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사바세계는 오탁악세五濁惡世라 어수선합니다.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우리들도 그 안에서 함께 흔들립니다. 그러한 불안전함을 수행 정진력으로 극복하는 힘을 길러내야 평상심으로 살 수 있는 불자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절기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서요 여덟 등분하면 어느덧 동지冬至를 지나 입춘이니 벌써 8분의 1이 흘렀습니다. 시간은 참 빠르기도 합니다.
지구는 하루에 4만 km를 자전하지만, 중력에 의해 흔들림을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마음의 동요는 피할 수 없는 듯합니다.
올해는 삼재三災가 드는 해라 합니다. 삼재는 들어와 내년에는 머물고, 내후년이면 나간다고 합니다. 올해는 3년마다 드는 윤달이 6월 달에 들어 있습니다.
지난해는 하지夏至와 동지冬至가 6월 21일과 12월 21일 이었지만, 올해는 6월 21일이 하지요 동지는 하루 늦은 12월 22일입니다. 입춘立春도 보통은 2월 4일인데 금년은 하루 앞당겨진 2월 3일 이였습니다. 자연에서 절묘한 변화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지구는 태양계를 1년에 365일 5시간 46분 48초 공전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미세한 시간들을 실감하지 못하지만, 자연은 섬세한 변화를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입춘에 두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첫째, 금년에 삼재가 끝난 이는 홀가분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둘째, 올해부터 삼재가 시작되는 돼지띠, 토끼띠, 양띠는 긴장하며 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삼재가 들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삼재三災는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를 말합니다. 큰 범주로 보면 홍수, 화재,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를 뜻하지만, 우리들의 인생을 보면, 늙음, 병듦, 죽음을 삼재라 할 것입니다. 최근 뉴스를 보면 곳곳에서 수재, 화재 소식이 있습니다. 미국 LA에서는 큰 재해가 발생했습니다. 수많은 집이 불에 탔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의 고리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연 따라 생기고 변화하며 소멸하기 마련입니다.
삼재팔난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차분한 마음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부처님 품 안에서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염원합니다.
입춘이 오면 늘 『능엄경楞嚴經』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맑고 깨끗한 마음이 어둡고 침침한 허공과 만나서 부딪치고 요동치고 흔들리다가 바람 기운 생기고, 마찰력에 불기운 일어나며, 녹은 것은 물 기운 되고 굳어진 것은 흙 기운이 되어 이 우주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졌다.”
이 경전은 우리가 겪는 삼재의 현상과도 연결됩니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부처님께서는 이 네 가지 요소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는 네 가지 가르침이 있습니다.
첫째, 왕은 어려도 왕이다. 둘째, 수행자는 어려도 수행자다. 셋째, 용은 새끼도 용龍이다. 고양이가 호랑이는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넷째, 불씨는 아무리 작아도 불씨다. 작다고 하여 함부로 대하면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재가 돼지띠, 양띠, 토끼띠에게만 해당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지수화풍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선조들은 삼재의 개념을 통해 주기적으로 자신을 되돌아 볼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삼재는 단순한 액운이 아니라, 삶 속에서 더욱 신중하게 자신을 닦고 조율해야 할 시기입니다. 예전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는 표어가 곳곳에 붙어 있었습니다. 삼재란 결국 우리가 스스로를 점검하고 다듬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삼재가 들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운명을 너무 쉽게 낙관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예컨대, “나는 100살까지 살 운명이라 하여, 한밤중에 까만 옷을 입고 고속도로에 가서 있어도 아무 일 없겠지.”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망상일 것입니다. 『능엄경』에 견견지시見見之時에 견비시견見非是見이라, ‘볼 것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인연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입춘을 맞아 또 한 가지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60년대 후반, 10대에 파고다공원에서 만해 한용운 스님의 비문을 본 적이 있습니다. 3·1 운동의 중심인물이었던 만해 스님의 시 중에서 소년 마음에도 깊이 새겨진 한 편의 시詩가 있습니다.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
삽살개 꿈을 꾸고 거미는 줄을 친다.
어디서 꾸꾹기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따슨볕 등에 지고 유마경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여 꽃 밑 글자 읽어 무삼하리요.
대실로 비단 짜고 솔잎으로 바늘 삼아
만고청수 수를 놓아 옷을 지어 두었다가
어즈버 해가 차거든 우리 님께 드리리라.
어느 구절이 가장 마음에 와 닿습니까? 대부분은 마지막 3절을 좋아합니다. “대실로 비단을 짜고 솔잎으로 바늘 삼아 만고청수 수를 놓아 옷을 지어 두었다가 어즈버 해가 차거든 우리 님께 드리리라.” 이상향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수행자라면 2절이 더욱 깊은 울림을 줄 것입니다. “따슨볕 등에 지고 유마경을 읽노라니 가볍게 나는 꽃잎이 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엇하리요.” 글자는 단순한 매개체일 뿐, 그 뜻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이 담겨져 있습니다. 수행자적인 의미가 가득한 이 대목을 좋아하는 이라면, 깊은 성찰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을 이어간다는 뜻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입춘에 삼재팔난을 성찰하고, 그 이치를 바라보며, 만해 스님의 시를 떠올리는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인연을 맺습니다.
단순히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떤 꽃을 피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지난 1월 17일부터 27일까지 인도 정부의 초청을 받아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인도는 축제가 많은 나라입니다. 특히 마하 꿈쁘 멜라 축제는 1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데, 이때는 수천만 명이 갠지스강가에 몸을 담그고 기도하며 성수를 떠서 집으로 가져가기도 합니다. 이번 축제는 28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안내하던 인도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 이번 축제 기간 5천만 명 이상이 갠지스강가에서 목욕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5천 명이 아니라 5천만 명입니다.
우리나라 인구와 비슷한 규모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강물 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날 바라나시에 도착한 시간이 밤 1시경이었는데, 축제 기간과 겹쳐 숙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법하신 녹야원(사르나트) 근처에서 방을 구했는데, 바라나시 호텔의 3분의1 가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성지순례 갈 때, 꼭 바라나시에 숙소를 잡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녹야원 근처에서 머물 수도 있는데 아쉽고 아쉽다 싶었습니다.
인생은 인연 속에 결정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좋은 인연에서 자신의 향기를 꽃피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돌아다보면 마음이 번거로우면 끝없는 상념想念이 휘감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평온하고 안온하면 세상 이치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넉넉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입춘을 맞아 우리는 새로운 시작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향기를 꽃피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번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온한 보리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조정래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불행을 느끼지 않을 때가 바로 행복한 때다.”
우리 삶에서 불행한 순간보다 행복한 순간이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늘 먼 곳을 바라보게 만들어 정작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광경이 있습니다.
양재천을 걷다 보면 천변가에 클로버가 무성하게 자라며 꽃이 피고 벌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젊은 남녀들이 길가에 쪼그려 앉아 한동안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한두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슬쩍 물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그들이 대답합니다. “행운을 찾으려고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이라면, 세 잎 클로버는 행복입니다. 왜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행복은 두고, 그 먼 행운만을 찾으려 할까요?”
우리의 삶 속에는 행복이 더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행복을 알아보지 못하고 행운을 좇아 중요한 것을 놓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서명숙 시인의 ‘그때는 몰랐다’는 시詩가 있습니다.
“그때는 몰랐다. 길을 걷는다는 것과 길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가를.”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분노하고 절망도 찾아옵니다. 그런 감정들 또한 삶의 일부입니다.
올해 입춘을 맞아 삼재가 든 불자들, 건강을 기원하는 불자, 재수대통하기를 바라는 불자들께 가정화합이 제일 우선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입춘 부적을 지갑에 한 장 끼워두십시오. 그러면 복권처럼 1년 동안 든든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한 길흉만 점 쳐다본다면 차라리 받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족과 함께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온 가족이 부처님 품안에서 따뜻한 가정을 발원합니다.