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봄입니다. 엊그제 동지불공冬至佛供을 올린듯한데,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을 지나 입춘立春입니다. 입춘이고 보니 어느덧 해가 많이 길어졌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수雨水 경칩驚蟄이 지나면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보면, 세월이 유수流水같다는 것을 실감하게 합니다.
해마다 입춘이 되면, 월하 노스님께서 써주신 입춘방立春榜과 개인적인 인연으로 통도사성보박물관에 드려놓은 400년 전, 해남 옥석玉石에 길상다라니吉祥陀羅尼를 탁본해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월하 노스님 친필로 써주신 ‘立春大吉’과, 호신첩은 가정화합家庭和合, 병고액난病苦厄難, 재수대통財數大通, 소원성취所願成就, 삼재팔난三災八難 다섯 종류의 부적입니다. 한 해의 시작과 함께 맞이하는 입춘에 입춘방을 집집마다 대문에 붙이고 호신첩은 한 해 동안 일어나게 될 삼재팔난三災八難을 초기에 막아 보겠다는 선조님의 방편이 담겨져 있다 할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입춘에 12년 간격으로 3년씩 삼재를 특별히 조심하라며 권하고 있는데, 그 이유와 깊은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인생을 최소한 3년씩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전후좌우前後左右도 살피며 살아가게 하는 지혜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삼재三災는 무엇일까요. 물의 재난인 수재水災, 불의 재난인 화재火災, 바람의 재난인 풍재風災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삼재든 사람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생주이멸生住異滅 속에 성주괴공成住壞空으로 이루어져 변화되는 세상에 사대육신四大肉身을 인정하며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방편의 가르침인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요의경을 쓴 약에 비유하자면, 불요의경은 쓴 약을 잘 먹게 하기 위한 방편일 것입니다. 몸에 좋다는 약은 대체로 쓰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쓴 약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약을 먹을 때 불편함을 덜어주고자 하는 방편이 불요의경이라 할 것입니다. 불요의경은 아픈 몸을 치료하는 약은 아니지만, 쉽게 약을 먹을 수 있게 하는 방편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불요의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낫게 하는 약에 해당하는 가르침을 “요의경에 의지하고” 약을 먹기 위한 방편을 ”불요의경에 집착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오늘 입춘부도 삼재에 든 사람이나 삼재에 들지 않은 사람이나 자신이 필요에 의한 방편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며,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며, 지혜에 의지하고 알음알이 식견識見에 의지하지 말라”하신 가르침입니다.
아픈 곳이 있으면 적절한 약을 처방받아서 먹을 수 있도록 요의경에 의지해야지, 그 약을 감싸는 방편인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요의경에 의지하기 위한 믿음을 내야하고 근본 바탕은 보리심이 절실 합니다.
이것이 생명력입니다. 그리고 계율戒律이라는 규범規範을 지키고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어울림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늘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하여야 하고, 안으로는 내관사유內觀思惟를 해야 하며, 진지하게 사는 정진을 해야 하고, 바른 생각인 정념正念과 바른 지혜智慧를 갖추어야 합니다.
항상 바른말을 해야 하는데, 바른 말이란 망령된 말이나 비단결 같은 말, 여기서 이 말, 저기서 저 말을 하거나 악담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삿되고 용렬한 무리들이 진리도 아닌 것을 설파하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바른 법을 따라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애민섭수哀愍攝受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지한 삶의 현장에서 덕목으로 드러나는 수행修行을 해야 합니다. 수행이 무엇일까요?
석주 노스님은 하심下心하고 인욕忍辱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심, 나를 낮추고 인욕 하는 것은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만 참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것도 참을 줄 알아야 하는 가르침입니다.
“수행이란 깨달음의 완성이고 죽음의 가치를 진정한 삶의 가치로 전환 시키려는 노력이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삼재팔난을 소멸할 수 있는 것 역시 사랑의 힘이요, 자비의 힘입니다, 연민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삼재팔난을 소멸할 수 있는 사랑과 자비와 연민심은 우리들 속에 다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느 조각가가 큰 돌에 조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그 연유를 묻습니다.
“뭘 하고 계십니까?”
“예, 나는 지금 석상을 다듬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뭐가 나올 것 같지 않은데요?”
그러자 조각가는 말합니다.
“예, 석상은 이미 돌 내부에 갖춰져 있습니다.”
조각가의 이 대답이 바로 우리의 본질이며 본성입니다.
우리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면, 다 갖춰져 있는데 무명無明이라는 번뇌煩惱에 덮여 있어서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 가운데 “계율戒律을 닦는 것은 몸을 고요하게 하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 그 본성本性은 마음이라고 하였지만, 그래도 중생들은 뭐니 뭐니 해도 몸이 편안하고 건강해야 마음도 편안하고, 몸이 행복해야 마음도 행복해지는 현상들을 다반사로 보고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성의 마음을 찾기 위해서 선정삼매禪定三昧를 닦고 지혜智慧를 얻기 위해서 수행정진修行精進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정삼매를 닦는 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함이며, 지혜를 닦는 것은 의심을 타파하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
한 제자가 부처님께 “의심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여쭈자, 부처님께서는 “대개는 의심하지 아니함을 의심이라 한다.” 하셨습니다.
계정혜 삼학을 닦는 것은 몸과 마음을 맑히기 위함이요, 마음속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가르침입니다.
『대보적경大寶積經』에 “마음은 바람과 같다. 마음은 그 모습을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다.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다. 마음은 머무르는 일 없이 일어났다가 이내 곧 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생각이든 번뇌에 찌든 생각이든, 마음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하루에도 만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일조차 다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유수같은 인생이라 하는 그 마음은 바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은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볼 수는 없어도 알 수는 있습니다. 바람은 볼 수는 없어도 나부끼는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치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삼재팔난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그것은 충분히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전에 한 여인이 있는데, 그 여인을 집에 들이면 부귀영화가 가득 넘쳐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빛과 그림자처럼, 그 여인과 함께 해야 하는 여인이 더 있는데, 그 여인이 집에 들면 집안이 흉가로 변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나에게 그러한 상황이 닥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어떤 이는 둘 다 쫓아낸다고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둘 다 데리고 산다고 할 것입니다. 또 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시간만 허비하며 인생을 망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부귀영화富貴榮華와 공명功名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늘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것을 가름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띠 셋을 지정해서 3년 거치로 삼재가 1년은 들 삼, 1년은 머물 삼, 1년은 날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삼재가 들었다고 쩔쩔매며 살 것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아쉽고 미진하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보완하고 극복해 가면서 살아가라는 우리네 선조님들의 지혜로운 방편 설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