음 보기 등에 집중한다. 하지만 바라밀 명상은 처음부터 몸이나 마음 대신 본래 ‘보름달’인 ‘본마음 참 나’의 공空한 성품에 초점을 맞춘다.
셋째, 일반 명상은 수행을 통해 깨달은 이, 즉 부처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행불 명상은 부처의 행을 수행하는 것으로 본래 부처에 입각해 닦는 수행이다. ‘우리는 본래 부처다.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그렇다.’ 이를 굳게 믿고 ‘지금 부처’로 현성해 나아가는 것이다.


결코 깨지지 않는 마음공부의 바른길, 그릇 이론
하지만 초보 수행자에게 ‘완전한 존재’로 거듭나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초보자의 발심發心은 무쇠와 같아서 깨지기 쉽고 성취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 발심을 강철로 거듭나게 하는 ‘용광로의 불’과 ‘대장장이의 단련’이 필요한데, 그것이 마음공부의 다섯 단계로서 저자가 고안한 ‘그릇 이론’이다.
불교에는 다양한 수행법이 공존한다. 그런데 서로가 부딪히기도 하고, 입문자들에게는 수행의 문턱에서 갈피를 잡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 주요한 원인은 수행상의 체계가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음을 하나의 그릇에 비유하여 불교의 다양한 수행법을 하나의 체계로 구성한다.


① 그릇 비우기 - 참회懺悔를 통한 자기 정화
② 그릇 채우기 - 발원發願을 통한 자기 전환
③ 그릇 키우기 - 기도祈禱를 통한 자기 확장
④ 그릇 없애기 - 참선參禪을 통한 자기 확인
⑤ 그릇 만들기 - 행불行佛을 통한 자기 창조


이 다섯 단계는 본격적인 마음공부를 위한 준비 단계(①, ②)로 시작해 일념一念과 무념無念의 성취를 이루고(③, ④), 마침내 자신의 삶의 창조자는 자신임을 깨닫는 단계(⑤)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 바른길로 하여금 우리는 마음의 주인으로서 매사에 감사하고, 지나간 과거나 다가올 미래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직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갈 뿐이다. 나아가 일체가 곧 ‘부처’임을 깨닫게 되므로 중생과 더불어 생동하는 삶을 살게 된다. 깨어 있는 삶을 살되 시비분별하는 입장이 아니라 관찰자의 입장에서 일체중생을 자비의 눈길로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불교 명상 수행의 가이드이자, 명상 에세이이다. 저자 특유의 유쾌하고 명쾌한 문체 속에 행불사문으로서의 지난 공부 결과를 아낌없이 녹여냄으로써 ‘참 나’로 사는 길을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깨닫도록 하였다.


책속으로
모든 것이 변화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진실은 ‘바로 지금 여기서 이것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도 계속 흘러가므로 과거와 미래는 물론 현재 또한 금방 가상현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25쪽


몸과 마음은 수시로 변한다. 어제의 몸과 오늘의 몸은 다르다. 오늘의 몸과 내일의 몸도 다르다. 아침・저녁의 몸이 다르다. 또한 어제의 마음이 내 마음인가, 오늘의 마음이 내 마음인가, 내일의 마음이 내 마음인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이 몸과 마음은 고정된 실체가 없다. 변화하는 현상만 있을 뿐! 결국 몸과 마음은 아바타인 것이다.
그러니 불안한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다. 아바타의 마음이다. 아바타의 마음이 불안하다고 관찰하는 순간 관찰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관찰자인 성품은 공空하다. 크고 밝고 충만하다. 달이 항상 보름달인 것처럼. -28~29쪽


몸과 마음은 아바타다. 수미산 또한 명칭이 있을 뿐 고정된 실체는 없다. 우주가 온통 변하는데, 그 안에 있는 어떤 존재인들 변하지 않겠는가? 변화하는 현상뿐인 아바타에게는 실체가 없는데, 허물을 따져서 어쩌겠는가? (…) 육도윤회六道輪廻 또한 모두 가상현실 속에서 배회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항상 ‘바로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이 진짜 현실을 사는 것이다. -43쪽


몸이나 음성은 진정한 여래가 아니다. 여래의 아바타일 뿐! 결국 물질적 존재이든 정신적 존재이든, 모든 존재는 ‘아바타’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고정된 실체가 없고, 변화하는 현상만 있다. 이를 직시하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비결이다. -111쪽


운전 중 갑자기 신호도 없이 끼어드는 자동차가 있으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화가 북받쳐 올라온다. 화는 참으면 병이 되고, 터뜨리면 업業이 된다. 하지만 바라보면 가라앉는다. ‘아바타가 화가 나려 하는구나.’, ‘아바타가 화가 올라오는구나.’, ‘아바타가 화를 내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 몇 번 반복하면 서서히 가라앉게 된다. 화는 아바타가 내는 것이고, 정작 나는 이를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화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188~189쪽


『금강경』 사구게의 핵심은 결국 ‘모든 존재가 마치 꿈과 같고 아바타(幻)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하라’는 것이다. 또한 『반야심경』에서는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몸과 마음 아바타(空)라 관찰하고 모든 고통 벗어났다’고 한다. 결국 거울 보듯, 영화 보듯,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면해서 관찰하되, 아바타로 보는 것이 해탈의 시작이다. -147쪽


불교적 마음 치유의 대증요법은 ‘대면 관찰’이며, 근원치유는 ‘마하반야바라밀’이다. 대면 관찰을 통해 무아를 연습하여 근심 걱정을 완화시킨다. 그리고 ‘마하반야바라밀’을 통해 무아를 넘어선 대아大我로 나아가 밝은 미래를 그리고 창조하는 것이다. -157쪽


도는 닦는 데 속하지 않는다(道不屬修). 닦아서 터득한다면 닦아서 이루어졌으니 다시 부서질 것이다. 즉 인과에 매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닦지 않는다면 그저 범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도를 깨칠 수 있는 것일까? 마조 스님이 설했다.


명상과 참선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둘 다 밖으로 향한 시선을 내부로 돌려 자신을 돌이켜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관찰의 대상에 차이가 있다. 명상은 몸과 마음을 관찰하고, 참선은 관찰하는 자를 관찰하는 것이다. -2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